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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승쾌 장로



눈이 비가 되어 내리고 얼음이 녹아서 물이된다는 뜻의 우수(雨水)는 날씨가 많이 풀려 봄기운이 돋고 초목이 싹트는 절기라고 볼수 있습니다.


경칩(驚蟄)은 날씨가 따뜻하여 각종 초목이 싹이트고 겨울잠을 자던 동물들이 땅위로 나오려고 꿈틀거린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입춘, 우수, 경칩, 춘분, 청명, 곡우...


시험공부할 때 줄줄 외우던 24절기들 입니다.


올해는 지난 19일이 우수였으니까 경칩은 3월 6일이 되겠네요.


분명 절기상으로는 비가 내리고 얼음이 녹고 또 봄기운이 돋는 따뜻한 날씨여야 하는데 요즘 베이지역은 기온도 내려가고 역사상 가장 건조한 2월이라는 기상청의 발표를 듣게 됩니다.


기상청에 따르면 베이지역의 2월 강수량은 극히 적으며 3월전까지 비가 올 확률 또한 적어서 150여년만에 가장 건조한 2월을 기록할 것 같다는 예보도 곁들였습니다.


몇년전 캘리포니아주의 큰 가뭄으로 주민들이 물을 아끼다 못해 큰 불편을 겪었던 날들이 다시 닥쳐올 것 같다는 예감이 들기도 합니다.


지금 평창동계올림픽의 막바지를 달리고 있는 한국에서도 '우수'가 지났다 해도 올림픽이 개최되고 있는 강원도 평창지역은 체감온도가 영하 10도를 웃돈다고 합니다.


저는 해마다 '우수'가 지나고 '경칩'이 다가오고 있는 이 절기때쯤이면 한가지 일이 꼭 생각납니다.

충청남도 서해안 바닷가의 어느 어촌마을교회에서 목회를 하는 젊은 목사로부터 받은 편지 내용입니다.


제가 CBS 대전방송 본부장 시절이었습니다.


저희 방송 어느 프로그램을 청취하고 써보낸 그 편지는 저뿐만 아니라 우리 직원 모두의 가슴을  저리게 했던 것 같습니다.


"우수·경칩 사이인데도 어찌 날씨가 이리 매서운가? 바닷가여서 바람은 몹시 차갑다. 올 겨울 방 하나에 다섯식구가 딩굴면서 보일러 기름 두 드럼을 가지고 겨울을 났다. 지금 방안의 온도도 섭씨 10도. 오래 앉아 있으니 발이 몹시 시려온다..."

당시 그 목회자 편지의 내용이 계속 떠오릅니다.


"목회생활 햇수로 따지면 10년. 돌아보면 나야말로 하나님의 돌보심이 아니었으면 어떻게 살았을까? 생각하니 고맙기 그지없다.  10년동안 받아본 사례는 일곱달. 합쳐서 칠십만원. 한달에 10만원 받는 사례비도 고작 일곱번 밖에 안됐다. 늘 가까이에 있는 양가에 짐된 생활을 많이 했다."

말로만 듣던 시골 어촌마을교회의 목회자 고뇌가 어떤 것인가 전해지는 대목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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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 모든 방송국 직원들은 이 가난한 목회자가 보낸 편지에서 찌든 가난얘기보다는 감사의 마음이 넘쳐나 있었다는데 놀랐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런 생활을 살아보지 않았다면 어떻게 남의 어려움과 돌보심을 알 수 있었을까?

지금 앞길은 험해도 걸어온 길은 온통 은총이니 그분을 의지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만하다."


뿐만 아니라 사랑도 담겨 있었습니다.


"엊그제 위암수술을 받고 두달가량 입원했던 교회 할머니를 양로원에 모셔다 주었다. 가까이서 돌보지 못해서 미안하고 속이 답답하다. 새벽에 일어나 할머니를 생각하니 할머니도 지금 나처럼 낯선 곳에서 잠 못 이루고 있을거라고 짐작하니 눈물이 났다..."


비록 돈이 넉넉치 못하고 목회 여건이 풍족치도 못해 힘들고 어려웠고 또 고독했지만 이 목회자의 마음엔 언제나 하나님이 함께 계셨고 나눔의 사랑이 충만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걸어 온 길이 온통 은총이라고 생각하는 그는 어느 누구 못지 않은 부자였다고 생각됩니다.


저와 우리직원들은 언젠가는 한번 그곳을 방문해 보자고 스스로 약속했는데 그것을 못지켜 참으로 미안한 마음이 꼭 이 절기쯤이면 생각납니다.


얼었던 대동강 물이 풀리고 겨우내 긴 겨울잠을 잔 개구리가 몸을 내민다는 '우수'·'경칩'...

앞으로도 이 절기때가 되면 그 목회자 생각이 날것 같습니다.


지금은 어느곳에서 목회를 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것 없이 그는 보일러 기름을 맘껏 때지 못하고 추위가 물러나기만을 기다릴 것 같습니다.


그 목사에게 봄은 언제나  올까요 ?


그러나 감사와 사랑이 넘쳐나는 그 가난한 목회자의 마음에는 이미 화사한 봄이 찾아와 있을 거라는 위안을 해봅니다.


<본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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