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등시민 꼬리표 뗐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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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북자로 구성된 실버여성합창단 ‘고향의봄’이 2일 서울 광화문에서 탈북자 강제북송 중지를 촉구하며 동요 ‘관수원길’과 복음성가 ‘예수님이 좋은걸’을 잇달아 부르고 있다.


“거저, 어서 오십시요. 공연 시작이 몇 분 안 남았는데 이제 오면 어떻합네까. 우리 늙은 티 내지 말고 날래 움직입시다래….”
2일 정오 서울 지하철 5호선 5번 출구. 검정색과 노란색이 어우러진 드레스를 곱게 차려입은 10여명의 탈북 여성들이 단장 한금복(66·서울 새한교회 집사)씨의 지시에 맞춰 줄지어 섰다.
한 단장이 맨 가운데 서고, 소프라노와 알토 등 파트별로, 2009년 남한에 온 막내 송기순(60·꿈의교회)씨까지 자리를 잡았다.
밝은 표정이었다. 잠시 목을 가다듬은 한 단장이 “남한에 와서 천국처럼 행복하게 살았는데 오늘을 계기로 자유 없는 고향 사람들을 위해 노래를 부르겠다”고 말했다.
평균 연령 65세인 탈북자 최초 기독교사회책임 탈북동포회 ‘고향의 봄’ 실버여성합창단의 이날 거리 공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첫 곡 ‘고향의 봄’이 시작되자 멋진 화음이 이어졌고 이들의 팔자주름은 환한 미소 덕에 이내 사라졌다.
합창단이 조직된 건 지난 해 4월. 기독 NGO ‘기독교사회책임’ 소속의 탈북자 모임 ‘탈북동포회’를 이끌던 김규호 목사가 이들에게 남한 정착을 돕고 노래를 통한 봉사활동을 하자고 회원들에게 제안하면서부터다.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자체 오디션을 봐 탈락자를 가려낼 정도였다. 열정이 대단했다. 하지만 의욕만큼 실력이 늘지 않았다.
음악 기초가 없어서 일일이 음과 박자를 가르쳤고 무대공포증도 심해 관객 앞에만 서면 가사를 잊곤 했다.
이후 단원들은 결성 후 3개월 연습 기간을 거친 뒤, 지난 해 7월 창단연주회를 가졌다. 교회와 복지관 등에서 100여 차례 자선 공연을 펼쳤다.
단원들은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4∼5시간 노래 연습과 행복한 남한생활을 이야기하며 웃음꽃을 피우고 있다.
이날 거리 공연에서는 ‘과수원길’, ‘우리의 소원은 통일’ ‘에델바이스’와 같은 남한 노래뿐만 아니라 ‘통일 열차 달린다’ ‘황금나무 능금나무’, ‘봄노래’와 같은 북한 노래도 맛깔나게 불렀다.
22명 모두 크리스천 답게 복음성가 ‘북녘 땅의 호산나’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예수님이 좋은 걸’을 은혜롭게찬양했다.
한 시간 뒤, 준비한 10여곡을 마친 김 목사와 단원들의 표정에는 성취감이 묻어났다.
노래가 계속되면서 지나가는 기독교인 한 사람이 이들 앞에서 기도하기도 했다.
생수와 물수건, 성경책 후원금 등을 건네고 갔다.
단원들은 크고 작게 힘을 실어주는 것에 용기를 얻곤 한다.
‘고향의 봄’ 실버여성합창단은 다음 달 11∼23일 독일 프랑스 등 유럽 7개국 중국 대사관 앞과 한인교회 등에서 공연을 갖는다.
중국의 탈북자 북송 중지를 촉구하기 위함이다. 단원들은 평소 탈북자를 구출하고 국내 정착을 돕는 ‘쉰들러 프로젝트’와 ‘북한 식량지원운동’, ‘탈북자 정착지원운동’도 병행하고 있다.
“사실 유럽갈 여비가 부족해 기도하고 있어요. 하지만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시리라 믿습니다.
가서 남북 평화통일을 위해 목청껏 노래 부를 겁니다.” 감격에 겨운 한 탈북자들의 말이다(02-2266-8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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