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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대 노(老) 피아니스트가 51년 만에 서울대에 재입학해 손주보다 어린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듣는다. 

주인공은 3월 신학기부터 서울대 음대 기악과에서 공부하는 변현덕(80) 서울 영락교회 장로다. 

변 장로는 1960년 서울대 문리대 식물학과를 졸업했다. 

11세 때 숙명여대 음대 학장을 지낸 이애내 교수로부터 사사 받는 등 음악적 재능이 있었지만 부모의 권유로 진로를 바꿨다. 

하지만 음악가로서의 꿈을 포기하지 못해 대학 졸업 뒤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 선생으로부터 작곡을 배우며 월간 ‘음악세계’를 발간했다. 

64년 서울대 음대에 편입했지만 한 학기만 마친 뒤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구니다찌 음대에서 수학했다. 

70년대 초 다시 미국으로 가 줄리어드 음대 교수로부터 15년간 개인 레슨을 받았다. 
가난한 음악가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교회성가대 반주는 물론 야채가게 종업원, 피아노 수리, 밤무대 연주 등 안 해본 일이 없었다. 

90년쯤 귀국한 뒤에는 미국과 일본을 오가며 피아니스트로서 2000여회 연주를 가졌다. 

하지만 서울대 음대에 편입하고도 졸업을 하지 못했다는 아쉬움과 음악을 더 공부하고 싶다는 열망이 다시 서울대 문을 두드리게 했다. 

변 장로는 12일 “서울대에서는 73년 미등록 제적 처리됐지만, 1회에 한해 재입학을 허용한다고 했다”면서 “서류심사와 면접을 거쳐 재입학 허락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 10월 재입학 면접 때 한 교수가 ‘귀는 들리시냐’고 묻길래, ‘저는 베토벤이 아닙니다. 변토벤입니다’라고 대답했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변 장로의 대학 재입학 소식을 들은 주위 사람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이다. 
‘인생 마무리를 준비할 나이에 무슨 대학 입학이냐’ ‘제정신이냐’ ‘공부중독이다’라며 핀잔을 주는 이들도 적지 않다.

아내에게는 적지 않은 학비 때문에 아직 말도 꺼내지 못했다. 

며칠 전 영화 ‘국제시장’을 함께 본 뒤 아내에게 “주인공의 어린 시절 꿈이 선장이었다는데, 마지막에 늙어서 해양대에 입학하는 것으로 끝냈으면 어땠을까”라고 넌지시 물었는데, “자식들 뼛골 뽑아 먹는 짓”이라는 답만 돌아왔다. 

출석하는 교회의 동료 장로에게 “학비가 부족한데 교회에서 장학금을 줄 수 있을까”라고 물어봤다가 “그 나이에 대학 졸업해서 뭐하겠느냐. 목사님께는 말도 못 꺼낸다”는 말만 들었다. 

반면 몇몇 친구들은 ‘내일 지구가 멸망할지라도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스피노자의 말을 전해주며 용기를 북돋워줬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한인회장을 지낸 지인은 축하한다며 100만원을 보내왔다.
변 장로에게 대학공부와 졸업이 ‘마지막 숙제’는 아니다. 

열심히 공부해 교회와 복지관 등에서 찬송을 연주하고 간증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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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는 변현덕 장로.

그는 지난해 11월 서울 광림교회 장천홀에서 자신이 편·작곡한 피아노독주곡 ‘예수님의 일생(the Life of Jesus Christ)’을 성도들 앞에서 연주했다. 

변 장로는 “17세 때 이성봉 목사가 인도하는 부흥회에서 성령세례를 받고 예수님을 영접했다”면서 “부모님도 한경직 목사가 전도사로 섬기던 신의주제2교회에서 결혼식을 했을 정도로 독실한 신앙인이셨다”고 회고했다. 

이어 “늘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만 생각해왔고, 무슨 일이든 하나님께 기도로 꼭 여쭤 보고 일을 시작했다”면서 “마지막 날까지 음악을 통해 복음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변 장로는 “막상 수업 받을 생각을 하면 힘든 공부를 따라갈 수 있을지, 피아노를 많이 치면 건강이 나빠지지 않을지 걱정 되고, 학비가 많이 부족해 무사히 졸업할 수 있을지도 염려가 된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뛰어난 학생, 훌륭한 교수들과 함께 공부할 생각을 하니까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것처럼 설렌다”면서 “젊은 동료들에게 뒤지지 않도록 열심히 공부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국민일보 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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