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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익 교수



본지는 유영익 전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석좌교수가 과거에 쓴 논문 '우남 이승만의 기독교 건국 리더십'을 소개합니다.
지난 3월 이승만 초대 대통령과 관련, 도올 김용옥 한신대 석좌교수가 촉발시킨 논란과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계기로 이승만 초대 대통령과 그의 기독교 신앙을 다시 돌아보고자 합니다.
유 교수는 미국 휴스턴대학교 사학과 조교수-부교수(Tenure 취득),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사학과 객원교수, 역사학회 회장,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부설 현대한국학연구소 창립소장, 국사편찬위원장을 역임했습니다.     <편집자 주>




그 후 1919년 8월에 이승만은 한성임시정부의 집정관총재(執政官總裁:Chief Executive)의 직권으로 워싱턴D.C.에 구미위원부(歐美委員部: The Korean Commission to America and Europe)를 설치하고 이 기구를 통하여 외교와 선전 위주의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이 과정에서 그는 구미위원부의 위원장과 위원(Commissioner) 등 핵심 간부들을 모두 독실한 기독교 목사 내지 장로들 가운데서 선임하였다.


동시에 그는 필라델피아에 거주하는 서재필과 협력하여 다수의 미국인 기독교 목회자들을 포섭, 그들로 하여금 '한국친우회(The League of Friends of Korea)'를 조직하여 이를 통해 한국인의 독립운동을 지원토록 하였다.


1941년 말 진주만 사건(Pearl Harbor)을 계기로 미·일 간에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미국 정부를 상대로 중경(重慶)에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승인을 얻어내는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 때에도 그는 워싱턴D.C.의 파운드리 감리교회(The Foundry Methodist Church)의 목사이며 미 연방상원의 원목(chaplain)인 해리스(Frederick B. Harris) 목사를 이사장으로 받들고 '한미협의회'(The Korean-American Council)를 조직하고 또 일제시대에 연희전문학교 교장이었던 애비슨(O. R. Avison) 박사를 주축으로 '기독교인친한회(The Christian Friends of Korea)'를 조직하여 이들 두 단체의 적극적 지원을 얻어 미국 정부에 승인 획득에 필요한 로비활동을 펼쳤다.



3. 대한민국 건국기의 언행

해방 후 33년 만에 귀국한 이승만은 1945년 11월 28일 정동예배당에서 김구(金九) 선생과 함께 예배를 드린 다음 아래와 같이 의미심장한 연설을 하였다.


"나는 여러분께 감사합니다. 40년 동안 사람이 당하지 못할 갖은 고난을 받으며 감옥의 불같은 악형을 받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불러온 여러분께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를 새로이 건설하는데 있어서 아까 김구 주석의 말씀대로 튼튼한 반석 위에 세우려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예물로 주신 이 성경 말씀을 토대로 해서 [새 나라를] 세우려는 것입니다.
부디 여러분께서도 하느님의 말씀으로 반석 삼아 의로운 나라를 세우기 위하여 매진합시다."


그 후 이승만은 1946년 2월에 반탁운동을 추진하기 위한 대중조직으로서 '대한독립촉성국민회'를 결성하고, 1946년 6월에는 남한에 자율정부-이른바 단독정부-를 수립하는 추진기구로서 '민족통일총본부'(민통)를 발족시켰다.


이어서 1947년 7~8월에는 남한단정 수립과 총선거를 관철하는 기구로서 '한국민족대표자대회'와 '총선대책위원회'를 조직·발족시켰다.


그런데 이승만은 이들 여러 단체의 지도부에 기독교 목사와 장로 그리고 권사들(예컨대, 이윤영, 배은희 등 목사와 김활란 등 여성 지도자)을 발탁·기용하였다. 말하자면, 이승만은 해방 후 대한민국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남한의 기독교 지도자들과 긴밀히 협조하면서 국가 건설 작업을 진행시켰던 것이다.


1948년 5월 10일 총선거에서 동대문 갑구의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이승만은 1948년 5월 31일에 열린 제헌국회 개원식(제1차 회의)에서 임시의장으로 추대되었다.


제헌국회 임시의장 이승만은 이 역사적 회의를 개시하기에 앞서 다음과 같은 말로써 이윤영(李允榮) 목사(의원)에게 식순에 없는 기도를 부탁하였다.


"대한민국 독립민주국 제1차 회의를 여기서 열게 된 것을 우리가 하 나님에게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종교, 사상 무엇을 가지고 있든지 누구나 오늘을 당해 가지고 사람의 힘으로만 된 것이라고 우리가 자랑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게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윤영 의원 나오셔서 간단한 말씀으로 하나님에게 기도를 올려 주시기 바랍니다."


이 부탁에 응하여 단상에 오른 이윤영 목사는 아래와 같은 기도를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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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국회는 기도로 시작했다...1948년 5월 31일 제헌국회 개원식에서의 기도장면



<기도문 전문>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이시여, 이 민족을 돌아보시고 이 땅에 축복하셔서 감사에 넘치는 오늘이 있게 하심을 주님께 저희들은 성심으로 감사하나이다.


오랜 시일 동안 이 민족의 고통과 호소를 들으시사 정의의 칼을 빼서 일제의 폭력을 굽히시사 하나님은 이제 세계만방의 양심을 움직이시고 또한 우리 민족의 염원을 들으심으로 이 기쁜 역사적 환희의 날을 이 시간에 우리에게 오게 하심을... 저희들은 믿나이다.


하나님이시여,‥남북이 둘로 갈리어진 이 민족의... 고통과 수치를 신원하여 주시고 우리 민족 우리 동포가 손을 같이 잡고 웃으며 노래 부르는 날이 우리 앞에 속히 오기를 기도하나이다.


하나님이시여, 원치 아니한 민생의 도탄은 길면 길수록 이 땅에 악마의 권세가 확대되나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광은 이 땅에 오지 않을 수밖에 없을 줄 저희들은 생각하나이다.


원컨대 우리 조선 독립과 함께 남북통일을 주시옵고 또한 우리 민생의 복락과 아울러 세계 평화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뜻에 의지하야 저희들은 성스럽게 택함을 입어가지고 글자 그대로 민족의 대표가 되었습니다. 그러하오나 우리들의 책임이 중차대한 것을 저희들은 느끼고 우리 자신이 진실로 무력한 것을 생각할 때 지(智)와 인(仁)과 용(勇)과 모든 덕(德)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 앞에 이러한 요소를‥간구하나이다. 이제 이로부터 국회가 성립이 되어서 우리 민족의 염원이 되는 모든 세계만방이 주시하고 기다리는 우리의 모든 문제가 원만히 해결되며, 또한 이로부터서 우리의 완전 자주독립이 이 땅에 오며 자손만대에 빛나고 푸르른 역사를 저희들이 정하는 이 사업을 완수하게 하야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이 회의를 사회하시는 의장으로부터 모든 의원 일동에게 건강을 주시옵고 또한 여기서 양심의 정의와 위신을 가지고 이 업무를 완수하게 도와주시옵기를 기도하나이다.


역사의 첫걸음을 걷는 오늘의 우리의 환희와 우리의 감격에 넘치는 이 민족적 기쁨을 다 하나님에게 영광과 감사를 올리나이다. 이 모든 말씀을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을 받들어 기도하나이다. 아멘."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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