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일 (10월 17일 목요일)

네그레이라에서 올베이로아까지 33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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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나게 힘든 날이었다. 


중간 마을에 알베르게가 없어서 33km를 걸어야 했다. 13km를 걸으니 처음으로 카페가 나타났다. 

나는 첫 커피를, 아내는 핫밀크를 마시고 너무 행복했다. 


 다리를 의자에 올리고 작정하고 쉬려고 하는데 멀리서 반가운 모습이 보였다. 


뉴질랜드에서 온 쟌과 게일이었다. 

서로 놀란 모습으로 바라보았다. 


이 빗길을  뚫고 피니스테레로 가기로 결정했냐는 격려의 눈길이었다.


조금 더 가니 뉴 잉글랜드에서 온 번도, 캐나다에서 온 자매도 아리조나에서 온 형제도 만났다.

 모두 다 너무 반가워했다. 번은 손을 높이 들면서 피니스테레에서 카미노는 끝난다고 외쳤다. 


평상시 참 조용한 사람인데 반가운 얼굴들을 만나니 그도 기분이 좋았던 모양이다. 


순례자는 또 각자의 길을 간다. 반가운 얼굴들이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또 헤어졌다. 몇몇 순례자들이 스쳐 지나갔다. 


21km 정도를 카페도 하나 없는 작은 마을을, 아니면 마을을 먼발치에 보면서 우리는 산길을 오르락내리락해야 했다. 


비가 왔다가 갰다가 하면서 우리는 판초를 벗었다 입었다 했다. 


우리가 젖는 것은 괜찮은데 배낭을 젖으면 안 되기 때문에 귀찮지만 반복해서 했었다. 


피니스테레 가는 길은 하루는 꼭 33km 정도를 걸어야 4박 5일로 일정이 끝날 수 있다. 우리는 각자 조용히 걸었다.


말씀을 들으며 찬양을 들으며 각자의 기도에 들어간 것이었다. 

기도만이 이 긴 길을 걸을 수 있게한다. 


깊은 묵상만이 여러 가지 상념에서 벗어나게 한다. 

가는 길에 쟌 부부를 다시 만났다. 


그의 신앙을 물으니 불교 신자였다는 의외의 대답을 했다. 이 부부는 35년 동안 채식주의자이다. 

쟌은 67세이고, 뉴질랜드 오클랜드에 산다. 


그 곳에 불교 사원이 5개 정도 있다고 했다. 


그 곳에 가면 채식주의자들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주는데 거의 돈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불교를 믿게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카미노를 걸으면서 불교를 떨쳐버렸다고했다. 

그것은 사람이 만든 종교라고 했다. 


반가운 마음이었다. 


예전에는 감리교인이었고 성가대원까지 했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카미노를 걸으면서 알게 된 것은 많은 사람이 기독교 문화 가운데 성장했음에도 미사, 의식만  중시여기는 카톨릭의 풍토에서 자라 말씀의 교육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크면 속수무책으로 이방 종교에 빠진다는 것이다. 


한국의 카톨릭의 현주소는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이곳에서도 미사에 참석해보면 말씀을 강론하지 않았다. 


중세 암흑기에는 아예 말씀을 성도들에게 가르치지 않았던 것을 우리는 종교 개혁을 통해서 알고있다. 


한국 교회에 허락하신 말씀의 풍년에 새삼 감사를 드렸다.  


우리 뉴라이프교회에 허락하신 말씀을 사랑하고 공부하는 영성에도 진정으로 감사를 드렸다. 어린이 성경 암송대회, 어른들 골든벨 성경퀴즈대회를 위해 기도했다.


새삼스럽지만 왜 또 걸어야 하나 생각하게 한 고된 하루였다.






 제37일 (10월 18일 금요일)

올베이로아에서 쎄까지 20Km


오늘은 아침부터 폭우가 쏟아졌다. 


굵은 비를 동반한 거센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산 높은 곳 나뭇가지들이 여기저기 부러져 있었다. 

걷는 몸이 한쪽으로 쏠리는 경우가 많았다. 


20km의 길지 않은 여정인데 끊임없이 계속되는 비바람 때문에 사투하다시피 걸었다. 5

시간을 쉬지 못하고 계속 비바람 속을 걸어야 했다.

산티아고에 도착하는 날도 종일 비가 왔었다. 

그것이 은총의 표식이었다. 


오늘도 우리 주님은 남은 생애 동안 우리에게 잊지 말라고 특별한 경험을 하게 하신다고 생각하며 걸었다. 


창세기를 내내 들으며 걸었다. 노아의 홍수 사건 기록을 들으며 이런 비가 40일 동안 계속되었다고 생각하니 말씀이 더욱 생생해졌다.





제38일 (10월 19일 토요일)

쎄에서 피니스테레 끝까지 18.8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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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놀랍게도 날씨가 개고 내내 좋았다. 

일기 예보 상으로는 천둥을 동반한 폭우가 내릴 것이라고 나왔었다. 


어제 지독한 비바람 속을 걷느라 거의 사투를 벌였던 아내는 카톡으로 성도들에게, 딸들에게 좋은 일기를 위해 기도 부탁을 했었다.


"순례 여정을 시작한 후에 날씨에 대해서는 기도하지 않았었다. 


순례자로서 하나님께서 어떤 날씨를 주시든 감사함으로 걷기로 작정한 것이다. 

정말 감사함으로 걸었다. 


그런데 어제 장장 5시간을 몸도 가눌 수 없는 비바람을 헤치며 쎄라고 불리는 마을에 도착했다. 

피곤한 몸을 누이는데 내일은 날씨를 위해 기도해도 된다는 성령님의 나지막한 음성이 들리는 듯했다. 


마침 몇몇 카톡을 주신 분들께 답장을 하며 기도부탁을 했다. 

일기 예보 상으로는 천둥 번개를 동반한 폭우였다. 


기도 한 후 편안한 마음으로 잠을 청했다. 


어떤 날씨이든 또 감사함으로 마지막 걸음을 마칠 것이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바람이 불고 구름이 낀 날씨였다. 


기도하고 한 발자국을 내딛는데 주님께서 오늘 마칠 때까지 날씨를 주관하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얼른 감사를 드리고 우리 뿐 아니라 다른 순례자들이 다 마칠 때까지 날씨를 주관해 주십사 부탁의 기도를 드렸다. 


곧 비가 올 것 같으나 햇볕이 따뜻하게 비치는 날씨였다. 

우리가 모든 일정을 마치니 오후 세 시경이었다. 


마지막 지점에서 0km 표지석을 보고 돌아오는데 빗방울이 떨어졌다. 

마치 주님께서 하신 일임을 가르쳐 주시는 것 같았다. 

기도했다. 


다른 순례자들이 다 끝나려면 적어도 오후 5시는 지나야 함을... 저녁 8시인 지금은 밖에서 빗소리가 난다. 


참 좋고 섬세하신 주님이시다." 

(위광혜 사모)




오늘 낮 12시 30분 피니스테레에 잘 도착했다. 

숙소를 정하고 바에서 간단한 점심을 먹었다. 


곧바로 '카미노 데 산티아고(산티아고 순례길)'가 끝나는 지점으로 순례 여정의 마지막 발걸음을 내딛었다.


3.4Km를 홀가분하게 걸어갔다. 더는 배낭을 매지 않아도 된다. 

끝 지점에 대서양을 향하여 높이 솟은 십자가가 보였다. 


눈물이 나왔다. 

속으로 울었다.


여기까지 왔구나. 


늘 봐 왔던 조가비 모양 거리 표지석에 0.00Km 라고 적혀 있다. 

40일간의 순례 행군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걸었다. 


아내도 나도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걸었다. 

쉬운 날은 없었다. 


매일매일 힘들고 때로 고통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특별히 발바닥이 평평한 집사람은 매일 걷는 것이 보통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기도하면서 때로 이를 악물고 걸은 것 같다. 아내에게 고맙고 존경을 표하고 싶다. 


둘 다 900Km를 걷는 동안 넘어지거나 실족해 본 적이 없었다. 

이렇게 걸어온 것이 은혜요 기적이었다.


처음 생장피드포드를 출발해 피레네 산맥을 넘고, 밀밭, 포도원이 끝없이 펼쳐진 나바르주, 라리오하 지역 길을 지나고, 카스티야 레온 지방 200Km 계속되는 황량한 메세타 평원을 지났다. 


칸타브리아 산맥을 넘으며 갈리시아 지역 산간 마을 오르막 내리막길들을 계속 걸었다. 


마침내 종일 쏟아지는 폭우 속에 산티아고 대성당 앞에 도착했다. 

이어서 바로 다음날 땅끝이라 불리는 피니스테레를 향해 출발한 것이다.


스페인의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한낮의 길, 4일 연속 바람 불고 비가 쏟아진 메세타 빗길, 온종일 강풍을 동반한 거센 비가 쏟아진 피니스테레 오는 길, 햇볕이 내리쬐는 가운데도 산들바람이 불어오는 상쾌한 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후 변화를 맛보았다.


목회 24년 만에 갖는 안식월 2개월 중 40일을 산티아고 순례길 걷기를 선택한 것은 하나의 영감이었다. 


지쳐있고 내적인 에너지가 고갈되어 가는 나를 하나님 앞에서 다시 일으켜 세우고 싶었다. 

나를 목사로 부르신 주님께 더 깊은 영적 갈망이 있었다. 


하나님 나라와 이 시대 모든 교회가 소원하는 진정한 부흥에 관한 목마름이 끊이지 않았다. 

걷기를 끝내고 보니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주님의 크신 은혜에 감사드린다.

이 길을 다 걸었다고 끝난 것은 분명 아니다.


다시 폭풍 치는 세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 교회 가족들, 성도들, 주님의 백성들과 더 사랑하며 주님을 섬겨야 한다.

우리 주님의 변함없으신 은혜와 긍휼에 의지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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