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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도 평창 미산교회 박영문 목사가 평창 대미교회 십자가 탑에 올라가 십자가 불빛 수리 작업을 벌이고 있다. 박 목사는 미산교회 부임 당시 망가진 십자가 탑 복원에 이웃교회 등이 나서 수리해 주자 ‘십자가회복선교회’를 조직, 미자립교회 십자가 수리 운동을 펼치고 있다.



고속도로가 산맥 하나쯤 우습게 뚫고 지나는 시대에 시골버스가 강원도 길을 돌고 또 돌았다. 

세상이 편해져 지방 어디에도 24시간 편의점은 있었다. 


지난달 22일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 밤재로 미산교회(박영문 목사)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평창은 2018년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있다. 


2014년 1월 정부가 승인한 ‘평창 동계올림픽특구 종합계획’에 따라 산골 구석구석에 개발의 손길이 닿는 듯했다. 


올림픽 성공을 염원하는 현수막이 도로변을 장식하고 있었다. 

미산교회는 평창군청에서 13㎞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예배당은 800∼900m 높이의 삼방산, 접산, 정개산이 둘러싸고 있고 골짜기로 난 413번 지방도를 따라 오르기를 계속하면 길옆에 교회가 나온다. 


교회 뒤편 삼방산 자락에 영화 ‘웰컴 투 동막골’ 촬영 현장이 있다. 그만큼 오지란 얘기다. 


애칭이 ‘동막골교회’인 미산교회 예배당을 지나 계속 가면 율치 고개가 나온다. 


영월읍으로 향하는 길이다. 


“하룻밤에 세우시고, 한나절에 허무시는 하나님이시죠. 여기가 그렇습니다. 지금은 아름다운 산골풍경이지만 한때는 2만여명이 살던 대처였습니다. 교회도 활발했겠지요. ‘한나절’ 만에 인적 드문 산골이 됐지요.”


박영문(46) 목사가 믿기지 않는 얘기를 했다. 


“고개 일대는 영월광업소 마차탄광 일원입니다. 탄광 직원만 4000여명이 살았죠. 산골이지만 전기가 들어오는 동네였어요. 평창과 영월 산골사람들이 전기 들어오는 이곳으로 구경올 정도였다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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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문 목사의 충북 제천 신영교회 십자가 조명 수리 작업.



'단 한 사람' 을 위한  교회여야 한다


1960∼70년대 ‘막장 인생’ 광부들은 자식만큼은 험한 일 시키지 않기 위해 진폐증이 걸린 줄도 모르고 일을 했다. 


하지만 고된 노동으로 번 돈을 술과 노름에 날리기도 했다. 

미산교회는 1952년 설립됐다. ‘뒤실교회’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다. 


당시 안봉관 목사가 초등학교 교실을 빌려 설립예배를 드렸고 이듬해 지금의 교회터 2층 건물을 사서 헌당예배를 올렸다. 


그러나 산골교회는 탄광의 쇠락과 함께 유지하기조차 힘들었다. 목회자가 자주 바뀌며 예배당을 꽉 채웠던 교인들도 거의 다 떠났다. 


마차탄광은 ‘강원도 탄광문화촌’이라는 박물관으로만 남아 있다. 

교회가 활기를 찾은 것은 2004년 박영문 강도사가 부임하면서다. 


총신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신대원 시절 전남 도서지방의 목회자 없는 교회를 보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며 “교회가 없어 복음을 듣지 못하고 세상 떠나는 일을 없게 한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란 생각에서 이곳까지 오게 됐다”고 말했다.


“부임 목회자가 나서지 않아 몇 개월씩 비어 있기도 한 예배당이었어요. 동네 어른들로부터 구술을 받아 교회연혁부터 정리를 했어요. 워낙 시골이다 보니 전도사들이 부임해 2∼3개월 또는 1년 안에 떠난 경우가 많더군요. 이제는 절대 문 닫는 일 없게 하겠다고 새벽기도 때마다 고백했습니다.”


박 목사는 부임 후 예배당 환경을 개선했다. 


45.9㎡(15평) 낡은 예배당과 사택 천장은 쥐가 끓었다. 


천정공사와 보일러공사, 성전 커튼 공사 등을 하고나자 마음이 좀 편안해 졌다. 

그리고 이듬해 십자가 탑과 십자가 조명공사를 했다. 


미자립 교회가 무너진 십자가 탑을 세운다는 건 쉽지 않다. 


철탑 구입과 크레인 장비 대여 등 적잖은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십자가를 밝히는 전구가 끊어졌다 해도 그 높은 곳에 크레인 없이 불가능하다. 


“종탑을 재건케 해달라고 기도하는데 어느 날 새벽 전화 한 통이 왔어요.

'종탑 필요하시지요'  하더라고요. 그렇게 기증받은 중고 종탑을 받아 좋긴 한데 운반비(130만원)가 있어야지요. 또 가져온다 한들 설치는 어떻게 합니까. 

그렇지만 하나님 방법으로 다 해결해주시더라고요. 애초 이 종탑을 기증했던 분이 소식을 듣고 다 해결해 주셨어요. 설치는 인근 백운교회 목사님이 와서 도와 주셨고요.”


박 목사는 어려운 교회끼리 서로 돕는 공동체의 삶을 체험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발 벗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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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교회인 미산교회 앞에 선 박 목사.


목회자가 되기 전 아파트 설비 일을 했던 경험을 살려 뜻을 같이하는 목회자 등과 함께 ‘십자가회복선교회’를 조직한 것이다.


그리고 강원도내 미자립교회 종탑 수리를 사명으로 삼았다. 


수십미터 첨탑에 오르면 아찔한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지만 목회 중 받은 사랑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했다. 


지난달 22∼23일에도 그와 회원 목회자들은 충북 제천 신영교회, 평창 우리교회와 대미교회 등 3곳의 십자가를 바로 세웠다. 


평창 동산교회 이성수, 평창 기화교회 김학범 목사가 고공 작업을 하는 박 목사를 도왔다. 



산골교회 맥가이버 '박 반장'  목사


박 목사 부임 후 미산교회는 다양한 전도로 반듯한 회중을 만들어 갔다. 


한 여름 닭백숙으로 마을 주민들을 대접하고 달력 제작 배포, 노인가정 시계 선물, 독거노인 집 도배 및 화장실 수리, 도시교회 봉사팀의 이미용 선교 주선, 방역 작업, 가정의 달 카네이션 꽃 달아드리기에 매달렸다. 


‘언제 어디서든 필요하면 나타나는 박 반장과 교인들’의 공동체가 된 것이다. 


“내가 공사장에서 설비 목공 전기 등 다양한 기술을 배운 게 하나님의 준비하심이었음을 그때야 깨달았다”고 했다.


고령화된 시골교회가 그렇듯 교회 성장이 쉽지 않다. 


그럼에도 청년 3명, 초등 및 중고등부 7∼8명이 박 반장을 따른다. 이들도 곧 도시로 갈 것이다. 서운하지만 하나님 방법에 따라야 한다. 


“복음으로 꽉 찬 사람들이 오든 가든 하나님께 맡기고, 교회는 예수님을 모르는 한 영혼이라도 있으면 그들이 있는 곳에 자리해야죠.” 


‘동막골’ 미산교회 입구 조선소나무 두 그루가 참 듬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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