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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승쾌 장로



영국 옥스퍼드에서 정치와 철학, 그리고 경제를 공부하고 뒤늦게 의과대학에 입학해서 신경외과 의사가 된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헨리 마시.


헨리 마시는 간호사인 누이와 함께 임종을 앞둔 그들의 어머니를 집에 모시고 보살펴 드렸습니다.


임종을 앞둔 어머니는 마시와 또 그의 누이와 의논한뒤 아버지와 40년간 함께 지내온 2층 침실에 머물르기로 했습니다.


"여기가 내가 죽을 곳이 될 것" 이라고 어머니가 결정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남매는 아침 저녁으로 번갈아가며 어머니를 보살펴 드렸고 임종 이틀전 그들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사랑에 둘러 쌓여 있다는 건 아주 특별한 느낌이야"

"난 지금 좋았던 일들을 떠올리고 있단다."


작가 헨리 마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현명하신 우리 어머니 말고 과연 누가 이토록 완벽한 죽음을 누릴수 있을까? 

건강하게 장수한 끝에 내 집에서 고통없이 빠른기간에 가족의 보살핌을 받으며 맞이하는 죽음!"


어머니의 죽음을 , 그리고 수많은 환자들의 죽음을 지켜본 헨리 마시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 이런생각을 이야기 했었습니다.


'심장마비등 기왕이면 자는 동안 빨리 끝났으면 좋겠지만 그런 복(?)은 쉽게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삶을 돌아보며 "고운 한마디"는 남기고 싶다.


이렇게 말입니다...


"멋진 삶이었어, 우리는 할일을 다했어"


작가의 어머니가 마지막 순간에 이렇게 되뇌였다고 합니다.


<헨리 마시의 "참 괜찮은 죽음" 중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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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잘 아는 아일랜드 극작가 버나드 쇼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묘비명에는 이렇게 써있다고 합니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렇게 될줄 알았지"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누군가가 한국말로 위처럼 번역한지는 알 수 없지만 영문을 번역하면 "내 오래 살다가 결국 이런일이 있을 줄 알았지, 즉 내 오래 살다 결국 내 묘비를 세우는 날이 올줄 알았지" 일것입니다.


즉, 좀더 구체적이고 결단력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교훈으로 한국말 번역이 그렇게 된 것으로 짐작해 봅니다.


4~5개월전 이 지역에서 교회를 개척하신 젊은 목회자와 며칠전 자리를 같이 한적이 있습니다.

처음으로 만나는 자리였기에 이런저런 할 얘기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그 목회자는 사람들로부터 사역자가 된 연유를 묻는 질문에 답변하기가 제일 곤혹스럽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로 왜 어렵고 힘든 크리스찬 신문을 시작했느냐는 질문에 답변하기가 가장 어렵다고 맞장구를 치기도 했습니다.


이런저런 오가는 얘기중에 그러나 제 귀에 꽃혔던 한마디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주님!, 제가 아니면 돌볼 사람이 없는 그런 영혼들을 보내주십시요"라고 기도한다던 그의 말이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교회나 교인들로부터 상처받고 눈물흘리고 교회를 등진 이른바 '가나안' 성도 형제자매들이 수두룩 합니다.


모쪼록 그런 영혼들을 잘 돌보시는 사역자가 되시라고 마음속으로 기도했습니다.


크리스찬으로서 평생 한 사람도 전도 못하고 교회에 충성도 못하고 이웃도 돌보지 못하고 삶을 마감한다면 우리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버나드 쇼의 묘비명처럼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렇게 될줄 알았지"보다는 

"멋진 삶이었어, 우리는 할일을 다했어"라는 말을 남길수 있도록 후회없이 열심히 살아야 겠습니다.


<본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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