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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실상을 알리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PD가 되고 싶다는 주찬양 자매는 자신의 탈북과정이 수많은 사람들의 기도의 응답이었음을 확신한다고 간증하기도 했다.


첫눈에 봐도 똘망똘망해 보인다.

아니 당차다고 해야 맞을것 같다.

기자와 마주앉은 주찬양자매는 질문이 필요없을 정도로 연신 말을 이어간다.

하긴 13살때부터 북한의 장마당에서 장사를 해왔으니 공부만 해온 여늬 십대 자매들과는 크게 달라보였다.

할아버지가 김일성 대학출신에다 6개국어를 구사하는 아주 유능한 당간부였기에 어려움없이 살아온 자매의 가정은 할아버지가 말반동(당에 대한 불만표시등)으로 찍혀 여러모로 어려움을 겪게 된다.

아버지(주경배)가 반동의 집안이라는 손가락질을 벗어나기 위해 할아버지의 충고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당에 충성했지만 어려움을 벗어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집도 아주 시골동네로 이사했고 장사를 해볼까 하는 심정으로 아버지는 중국을 드나들게 되었다.

아버지가 머문 중국인집에서 개에게 개밥으로 흰 쌀밥을 주는 것을 보고 아버지는 놀랐다.

더욱 놀란것은 다음날 아침 그 개가 흰쌀밥을 남긴것을 보고 경악했다고 한다.

북에서는 사람도 못먹는 흰쌀밥을 중국에서는 개가 먹다가 남기다니...

시골동네의 토굴속에서 남한의 단파방송을 자주 들어왔던 아버지는 그때 탈북을 결심했다.

주찬양 자매는 글자 그대로 고난의 행군시대에 태어나 13살때부터 장마당에 나갔고 16살되던 2007년에 아버지가 탈북했다.

남한에 정착한 아버지는 찬양자매를 탈북시키려했으나 찬양자매는 어린 두 동생과 신장이 안좋은 어머니가 먼저 탈북하기를 원했고 자신은 홀로 남았다.

2008년 어머니와 두 동생이 몽골사막을 지나 탈북에 성공했고 네 식구가 없어지자 감시속에 4년을 견뎌온 찬양자매는 중국까진 왔으나 공안에 붙들려 재 북송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허벅다리에 아버지의 한국전화번호를 써놓고 반창고로 붙이고 있다가 기회가 오면 전화를 하려고 했다.

공안원의 감시 소홀을 틈타 아버지와 통화에 성공한 찬양자매는 의외로 아버지의 침착한 타이름에 놀랐다고 했다.

"괜찮아! 너를 위해 아빠가 기도하고 있고 하나님께서도 꼭 너를 구해주실 것이다. 그리고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또 너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찬양자매에게는 하나님보다 아버지의 구원의 손길이 더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빨리 구해달라고 떼를 썼다.

브로커를 통해 중국에서 라오스, 메콩강, 태국까지 들어간 찬양자매를 포함한 탈북 일행 11명은 태국경창에 임의로 붙들렸고 한국행을 기다렸다.

2011년 한국에 들어온 찬양자매는 꿈에 그리던 아버지와 어머니 두 동생과 재회했고 아버지는 극동방송을 통해 탈북인으로서 복음전하는 일을 하고 찬양자매는 서빙 라이프 인터내셔날이라는 단체에 가입해 북한실상을 알리는 홍보팀장을 맡고 있다.

"Serving Life International"은 북한을 비롯 전세계 각지에서 인간의 가치와 권리를 억압받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2006년 창립된 국제단체이다.

서빙라이프는 억압받는 이들의 인권신장을 도모하는데 앞장설뿐 아니라 실질적인 필요를 공급해주고 있다.

이에따라 만나 프로젝트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복음을 들을수 있는 소형 라디오 및 MP3, 그외 의약품, 생필품등을 풍선에 매달아 북한 형제, 자매들에게 날려보내는 운동도 한다.

또 영적 양육과 재정 후원을 통해 북한 형제 자매들을 복음전하는 장마당 일꾼 선교사로 양성하는 프로젝트도 마련했다.

50만원으로 한명의 북한 장마당 일꾼의 장사 밑천을 지원해주어 경제적 자립을 돕고 복음을 전하는 비지니스 선교사로 양성하는 프로젝트도 갖고 있다.

'오직 주의 사랑에 매여'라는 복음성가 가사에 나오는 단어로 찬양자매 다섯식구는 이름을 새로 짖기도 했다.

원래 주씨인 이 가정은 아버지가 주경배, 남동생이 주권능, 여동생은 주은혜, 본인은 주찬양, 그리고 성이 이씨인 어머니는 이소명으로 지었다.

서빙라이프는 『링크』라는 미단체를 통해 주찬양 자매를 4개월간 미국에 어학연수를 보낼수가 있었고 이 기간을 통한 찬양자매는 북한의 실상을 여러군데 알리고 싶다고 밝혔다.

한국에 돌아가서는 방송국에 취직해 북한의 실상을 알리고 그들의 인권신장을 도모할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PD가 되고 싶다고 말하기도 한다.

한국에와서 북한의 실상을 얘기하면 많은 사람들이 "너희는 이미 주체사상에 물들어 있어 말과 실제가 다르다"고 선입견을 가지고 대하는 것에 제일 서운하다고 덧붙인다.

그러면서 배급받던 세대와 찬양자매 같은 장마당 세대는 생각이 다르고 속에는 말만 안했을 뿐이지 곪아 터지기 일보직전의 뭔가가 쌓여있는 세대라고 주장하는 말을 여러번 되풀이하기도 했다.

하나님이 구해주실것이고 수많은 사람들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시던 아버지의 말씀과 아버지의 크리스찬으로서의 변화 과정을 보면서 예수님을 믿게 되고 이제는 복음을 전하는 일꾼의 한명이 되겠다며 찬양자매는 다짐했다.

<임승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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