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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도세미나에서 메세지를 전하고 있는 김기동 목사



뉴욕장로교회(김학진 목사)는 “복음으로 정복하고 섬김으로 다스리자”라는 주제로 봄 부흥집회를 3월 29일부터 3일간 열었다.


주일 오후에는 전도 세미나도 열었다.


강사는 고구마 전도왕으로 유명한 김기동 목사.


김 목사는 LA에서 소중한교회 담임목사로도 사역하고 있다.


김기동 목사는 LA에 있는 마켓 앞에서 전도할 때 수고한다고 1만 불을 헌금한 미국 할머니의 이야기를 전했다.


그런데 돈이 문제가 아니라 그 내용이 관심을 끌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전도대회에서 예수를 믿게 된 팔순의 할머니는 한인 성도들이 전도하는 모습을 보고 요즘은 전도하면 주로 이단들이 전도하는데 정통교단에서 전도하는 모습에 크게 감격하며 “미국이 살아있다(alive)”라고 외쳤다는 것. 김 목사는 그 외침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었다고 고백했다.


다음은 토요일 저녁에 김기동 목사가 마가복음 10:46~52를 본문으로 “보기를 원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전한 말씀의 핵심이다.


“내가 왜 여기에 살고 있는가,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 나는 왜 이 교회를 섬기고 있는가, 나는 왜 예수님을 믿는가?” 뉘앙스는 같은데 이 질문에 답이 창세기 1:28에 나온다.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라는 것은 모든 생명체에 명령하신 내용이다.


하지만 인간은 창조목적이 다른 생명체와 다르기에 2가지가 추가되어 있다.


이것이 인간의 창조의 목적이고, 인간의 존재의 목적이고, 인간 창조의 하나님이 주신 정체성이다. 그것은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것이다.


예수 믿는 우리에게 주신 축복의 명령이다.


이것은 나의 존재목적이고 정체성을 말하고 있다.


이렇게 하여 내 위치가 정확하게 파악되면 삶이 변화된다. 직장을 통해 만나는 사람을 정복하고 다스리게 하기위해 그들을 만나게 하시는 것이다. 이들을 그냥 놓치는 것은 정체성을 놓치는 것이다. 지금까지 스쳐지나가는 영혼들을 엄청 많이 놓쳤다. 축복의 그릇을 던져주셨는데 받아서 그냥 내버린다. 모르기 때문이다.




무엇을 가지고
정복하는가?


세상정복은 물질로 경제력으로 무력으로 한다.
그런데 크리스찬은 무엇으로 정복하는가? 정복의 도구는 “복음”이다.
그 어떤 권력자도 하나님이 작정하셨다면 복음 앞에 무릎을 꿇는다.
나는 조건이 안된다고 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다면 복음을 소유하고 복음으로 정복할 수 있다.


이 당당함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정체성을 찾는 것이다. 우리는 복음으로 남을 살릴 권세를 가졌다.




다스림은
무엇으로 하는가?


세상의 하는 다스림은 돈과 힘으로 한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 크리스찬의 다스림의 도구는 “섬김”이다. 예수님도 이 땅에 오신 것은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다고 하셨다.


우리는 남을 섬길 때, 영혼을 바라보고 섬기지 못하면 신경질이 난다.
섬기다 대상이 너무 아닌 것 같으면 화가 나고 중간에 섬기는 것을 포기한다.


그런 섬김은 애초부터 섬김이 아니다. 섬김의 핵심은 대가를 바라지 않는 섬김, 상대를 기준으로 하는 섬김이 필요하다.


나를 드러내려는 섬김, 내가 하고 싶어서 하다 상대가 안 따라오면 그만두는 섬김은 애초부터 하나님이 원하시는 섬김이 아니다.


그런 섬김은 아무리 해도 열매도 없고 하나님 앞에 올라가지도 못한다.


교회에서 하는 섬김은 정말 연약한 사람을 기준으로 하라. 그리고 대가를 바라지 말라.
한 없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주님의 사랑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섬김이 도구가 되어 그들을 다스릴 수 있다.


그래서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의 명령, 우리의 정체성은 정복하고 다스리는 것인데 복음으로 정복하고 섬김으로 다스리는 것이다.


그런데 정복의 대상, 섬김의 대상은 가나안이다.


역사적인 가나안은 소돔과 고무라이고, 앞으로 영원한 가나안은 우리가 갈 천국이다.
 그러나 이 땅에서 사는 크리스찬들의 가나안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것이 범위가 너무 크면 믿지 않는 내 옆집사람, 직장동료, 친구를 가나안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 가나안을 향해 복음으로 정복하고 섬김으로 다스리는 은혜가 넘치기를 축복한다.


복음으로 정복하고 섬김으로 다스리는 귀한 도구가 고구마 전도이다. 남침례신학교에서 14년 동안 공부하고 박사논문이 통과되었다.


신학적이며 성경적인 배경이 갖추어졌다. 교재는 한국어뿐만 아니라 각 나라 언어로 번역되어 있다.


이 툴은 복음을 더욱더 드러나게 한다. 한국적인 상황이 배경이라 미국에서는 안된다고 하는데 미국교회에서도 임상이 끝났다.


고구마 전도의 핵심은 4마디이다.


“예수 믿으세요?”, “그래도 믿어야 합니다”, “너~무 좋습니다”, “기도하고 있습니다”이다.
사람을 고구마로 비유한다.


처음에 익었는가 안 익었는가, 마음 문이 열렸는가 안 열렸는가는 젓가락을 찍어 보아야 한다.
그 첫 번째 젓가락이 “예수 믿으세요?”라고 물어보는 것이다. ‘교회 다니느냐’ 혹은 ‘신앙생활을 하느냐’  묻는 것은 힘이 없다. 예수님을 믿는가를 묻는데, 그 사람이 믿고 안 믿고는 하나님의 주권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름이 나오는 순간부터 악한 영이 떠나간다.


“예수 믿으세요?”라고 물었을 때 저항이 나오면 설득할 필요가 없다.
마음속으로 ‘생고구마이구나’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그냥 하나님께서 아직 작정을 안시키셨다고 판단되면 듣고 있다가 그가 주장하면 “그렇군요”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라고 대답하면 된다. “~군요”는 맞다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상대방이 화를 내다가도 조용해진다.


“예수 믿으세요?”라고 했을 때 “불교예요”라고 대답하면 “오, 불교구나” 하는 것이다.
교회의 문제에 대해 항의를 하면 “그렇게 생각하시는구나” 또는 “그런 일이 있었군요”라고 응답하면 된다.


절대로 논쟁하고 싸울 필요가 없다. 헤어지기 전에 두 마디를 더 한다.
“그래도 믿어야 합니다”라고 한다. 네가 아무리 그래도 믿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고, 그래도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너~무 좋습니다”라고 한다. 예수 믿는 것이 너무 좋다는 것이다. 그리고 “안녕히 계셔요”라 하고 헤어진다.


다음에 그 사람을 또 만나면 “기도하고 있습니다”라고 두 번째 젓가락을 찌른다. 
“예수 믿으세요?”, “그래도 믿어야 합니다”, “너~무 좋습니다”, “기도하고 있습니다”라는 4마디가 고구마 전도의 핵심이다.


선교지에서, 복음을 직접 전하기 힘든 이슬람권에서도 고구만 전도는 아무 표시도 안난다.
커피를 마시고 “정말 커피를 잘하시네요”라고 한 후 “그런데 물어 볼 것이 있는데 혹시 예수 믿으세요”라고 묻는다.


자신은 무슬림이라고 대답하면 “그렇군요. 그래도 꼭 한 번 믿어보세요. 너무 좋아요”라고 하고 “얼마예요?”라고 계산하고 나오면 된다.


전도를 하여 한 사람이 주님 앞에 돌아오는 것도 열매이지만 전도하는 과정이 열매이다.


<뉴욕 아멘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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