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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주 이스라엘 대사였던 박동순(79) 온누리교회 장로는 외교가에서 ‘괴짜’로 통하는 인물이다. 

현역 대사시절 초등학교 영어 교과서 집필에 도전하고, 필리핀 대사 시절에는 섹스 스캔들로 곤경에 빠진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에게 자신이 번역한 유대 랍비 라흐만의 유명 명상록 ‘빈 의자’를 보내 답신을 받기도 했다. 

이스라엘 대사 명함을 달고 환갑의 나이에 난생 처음 국제마라톤대회에 참석해 2시간08분(하프 코스)을 기록했다.

쿠웨이트 참사관 시절엔 아시아 청소년 축구대회 때 길거리 전신주에 태극기가 보이지 않자 건설업체 지사장들을 소집해 밤새 수십 개 태극기를 그린 뒤 남의 나라 국기를 내리고 태극기를 꽂을 정도로 애국심이 남달랐다. 

박 장로의 자택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 미성아파트 베란다 밖에는 태극기가 365일 나부낀다.

내년 3월이면 팔순이 되는 박 장로의 성경 사랑은 은퇴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성경을 현대 국어 표기법에 맞도록 새로 번역한 뒤 연극대본처럼 대화체 말씀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15년째다. 

박 장로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새벽기도를 드린 뒤 아침 7시에 집을 나선다. 
홍제천을 따라 5㎞ 정도 걸으며 묵상을 한다. 

29일 자택 서재에서 만난 박 장로는 성경을 번역하는 일이라 매우 조심스럽다면서 얘기를 꺼냈다. 

“성경은 그 시대 보통 사람이 읽을 수 있는 말로 쓰여야 합니다. 외국인 선교사들이 들어와 어색한 말투로 번역한 성경을 오리지널을 지킨다는 이유로 고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대중에게 외면당하기 십상이지요. 죽은 말씀, 박제된 말씀이 됩니다.”

‘첫 한글 성경이 나온 이래 150여년 동안 아무 탈 없이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큰 은혜를 받아온 성경책을 왜 다시 번역하느라 사서 고생이냐’는 일부 지적에 대해 박 장로는 이렇게 말한다. 

“성경은 원래 근본적으로 이야기입니다. 내레이션인데 우리가 지금 읽고 있는 한글 성경은 이러한 문학성, 매력을 모두 무시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같은 것은 사도 바울의 서신인데 편지글 맛이 전혀 안 나고, 시편도 시적인 운치가 거의 느껴지지 않아요.”

박 장로는 한마디로 ‘성경전서 개역개정판’이 너무 어렵다고 했다.

 현재 쓰는 성경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사용하지 않는 말이 상당수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하였더라’ ‘∼하시니라’ ‘∼할지니라’ ‘이니라’ 등과 같은 백수십년 된 고어체를 그대로 쓰고 있는 점이다. 더군다나 문장을 끊어야 할 곳을 끊지 않고 ‘하되, 하시니, 더니, 하사, 하려니와’ 같은 접속사로 이어가니 숨이 차고 도통 무슨 말인지 이해되지 않는다. 게다가 주어가 생략되는 경우도 허다해 행위의 주체를 알 수 없고 헷갈린다고 했다. 

박 장로는 또 성경의 가장 큰 특징은 직접화법의 내레이션인체인데 이런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다고 했다. 

창세기 3장 10절을 예로 들었다.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이에 대해 박 장로는 자신의 새 번역을 소개했다. 

‘설명: 남자가 대답했다. 아담: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벌거벗어 두려워 숨었습니다.”'

그는 또 “쉬운 우리말로 번역한 성경도 있지만 그것은 너무 풀어놔서 원문의 맛이 반감됐다”면서 “비단 성경뿐 아니라 모든 이야기 구조는 그 안에 이야기의 단락(paragraph)이 있는데, 절을 앞세워 이야기의 흐름을 알 수 없게 했다”고 밝혔다. 

이야기의 컨텍스트(context), 즉 맥락 없이 성경 말씀을 한 구절 한 구절 쪼개놓은 것도 지적했다. 

“문단(paragraph) 없이 모든 절을 행갈이 해놨어요. 성경을 토막토막 읽는 셈이니 이야기의 흐름이 끊깁니다. 곳곳에 ‘아버지가방에들어가요’식 말씀이 즐비하다니까요.”

그는 왜 새로운 성경번역 대장정에 여생을 바치는 걸까. 

이에 대해 박 장로는 말한다. 

“성서학자도 아니고 히브리어와 헬라어도 능통하지 못하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성경에 선한 도전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처음부터 성경책을 내려고 한 것은 아니었지요. 
공부하는 크리스천으로 일반인들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성경을 만들고 싶어서 기약 없는 도전에 나선 것이지요.”

과연 박 장로가 펴낼 새로운 성경은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그는 성경에도 족보가 있다는 말로 대신했다. 

“히브리어 번역, 라틴어 번역, 70인역이 있지만 현재 사용하고 있는 개역개정에는 족보에 관한 설명이 없다는 것이지요. 
킹 제임스 버전(1611), 뉴 킹 제임스 버전(1982)은 512개 언어로 번역됐습니다.”

 박 장로의 책상엔 히브리 원어 성경 1권, 영어 성경 4권, 일본어 성경 1권, 프랑스어 성경 1권이 놓여 있다. 

각 성경을 비교 연구해온 그는 현재 구약·신약 66권을 새롭게 번역한 상태다. 

각 장마다 개요와 설명, 지도 첨부 등의 작업을 진행 중이다. 만으로 팔순이 되는 내년 3월이면 마침내 ‘박동순 버전’의 성경이 빛을 보게 될 전망이다. 

“대한성서공회 버전의 개정개역 성경이 거의 독보적으로 읽히는데, 저와 같은 새로운 시도가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영어 성경만 해도 킹 제임스, 아메리칸 스탠더드, 잉글리시 스탠더드 등 7∼8가지 해석 버전이 있지 않습니까?” 

하루 종일 성경과 씨름하고 있는 박 장로는 ‘나 홀로’ 크리스천이 됐다. 
70년대 초 서울대 법대 4학년 때 집안이 망하다시피 했다. 

그때 누군가 교회를 소개해 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무도 없었다고 했다. 

당시 영국 BBC 방송에서 방영한 ‘바이블 스토리’가 박 장로에게 믿음을 심어줬다. 

신앙을 갖게 된 박 장로는 정진경 목사가 담임하던 신촌성결교회에 출석하다가 1990년 하용조 목사를 만나 온누리교회로 옮겼고 이 교회 명예장로 1호가 됐다. 

박 장로는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고전 중 하나인 토머스 아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두란노)와 헨리 나우웬의 ‘영혼의 양식’(두란노)을 번역해 스테디셀러로 만들었다. 

박 장로는 ‘빈 의자’ 내용 중 가장 좋아하는 내용을 소개했다. 

삶이 어려울 때일수록 희망을 잃지 말라는 메시지다. 

“인생은 한 평생 좁은 다리 위를 지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두려워할 것이 없어요. 일은 언제나 최악에서 최선으로 가는 법이기 마련입니다.  그것도 눈 깜박할 사이에 당신은 당신에게서 항상 좋은 것을 찾으십시오. 

그 좋은 것에 초점을 맞추고 분노마저도 기쁨이 되게 하십시오. 

당신은 다른 사람에게서 항상 좋은 것을 찾으십시오. 그 좋은 것에 초점을 맞추고 죄인마자도 성인이 되게 하십시오.”

<국민일보 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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