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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로 활동 중인 박윤경(가명·30·여)씨는 교회에서 진로상담을 받던 중 고정된 성 역할 관념에 부딪혀 실망한 적이 있다. 


그는 “진로상담을 위해 교역자의 아내와 대화하다 ‘너는 여자인데 직업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는구나’라는 답변을 듣고 무력감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대학원생 서윤미(가명·27·여)씨는 최근 교회에서 설교를 듣다 순간 귀를 의심했다. 


“남자는 특정 능력이 뛰어난 게 복이고, 여자는 아름다운 미모가 복일 수 있다”는 성차별적인 설교 내용에 충격을 받았다.


지난달 29일 서지현 검사의 검찰 내 성추행 피해 고발 이후 SNS 등에 성범죄 피해를 밝히며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미투(MeToo)’ 운동이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6일 최영미 시인의 문단 내 성폭력 실태 폭로로 이어지고 사회 전반으로 확대되면서 이제 미투 운동은 “교회 안의 성차별을 타파하자”는 운동으로까지 번지는 모양새다.


교회 내 성차별 문제는 대부분 알지만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는 고질적 문제다.


서울신학대 한국기독교통일연구소가 지난해 3월 13일∼4월 10일 기독교대한성결교회(기성) 소속 목회자 장로 집사 등 102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평소 교회에서 성차별적 언어가 사용되고 있느냐는 질문에 74.7%가 ‘그렇다’고 답했다. 


성차별적 언어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사람으로는 일반 성도(48.4%)와 목회자·교회 중직자(34.5%), 청년·학생(17.1%) 등이 꼽혔다. 


교회 내 성차별적인 발언과 관행이 일상화됐음을 드러내는 통계다.


주부 유희경(가명·34)씨 역시 교인들이 무심코 말한 성차별적 발언에 상처받은 경우다. 

유씨는 “출산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교회에서 ‘둘째는 언제 낳느냐’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면서 “그다음으로 많이 받은 질문이 ‘남편 밥은 잘 해주고 있느냐’였다”고 전했다.

특히 문제되는 것은 남녀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다. 


청어람ARMC(대표 양희송)가 지난해 5월 470명의 기독교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교회에서 여성이 맡는 일과 남성이 맡는 일이 관습적으로 구분돼 있다’는 문항에 대해 91.9%가 ‘그렇다’고 답했다.


사회복지사 최지혜(가명·34·여)씨는 “식사 준비는 여자만 하는 게 다반사고 가끔 남자들이 도와주면 가정적이라고 치켜세운다”며 “여자가 가정적인 것은 당연하고 남자가 가정적이면 귀한 희생을 한다고 보는 현실이 슬프다”고 토로했다. 


그는 “신혼 때 ‘가정의 머리가 되는 남자를 여자가 이기려 들면 가정이 제대로 될 리 없다’는 식으로 교육받았다”며 “여성은 ‘돕는 배필’로 뒷바라지하고 애를 많이 낳는 게 미덕이라는 편견에서 벗어나 여성의 사회 진출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목회자들 사이에서도 미투 운동을 교회 자정의 기회로 삼자는 움직임이 나온다. 

김영봉(미국 와싱톤사귐의교회) 목사는 지난 4일 SNS에 ‘우리도 #MeToo합시다’라는 글을 올렸다. 


그는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여성들의 아우성을 들으면서 남성들은 자신들의 사고방식과 언행을 진지하고 심각하게 돌아봐야 한다”며 “교회 안팎에서 예의와 존경심으로 여성을 대하고, 교회도 미투 운동에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년사역연구소장 이상갑(군포 산본교회) 목사도 7일 청년사역연구소 SNS에 ‘#미투운동을 지지합니다’는 글을 올리고 “한국교회에도 미투 운동을 확산시켜야 한다”고 제안했다.


전문가들은 교회가 성차별 문제 해결에 앞장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백소영 이화여대 교수는 8일 “십자가 아래 어떤 차별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교회에서는 남성의 권위가 여성보다 우위에 있었다”며 “평신도가 가부장적 시각이 아닌 보편적 시선에서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주체적인 모임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국염 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부회장은 “과거 사회를 계도하던 교회가 이제는 사회의 성평등 수준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며 “교회가 성차별 문제에 대해 자정능력을 회복해야 한다”고 밝혔다.


교계 원로인 박종순(서울 충신교회) 원로목사는 “창조원리대로 따지면 남녀를 차별하면 안 된다”면서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고 교회 내 역할도 중요해졌고, 앞으로 한국교회도 점차 남녀평등을 이루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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