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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루게릭병(근위축성측삭경화증·ASL)은 그녀의 인생을 180도 바꿔놓았다. 

하나뿐인 남동생을 살리기 위해 절박한 마음으로 기도의 제단을 쌓으며 하나님을 만난 박성자(47·분당우리교회) 승일희망재단 상임이사 이야기다.


미스코리아보다 현모양처가 더 좋아 

그녀의 꿈은 현모양처였다. 

늘씬하고 빼어난 이목구비로 중고교 시절부터 주목을 받았다. 

동덕여대(독어독문과) 재학 시절에도 미스코리아 후보자들의 단골 미용실로 유명한 M미용실 원장으로부터 ‘미스 충남 진은 떼놓은 당상’이라는 찬사와 함께 미인대회 출전 권유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남들 앞에 서는 것을 죽는 것만큼이나 싫어했다. 

오로지 어진 어머니와 착한 아내가 되고 싶었다. 

어린시절 부모님이 동네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바람에 어머니의 사랑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자란 것이 한으로 맺혔기 때문이다. 

대학 졸업 직후 서울 광화문에 있는 한 번역회사에 다닐 때 맞선을 보고 7개월 만에 연세대 출신의 은행원인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딸 둘을 뒀다. 

엄마를 빼닮은 큰딸은 올해 대학 4학년, 막내딸은 수능시험을 앞둔 고3이다. 
결혼 후 10여년은 그야말로 어진 어머니와 좋은 아내로 살았다.
2002년 4월. 남들은 한일월드컵이 열린다고 들떠 있었지만 박 이사 친정은 침통했다. 
미국 유타주 브리검영대 유학을 마치고 프로농구 현대모비스의 최연소 코치로 부임한 동생이 몇 년밖에 살 수 없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그녀의 삶은 송두리째 흔들렸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박 이사는 학창시절 친구 따라 교회 문턱을 몇 번 넘어봤을 뿐 서른 초반까지는 비기독인이었다.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이 난치병에 걸린 것을 계기로 35년 동안 한 번도 기대해 본 적이 없는 ‘하나님 안에서 기적을 기다리는 사람’이 됐다. 

4년 동안 무릎이 닳도록 새벽기도를 드리며 정성을 다했다. 

하지만 캄캄한 현실 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믿음을 지키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동생이 응급실로 실려 갈 때 혀를 깨물어 사경을 헤매게 되는 등 십수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온갖 풍상을 다 겪었다.

 그러나 박 이사 가족은 마침내 평안을 되찾았다. 

박 이사는 동생이 감당할 수 없는 역경을 이겨내는 고통을 함께하면서 소중한 교훈을 깨달았다고 했다. 

‘내 자신의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과 축복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처음엔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기도하면서 매달렸지요. 하지만 초등학교 5학년 때 이미 예수님을 영접한 동생은 달랐어요. 내 생각대로 믿고, 내 마음대로 살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장 일어나 걷게 하는 기적을 보여주시지 않고 자신처럼 십자가를 지고, 이 순간 난치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수많은 환우들의 눈물을 닦아주기를 바라고 계신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한국엔 약 3000명의 환자가 있지만 왜 발병하는지 의사도 모르고 치료법도 없다. 

전신이 마비되지만 시각 청각 촉각 등 모든 감각은 살아 있기 때문에 ‘육체의 감옥’이라고도 한다.


모기 한마리에게도 지는 2m2cm 거인

추석 연휴 끝자락인 지난 10일 오전 경기도 용인 수지구 동천동 현대홈타운아파트 자택에서 그녀와 함께 친정을 찾았다. 

동생은 선교방송 CGNTV에서 온누리교회 수요여성예배를 시청하고 있었다. 

신장 2m2㎝, 거인의 팔 다리는 굳어 있지만 그의 커다란 눈은 맑고 또렷했다. 

그는 눈으로 말했다. 

5년 전까지만 해도 눈동자와 눈꺼풀의 움직임으로 글자를 만들어내는 ‘안구 마우스’를 사용했지만 이젠 그것마저 사용할 수 없게 됐다. 

자음과 모음이 있는 글자판을 보고 눈동자를 움직이면 21년 지기이자 첫사랑인 김중현(41)씨가 받아 적었다. 

김씨는 1993년 신입생 환영회 때 우연히 알게 됐다. 

그후 두 사람은 만나지 못하다가 2005년 방송을 통해 루게릭병을 앓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김씨가 먼저 손을 내밀어 극적으로 다시 만났다. 

1주일에 한두 번이지만 9년째 그의 곁에서 ‘의리’(사랑)를 지키고 있다. 

아들의 희생으로 신자가 된 부친 진권(77)씨와 모친 손복순(74)씨는 경기도 분당 여의도순복음분당교회(이태근 목사)에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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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 손씨는 지난 10여년을 하루같이 눈물로 아들의 손발을 닦고 있다. 

곁에서 하루 종일 돌봐줘야 하기 때문에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항상 아들과 눈을 맞춘다. 

아들은 필요한 게 있으면 오른쪽으로 눈동자를 돌려 SOS를 친다. 
그는 모기 한 마리가 코를 물어도 내줄 수밖에 없는 처지다. 

3시간마다 한 번씩 누운 자세를 바꿔줘야 하기 때문에 새벽은 아버지가 지킨다. 

오전 4시30분에 일어나는 그는 벌써 성경 6독에 들어갔다. 

승일씨로 인해 온 가족이 힘겨웠던 만큼 그리스도와 더 가까워졌다는 것이 이들의 고백이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재단의 모든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박 이사와 승일씨의 꿈은 루게릭병 환자 가족들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루게릭 요양병원 건립이다.

이를 위해 ‘승일희망재단’은 최근까지 9억6000만원을 모았다. 

박 이사는 “아이스버킷 챌린지가 계속돼 올해 안에 부지라도 마련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면서 “조만간 모금액 중 1억원을 희귀질환 환아를 돕는 단체에 기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승일씨에게 “지금 당장 가장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눈으로 말했다. “ㄱ ㅓ ㄷ ㄱ ㅗ 시 ㅍ ㅇ ㅓ ㅇ ㅛ(걷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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