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능신교1.jpg

▲  중국 흑룡강성 하얼빈시 영원구에 위치한 조유산의 생가.


전능신교의 창시자이자 실질적인 교주인 짜오워이싼(赵维山), 1951년에 태어났다.


조유산의 부친은 철도국 직원으로 아주 가난했다.


조유산은 15평 정도의 이 집에서 가족 12명과 함께 어린시절을 보냈다.


조유산의 친동생은 집안 형편이 너무 어려워 형과 싸울 겨를이 없었다고 얘기했다.


조유산 동생 짜오위는“형과 많이 싸우지는 않았어요. 우리 집은 화목했습니다. 어렵게 살았기 때문에 싸울 겨를이 없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조유산은 전문대학을 졸업한 뒤 철도노동자로 일하다 1979년 푸윈쯔와 결혼했다.


조유산과 이혼한 뒤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푸윈쯔는 언론사상 처음으로 CBS 취재진과 인터뷰했다.


푸윈쯔 역시 조유산의 집이 무척 가난했다고 말했다.


조유산의 전 처 푸윈쯔는“저는 그때 굉장히 콧대가 높았죠. 남편의 가정을 보니까 찢어지게 가난했어요. 식구가 많아 생활이 어려웠고 옷도 초라하게 입고 다녔죠. 맞선을 볼때도 아무렇게나 일하는 옷차림 그대로 왔습니다.”라고 말했다.


푸윈쯔와 중국 전문가는 조유산이 원래 기독교인 이었으며 영원지역의 삼자교회인 영원교회의 여러 설교자중 한사람이었고 말했다.


푸윈쯔는 "영원교회로 가게 된 것은 결혼 후 몇 년이 지나서였어요. 정부에서 예배당을 지어줬습니다. 정부는 저희에게 찾아와 예배당에서 집회를 하라고 강요했습니다. 사람들은 예배당 보다는 저희집에서 모이는 것을 선호했습니다." 라고 말했다.


중국 00대학 교수 쑹쩬은“조유산은 기독교신자였는데 호함파의 교리를 신봉했습니다. 2013 "조유산은 일부 사람들을 데리고 교회조직을 이탈해 가정교회 방식으로 기반을 닦기 시작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조유산이 영원교회를 나와 시작한 가정 성경공부 방식이 지금의 전능신교 포교방식과 비숫해 그때부터 전능신교가 시작됐다고 볼수 있다.


푸윈쯔는“집회 때 성경공부를 해요. 조유산이 성경을 가르쳤는데 아주 조리있게 잘 가르쳤어요. 다들 조유산의 설교를 좋아했습니다. 다들 조유산의 설교를 들으려고 저희 집에 왔죠”라고 말했다.


중국 공안당국은 조유산의 가정교회가 밤에 요란한 집회를 하면서 이웃들의 휴식을 방해하고 신도들의 가족관계를 포기하도록 한다는 등의 이유로 폐쇄조치했다.


조유산은 공안의 수배를 받자 허난성으로 피신했다.


조유산은 허난성에서 가정을 집집마다 방문하는 방식으로 포교활동을 했으며 산서성 출신의 양향빈을 여그리스도로 내세우는 등 본격적인 전능신교 활동를 했다.


전능신교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에서 번쩍인다는 구절을 인용해 말세의 그리스도가 중국에 왔다고 주장해 ‘동방번개’로 불리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전능하신 하나님교회로 활동하고 있다.


<CBS 노컷뉴스>

한국노컷뉴스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