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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승쾌 장로



"여러분은 스스로 교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성도라고 생각하십니까?"


교회에 출석하시는 분 치고 이런 질문을 받거나 혼자 생각해보시지 않으신 분은 거의 없으리라고 봅니다.


며칠전 어느 목회자의 설교테잎을 들었습니다.


이곳 저곳, 여기 저기서, 또  이 목사님 저 목사님한테서 많이 들었던 성도의 신앙생활에 대한 얘기였지만 2014년 새해라서 그런지 그 말씀이 사뭇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성경 본문은 사무엘하 6장 말씀으로 다윗이 하나님의 궤(법궤)를 운반해오는 과정이었습니다.


제사장 아비나답과 그 두아들 웃사와 아효가 동행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궤를 잘 운반하기 위해 새수레를 준비하고 힘센 소로 하여금 끌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나곤의 타작마당에 이르러 소가 뛰었다고 밝히고 법궤가 떨어지는 것을 막기위해 웃사가 그 궤를 붙잡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웃사는 하나님의 진노하심으로 바로 그 법궤옆에서 죽었다고 설명합니다.


다윗왕의 명령을 받들어 하나님의 궤를 운반하려던 아비나답과 두 아들은 수레도 새것으로 마련하고 그리고 힘센 소를 이용 법궤를 잘 옮기려했던 것인데 그만 현장에서 죽었습니다.


이를본 다윗왕이 얼마나 놀라고 또 두려워했을지는 상상이 가능합니다.


곧바로 다윗성으로 법궤를 옮기기를 중단하고 하나님의 뜻과 방법을 연구했을 겁니다.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우리 인간들의 편리한 방법으로 법궤를 옮기려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진노하신 것입니다.


민수기 4장을 보면 법궤를 옮길때는 만지지도 말고 보지도 말며(열지말라) 어깨에 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웃사의 가족들은 세상적으로 말하자면 더 효율적인 방법으로 그 법궤를 운반하려했던 것입니다.


법궤가 떨어지려했으니 붙잡았고 수레도 새것에다 힘센(?) 소를 이용하는 것은 세상적으로는 다 맞는 방법일수도 있습니다.


헌데 하나님의 방법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이처럼 하나님의 방법과 하나님의 뜻을 잊고 나의 방법, 나의 지혜, 나의 편리함, 또 나의 뜻으로 일을 처리해 갑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원치 않으시는데도 우리는 그것이 곧 하나님의 뜻인것처럼 착각합니다.


교회와 성도들을 섬기고 봉사하고 사역하는 많은 것들이 때때로 하나님의 뜻과 방법이 아닌 우리의 방법이었음에도 모르고 지나치기 일쑤입니다.

언제든 최고, 최다의 결과만을 목표로 일할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최고, 최다, 최상보다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말씀대로 순종하고 살아가기를 분명 원하십니다.


따라서 자기뜻대로 자기 방법대로 교회를 섬기는 분은 교인이고 하나님의 방법과 뜻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분이 성도라고 목사님은 주장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때로는 불편하고 고통스럽고 힘들고 어려울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방법으로 그 길을 걸을때 하나님께서 동행해주시고 축복해 주실것을 확신한다며 그 목사님은 말씀을 마치셨습니다.


가끔 들어왔던 교인과 성도의 구분이새해와 함께 새로운 기분으로 마음을 파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2014년도에는 나의 계획과 나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힘으로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만이 우리의 힘이 되시기에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의지하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본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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