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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1년부터 2008년까지 대한민국 GDP 경제규모 추이.



65년 전, 전쟁의 잿더미에서 GDP 세계 11위로 성장

하나님 은혜로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여기까지 왔으니

앞으로도 신앙생활 잘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들어 가야



우리는 ‘나라’가 주는 혜택을 곧잘 잊고 지낸다. 


공기처럼 늘 마주하기에 존재감을 느끼지 못하지만, 우리나라는 국민에게 매우특별한 공간이다. 

대한민국은 성공한 나라이고 국민에게 삶의 좋은 기반을 제공한다. 


국내총생산(GDP) 세계 11위로 경제규모가 크고 산업 구조상으로도 전자, 전기, 반도체, 철강, 조선, 자동차, 석유화학을 다 가진 몇 안 되는 국가다. 


이러한 강대국형 고도 산업구조를 갖춘 국가는 전 세계를 통틀어 영국, 프랑스, 미국, 독일, 이탈리아, 일본, 러시아 정도다. 


그중에 대한민국이 끼어 있으며 2차 세계대전 이후 진입한 나라로는 유일하다. 


물질적인 면 이외에도 민주주의와 신앙의 자유 측면에서 다른 선진국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 


‘한강의 기적’이라는 말을 자주 듣다 보니 이제는 식상하게 느껴지지만, 오늘의 대한민국을 세우는 과정은 ‘기적’이라는 말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한 나라를 세우려면 영토, 국민, 주권이라는 삼 요소는 물론이거니와 군사력을 기반으로 한 안보, 경제 발전에 토대를 둔 국민의 생활안정, 건전한 건국이념과 그에 걸맞은 제도와 관료라는 제반 요건을 갖춰야 한다. 


이것을 다 갖추는 일은 절대 만만하지 않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식민지 100여 국이 독립했지만, 그중 민주화는 고사하고 경제 발전에 성공한 나라도 거의 없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겨우 몇 나라만이 나라다운 나라로 변모했을 뿐이다. 

복권이 당첨될 확률의 성공이었다면 그나마 실감할까. 우리의 역사를 모조리 자랑스럽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대한민국을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라고 폄하한다면 실상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실제로 우리나라를 세우는 과정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기적 같은 일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국가 발전의 기틀이 된 ‘안보 체제’ 구축 과정도 그러했다. 대한민국의 안보 체제는 1953년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근간으로 하는 한미 동맹에 기초를 둔다. 


간혹 대한민국의 지정학적 가치가 높아서, 미국이 자국의 국익을 위해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맺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실은 그와 다르다. 


오히려 건국 대통령 이승만이 미국이 원치 않던 조약을 ‘협박’에 가까운 외교적 수완을 발휘해 얻어낸 것이다. 


미국은 6.25사변 후 조속한 휴전을 원했다. 


반면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이 정전협정을 체결하면 대한민국 국군만으로 전쟁을 계속하겠다고 미국을 위협한 끝에, 휴전에 합의한 대가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얻어냈다. 


변방의 약소국이 지정학적 위치를 활용한 외교로 세계를 호령하는 대국을 움직여, 전후 복구를 급속히 이루어 가던 일본의 재침략과 공산권의 위협을 막는 안보체제를 구축한 것이다. 외국 어느 논평자가 ‘칼을 물고 뜀뛰기’를 한다고 표현할 만큼 미국에 대한 이승만 대통령의 ‘위협’은 당시로서는 결과를 알 수 없는 매우 불투명하고 위험하기까지 한 승부수였다. 


실제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이승만을 “너무나 마음에 들지 않는 동맹자”로 표현하고, 휴전에 반대하던 이승만을 제거하려고 ‘에버레디 계획(Plan Everready)’을 검토하기까지 했다는 사실은 안보체제를 구축하려는 이승만이 미국과 얼마나 위험하면서도 치열한 협상을 했는지를 보여 준다. 


산업화 과정 역시 기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때 미국은 공업국가 일본의 파트너가 되는 농업국가 모델을 한국에 제안했다. 


하지만 이승만은 미국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고 일본에 의존하지 않는 독자적 수입 대체 공업화를 추진한다. 


공업 기반이 전무한 데다 나라 살림 상당 부분을 미국 원조에 의존하는 처지로서 쉽지 않은 결단이었다. 


이후 박정희는 좀 더 본격적으로 수출 주도 공업화를 추진한다. 


1960년대 초에는 ‘수출 주도 공업화’라는 개념조차 없었을 뿐 아니라 공업화를 추진할 초기 자본도 없었다. 

또 전쟁 위험국으로 분류된 터라 해외에서 돈을 빌릴 수도 없었다. 


그런 상황을 감안해 보면 이 역시 거의 영감에 기초한 ‘도박’이었다. 


하지만 두 지도자에 의한 공업화 노선 선택은 이후 우리 경제가 번영의 길을 걷는 출발점이 된다. 


모든 일이 흘러가고 그 결과를 아는 지금, 나라 세우는 과정이 뭐 그리 대단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과거를 지금의 눈으로 봐선 안 된다. 


그때는 자금과 자원의 절대 부족, 성공을 확신할 수 없는 장기 프로젝트에 대한 국내의 극심한 반대, 외침과 공산화라는 안보의 위협이 미래의 불확실성을 가중했다. 


한순간 선택의 실수가 전 국민을 굶주림, 고통, 죽음으로 몰아넣을 위험이 존재했다. 

그래서 모든 상황은 피 말리는 결단과 목숨 건 노력이 필요했다. 


그 과정의 갈피갈피를 값 치르지 않고 넘어온 적이 거의 없으므로, 현세대가 이 나라의 성공으로 입는 혜택은 아주 특별한 것이다. 


그것은 반공을 명확히 하고 나라를 부강한 방향으로 이끈 걸출한 지도자의 지략과 영감, 각자의 자리를 성실히 지킨 국민의 피와 땀에 힘입은 바 크다. 


또 그 이면에는 모든 성공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계획과 도움이 있었다.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우리 현대사에서는 외침에 대항해 나라를 지키고 국민을 가난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한 노력이 크게 조명받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의 풍족한 우리 삶과 자유로운 신앙생활이 다른 무엇보다도 이 나라의 부강함에 기초하고 있다면, 그런 노력이야말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하고 기념해야 할 사건임이 분명하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삶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알아야 그 삶을 지킬 수 있고, 더 나은 내일도 만들어 갈 수 있다. 


망각은 우리 삶의 기반을 허물고, 신앙생활을 어렵게 하는 단초가 된다. 


근래 들어 대한민국의 과거를 전면 부정하는 역사관이 목소리를 높이다 못해 주류를 차지해가는 듯하다. 


나라를 위한 기도가 더욱 절실히 필요한 때다.


<이계룡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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