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에도 손맛.JPG


오늘은 오랜만에 돼지고기 요리를 하려고 한다. 
김치돼지고기볶음은 중국 학생들이 좋아하는 메뉴다. 
삼겹살을 20㎏ 정도 주문했다. 

야채와 달걀을 사러 시장을 휘젓고 다녔다. 
빨간고추와 생강, 마늘도 장바구니에 담았다. 
장봐 온 음식 재료를 주방에 풀어놨다. 

오늘은 김치도 담가야 하는데, 마음이 분주해진다. 
주방은 덥다. 

섭씨 40도를 넘길 때가 많다. 
음식을 한꺼번에 조리하는 경우엔 온도와 습도가 높아져 사우나를 방불케 한다. 

3년 동안 이 '찜통'에서 일했다. 

'이렇게 일하다 죽으면 순교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풉∼ 하며 웃음이 터졌다.


주방은 나의 일터

이슬람 국가인 A국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마창선(43) 선교사의 일상이다. 
그는 카페 주인이자 주방장이다. 

새벽기도로 하루를 열면 곧장 ‘셰프’의 일상이 시작된다. 

단골 야채가게 아주머니와 많이 친해졌다. 
올 부활절에는 전도지까지 아주머니 손에 쥐어줬다. 

지난 20일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만난 마 선교사는 “복음을 전하기 어려운 곳에선 비즈니스 선교가 대안”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 세계가 비즈니스를 매개로 라이프스타일을 영위하고 있기 때문에 그만큼 접근이 쉬워졌다”며 “이슬람권 등 직접 선교가 어려운 지역에 비즈니스는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이른바 ‘뱀(BAM·Business As Mission)’으로 불리는 비즈니스 선교는 성공사례나 전도의 열매가 미미하다는 이유로 전통적 선교를 중시하는 쪽으로부터 냉대를 당했다. 

교회 설립 없는 선교는 진정한 선교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세계 선교 현장은 급변하고 있다. 

목사 선교사의 입국 자체를 금지한 국가가 많아졌고 이런 지역에 사는 사람은 22억명이 넘는다.
마 선교사는 이 같은 미전도 지역의 대학촌에 2010년 카페를 세우고 복음을 전하고 있다. 

때마침 불고 있는 한류 파워는 순풍에 돛을 달아주었다. 

해마다 1000여명의 대학생에게 복음을 소개했고, 3000명이 넘는 손님들에게 전도지를 배포했다. 
이를 통해 2년 전 5명에 불과했던 현지 대학교 내 크리스천 모임은 이제 6배나 증가했다. 

마 선교사는 처음엔 카페 운영만 했다. 

그러다 한류를 전하는 커뮤니티센터를 만들어 K팝 댄스 강습, 한국어교실 등을 운영하며 현지인들을 가까이에서 만났다. 

그렇게 하면서 전도집회를 열었고 복음을 소개했다. 

대학촌이라는 특성상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소품도 사용했다.

“크리스마스에는 오색으로 된 전도 팔찌를 나눠줍니다. 초록(천지창조) 검정(타락과 죄) 빨강(십자가) 하양(정결) 노랑(천국)으로 나눠서 친구들에게 설명합니다. 커뮤니티센터에서는 ‘코리안 파티’도 열고 있는데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을 한국어로 가르칩니다. 반응이 좋습니다.”

이렇게 전한 복음에 반응한 현지인들은 마 선교사가 직접 돌보든지 아니면 현지 교회에 연결한다. 
이 모든 사역을 그는 다섯 명의 한국인 사역자와 팀을 이뤄 수행한다. 

1년마다 한국의 단기봉사팀도 방문하는데 이들은 카페 서빙과 주방 일을 돕는다.


비즈니스 선교는 씨앗 뿌리는 과정

마 선교사는 한때 잘나가는 비즈니스맨이었다. 

경희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1997년부터 5년간 이랜드에서 마케팅 리서치와 브랜드 전략기획 업무를 담당했다. 

2001년부터는 컨설팅 회사를 운영했다. 

그러다 2008년 선교사로 나가기로 결심한다. 

대학 시절엔 선교한국대회에 참가해 비즈니스 선교에 대한 소명도 얻었다. 

4년 전, 현지에서 카페를 시작했지만 처음엔 막막했다. 

A국의 카페는 음식점을 겸한다. 

그의 아내는 더위 속 주방일은 육체적으로 힘들어 바리스타를 맡았고 마 선교사가 대신 주방장이 됐다. 

3개월간 조리법을 배웠다. 

처음엔 글로 배웠다. 

그러나 음식은 손으로 하는 일이었다. 

주문이 들어오면 본능적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게 어려웠다. 

“6개월이 지나니까 손에 잡히더라구요. 조금 안정이 되자 새로운 메뉴도 시도해봤습니다. 요즘은 인터넷에서 요리 블로그나 사이트를 보면서 배웁니다. 음식은 모두 한국 음식입니다.”

현지에서의 비즈니스 장벽도 만만치 않았다. 

자본금이나 유통, 가격 설정도 문제였다. 
현지 학생들의 주머니는 가벼웠다. 

자취방 한 달 임대비는 10만원 미만이었고 학교 구내식당은 한 끼에 1000원 정도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4000원에 음식 가격을 맞춰야 했다. 

다른 지역 한국음식점 가격의 절반 수준이었다. 

무모한 도전이었다. 

결국 박리다매가 관건이었는데 마 선교사는 여기에 한류문화를 활용했다. 
현지인들이 TV나 컴퓨터의 모니터로만 접하던 한국을 그들 눈앞에 제시했다. 

한국어가 유창한(?) 한국인들을 언제든 만날 수 있도록 했고, K팝 스타들의 친필 사인 CD도 만져보도록 했다. 

서울의 홍대 카페 분위기를 그대로 살린 마 선교사의 카페는 일종의 한류 체험장이었다. 
원하면 한국어도 배울 수 있었다.

이렇게 시작된 카페는 현재진행형이다. 
여기엔 한류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에 따르면 지금의 한류는 유행이 아니라 트렌드다. 

유행이 3∼5년 지속되는 흐름이라면 트렌드는 10년 이상 이어지는 사회 현상이다. 
유행이 선호도의 문제라면 트렌드는 인간의 욕구와 가깝다. 

“한류에 열광하는 나라들의 공통점은 일제 식민지를 겪고 전쟁의 참상 속에 단기간 경제 발전을 이룩한 한국을 모델로 삼고 있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K팝이나 드라마가 떠서 파워가 생긴 게 아니라 한국의 독특한 역사와 현재가 트렌드가 된 것입니다. 한국 대중문화가 정보기술(IT)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류는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마 선교사는 비즈니스 선교에서 거점(베이스) 마련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카페라는 거점을 만들어놓으니 현지인과 계속 접촉할 수 있었다”며 “일단 거점을 확보해 유지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비즈니스 선교가 장밋빛 미래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비즈니스 선교는 그 자체가 도전이며 과정”이라며 “오랜 기간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년에는 다른 지역에 두 번째 카페를 열려고 준비 중이다. 
철저한 팀워크로 미전도 지역에 복음을 확산시킨다는 계획이다. 

<국민일보 미션>

인물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