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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구 서울 충무성결교회 명예장로가 13일 서울 광진구의 한 공원에서 기도하는 자세를 취했다. 이 장로는 아침저녁으로 이렇게 무릎을 꿇고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기도 드린다.



국내 대표적인 ‘채권 전문가’인 이상구(71·서울 충무성결교회 명예장로)씨.


그는 교계에서 자타 공인 ‘직장선교 전문가’로 통한다.


40여년 직장선교 활동을 연구하고 헌신했기 때문이다.


직장선교 활동은 녹록지 않았다.


하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며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


그는 최근 은퇴 후에도 직장선교 활동을 멈추지 않고 있다.


13일 서울 광진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평신도가 직장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지 않는다면 어떻게 복음이 전해지겠느냐”고 말문을 열었다.


“평신도는 거룩한 나라요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살아가야 할 사람입니다(벧전 2:9∼10, 마 5:13∼16).
평신도가 삶의 현장에서 제대로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교회의 기능은 위축되고 세상은 더 어두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고려대 통계학과를 졸업한 그는 상업은행(현 우리은행)에 입사해 3년 동안 채권분야를 연구했다.
당시 주식투자가 대세였다.


채권 관련 책이 거의 없어 일본책을 우리 현실에 맞게 번역하기도 했다.


‘채권투자’ ‘채권투자 기본상식’ ‘부자되는 채권이야기’ ‘알기 쉬운 채권투자’ ‘채권투자론 1, 2’ 등 채권 관련 서적을 냈다.


그의 강의는 증권연수원과 투신단, 한국공인회계사회, 대학 등에서 인기였다.


“채권 전문가가 되기 위해 힘을 쏟았습니다. 채권지식이 있어야 주식과 부동산 등 경제상황을 알 수 있습니다.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온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그의 기독교 입문은 30대 초반이다.


당시 대우증권 사원 중 영업실적이 가장 뛰어났다.


기관투자가를 방문해 영업이익을 크게 늘렸다.


하루는 점심시간에 서울 중구 벽산그룹을 방문했다. 직원 7∼8명이 작은 회의실에서 환한 얼굴로 도란도란 얘기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책상 위엔 성경이 있었다.


그들의 표정이 한동안 잊혀지지 않았다.


‘저 책이 무엇인데 밥 먹기도 빠듯한 시간에 모여 행복하게 얘기를 한단 말인가.
우리 회사에도 이런 모임을 만들면 좋겠는데….’


석 달 뒤 대우증권 신우회가 창립됐다.


그는 전도부장을 맡았다.


동료들은 “교회도 안 다니는 이상구 과장이 직장신우회를 만들었다”며 농담 섞인 말을 건넸다.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다.


믿음의 동지와 기도하며 신앙훈련에 참여했다.



성경을 묵상하고 제자양육에 힘썼다.


교회학교 교사로도 섬겼다.


하나님을 의지하니 두려움이 없어졌다.


돈을 벌면 복음사역에 보탰다.


그런 과정에서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예비하심, 그의 사랑을 여러 차례 경험했다.


이후 그는 쌍용증권과 그룹선교회 창립을 주도했고 증권선교단 회장, 한국기독교직장선교연합회 대표회장 및 이사장,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선교위원회 부위원장, 일본복음선교회(JEM) 초대이사장, 솔로몬채권연구소 대표 등을 맡아 직장선교 활동에 힘썼다.


선교훈련도 받았다.


기독교대한성결교회와 세계기독교직장선교연합회 파송 선교사로 5년간 필리핀국제대학(PIC)에서 한국학과장을 지냈다.


평소 신앙관은 ‘한 셈 치고’다.


‘먹은 셈 치고, 입은 셈 치고, 여행한 셈 치고 절약한 돈으로 불우이웃을 돕는다’는 것이다.
그는 매일 5∼6시간 성경을 필사한다.


붓글씨로 지난해 한글성경 66권을 썼고 올해는 중국어성경을, 내년엔 일본어성경을 쓸 예정이다.
그는 현재 전문인선교사훈련원(LPGA) 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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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GA는 ‘Leader of Professional Global Academy’의 머리글자로,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한 실버전문인선교사 양성기관이다.


그는 최근 자신의 삶과 신앙을 담은 ‘LPGA와 함께하심’(엘피지에이)을 출간했다.
책 수익금은 LPGA 운영기금으로 사용한다.


그는 책에서 “현지인을 예수님 사랑으로 섬기며 현지인의 필요를 채우는 새로운 선교 패러다임이 요구된다. 이것이 바로 전문인선교 사역”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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