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소망과 기쁨으로 가득차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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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순구 목사

<성령의비전교회 담임,

산호세 교회협의회 회장>


부활절을 맞는 베이 지역 모든 분들에게 주님의 소망과 위로가 넘치시기 바랍니다.  

부활은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하나님의 능력의 표현입니다.  


죽은 자가 어찌 살아날 수 있을까?  


그런데 성경은 우리 주님께서 죽었다가 3일 만에 살아나셨고 우리도 마지막 때에 모두 살아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활이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우리는 7-80년, 길어야 100년을 채우지 못하고 생을 마칩니다. 

어렸을 때와 늙어서 아플 때를 제외하고 기껏 수십 년을 활동하며 살다가 갑니다. 

묘지에 가보면 이름과 몇 년에 태어나 몇 년에 죽었는지의 기록만 남아 있습니다.  

그것도 2-30년 지나면 찾아오는 이도 없어 때 묻은 묘비만 남습니다.  

우리가 그렇게도 사랑하던 가족들도 성취했던 업적도 세월과 함께 다 사라져 버립니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스러질 안개일 뿐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전부인양 집착하고 미워하고 상처받고 절망합니다. 


이스라엘 솔로몬 왕은 이세상의 모든 부와 권력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것이 해아래 헛되다고 고백했습니다.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보이는 세계가 진짜가 아니라 믿음의 세계가 진짜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부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우리도 장차 모두 부활 할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살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부활의 믿움으로 가득 채우십시오. 


그리고 낙심과 절망과 미움을 털어버리십시오. 


우리가 겪는 이세상은 잠시 나그네 의 삶일 뿐이요 부활의 삶, 영원한 삶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베이 지역 모든 분들이 부활의 소망과 기쁨으로 가득차게 되시기 기도합니다.







부활의 예수님을 증인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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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직 목사

<샘물침례교회 담임>


사람들은 고통을 당할 때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고 질문합니다. 

필립 얀시는 “내가 고통 당할 때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 라는 책에서 이 질문에 대답을 합니다. 

사람들이 고통과 상황에만 주목하면 오히려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마리아는 비슷한 상황 가운데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1.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절망 가운데서도 소망)이 되십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진 사실에 놀라서 무덤 밖에서 울면서 절망합니다. 

천사가 “어찌하여 우느냐?” 라고 물으니 “사람들이 주님을 어디다 옮겨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합니다” 라고 대답하면서 울고 있습니다. 

그 슬픔과 절망 가운데서 마리아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말을 걸어 오셔도 알아보지도 못하고 동산지기인 줄로 압니다. 

그러나 만약에 예수님의 시신이 무덤에 있었더라면, 이것은 정말로 절망해야 할 문제가 되고맙니다. 

만약 예수님의 시신이 무덤에 있었다면, 마리아는 절망하지도 않아도, 통곡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하지만 온 인류는 죄로 인한 죽음의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없게 되어 정말로 큰 문제입니다. (고전15: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사실 없어진 시신으로 빈 무덤이 예수님의 부활을 증명함과 동시에,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겨내신 주님으로 인해 모든 믿는 자에게 궁극적인 소망과 위로를 가져다줍니다. 


삶의 여러 가지 문제로 고통과 절망하는 가운데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절망과 고통 가운데서도 함께 하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소망 가운데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마28:20)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2.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잊고 있던 증인의 사명)을 깨우쳐 주십니다


마리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대화를 나누면서도, 그 분이 예수님이신지 알아보지 못합니다. 

늦게 예수님을 알아본 마리아는 예수님을 만지고 붙잡으려고 합니다. 


잃어버린 예수님을 찾게 되어 너무 기뻐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알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를 깨우쳐 주십니다. (요20: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다르게 표현한다면 ”내가 아직은 승천하지 않았기 때문에 얼마동안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내 아버지가 너희 아버지요 내 하나님이 너희 하나님이시니 나는 그 분께로 간다. 나를 붙잡지 말고, 가서 내 형제들에게 나의 부활을 전해라.”


마리아에게 잊고 있던 사명을 깨닫게 하셔서 예수님의 부활을 제자들에게 알리게 하십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것 때문에, 삶의 어려운 문제와 아픔 때문에 울면서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소망이 되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하라는 말입니다. 


절망에 있던 마리아가 위로를 받고 이제는 소망 가운데 부활의 중인이 됩니다.

인생의 절망과 슬픔 중에 고통하고 계십니까? 


고통스런 상황과 문제를 먼저 바라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고통과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을 더 먼저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믿어서 크신 위로와 소망을 누리시고 일어서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하는 증인의 삶을 달려가면서 감당하시길 바랍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생명빛 받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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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정인 목사

<프리몬트제일교회 담임>


새벽 미명이 되자 온 하늘에 깔렸던 깊은 어둠이 서서히 밀려가기 시작한다. 


숨결 같은 새벽바람이 꽃잎과 풀잎을 흔들면서 “잠에서 깨어라. 날이 밝아 왔다.” 하고 깨운다.


무덤을 지키던 군병들 추위와 졸음을 못 이겨 몸을 움츠릴 때 한줄기의 햇살보다 강한 빛이 무덤에 빠르게 스며든다. 


세상의 빛이 아닌, 달빛도 아닌 , 그리고 초라한 햇빛도 아닌 하나님의 빛인 예수님께서 새로운 아름다운 모습으로 미소를 지어면서 서서히 무덤에서 걸어 나오신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을 때 천사가 찬양했듯이 주위의 꽃, 새들을 위시해서 만물들이 주인의 부활을 외친다. 


“예수님 부활하셨다.”


우리 인류에게 가장 절망적인 사건이라면 죽음일 것이다. 


반면 가장 기쁜 소식은 죽음을 이긴 부활이 아니겠는가?


예수님의 친구 나사로가 죽을 때 그의 동생 마르다가 예수님께 비통하며 아뢴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나의 오라비가 죽지 아니 하였겠나이다.” 이 말을 듣고  예수님께서 무덤에 가셔서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요11:43,44) 마치 잠자던 사람이 깨어나듯이 다시 살아나 가족의 품으로 돌아 왔다. 


그 감격과 기쁨을 어찌 표현을 하겠는가! 


이것이 부활의 체험이요, 장차 우리의 부활이다.


세상이 주님께서 오실 때 가까워질수록 더욱 절망의 어둠이 깊어지고 있다. 


경제적인 어려움, 병이든 사람들, 이런 저런 일들로 인해 고통의 탄식소리를 자아낸다. 

“어떻게 해 볼 수 없다.” 하며 희망을 잃고 있다.


죽음을 생명으로 바꾼 믿음의 사람들은 부활하신 주님의 능력이 함께 하시기에 세상의 어떤 어려움에서 이겨낼 수 있다.


따스한 봄이 되니 차디찬 겨울의 무덤 속에 있던 풀들이 색채를 띠우고 돋아나며, 아름다운 꽃들이 서로 다투어 피기시작하며, 나비는 번데기의 껍데기를 벗고 아름답게 훨훨 날기 시작한다. 


창조주의 능력이 여전히 역사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우리에게 이 창조주의 부활의 능력이 나타나서 절망을 희망으로 재대신 화관을 슬픔대신 기쁨의 옷을 입게 해 주실 것이다.


지금 우리 혹시은혜를 잊고 무덤 같은 어두운 마음, 메마른 나무 같은 생기 없는 마음, 차디차게 굳어 있는 마음이아닌가? 


이제 마음의 문을 열어 부활하신 예수님의 생명의 빛을 받아들여 아름다운 순결과 사랑의 꽃 한 송이를 피어내자.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신앙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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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서 목사

<엘크그로브가스펠교회 담임>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예수님을 믿는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신앙에도 조금씩 차이가 있음을 봅니다. 


어떤 이들은 마리아 품에 안겨 있는 아기 예수를 믿습니다. 


그래서인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더 숭배하고 의지합니다. 

어떤 이들은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신 성육신한  사람의 아들 예수를 믿습니다. 


예수님의 신성보다는 인성을 소중히 여겨 그분이 세상에서 사신 것처럼 혁명적이고 전통과 싸우는 투사의 모습만을 따라 살려고 합니다. 


남미의 해방신학, 민중 신학이 좋은 예입니다. 


어떤 이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믿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인간의 죄를 짊어 지시고 고귀한 희생의 죽음을 택하신 분이기에 희생과 순교만이 참된 신앙이라고 믿습니다. 


신앙 생활은 항상 고뇌와 슬픔 속에 머물고 기쁨과 즐거움은 불편하고 거북한 사치스러운 감정같이 여깁니다.


오순절날 예루살렘에 처음 세워진 초대 신약교회는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증인들의 신앙 공동체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솔로몬의 행각에서 “너희가 …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행 3:15)고 하였고, 베드로는 예수의 부활을 증거한 죄로 공회에 끌려가서 대제사장 앞에서도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행 4:10)고 당당하게 부활하신 사실을 증언하였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들의 고발로 말미암아 산헤드린 공회에까지 잡혀가 심문을 받기도 했습니다(행 23:6).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바른 신앙은 그분의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 신앙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라 우리의 죄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리스도의 부활에 우리도 함께 동참하게 됨을 믿는 신앙입니다. 


희생과 고난의 십자가 후에는 영광과 소망의 부활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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