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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선주 목사 (왼쪽에서 세번째)




“식당에서 가장 잘 생긴 사람 찾으면 된다고 문자를 보내려던 참입니다. 하하.”


김선주(51) 충북 영동 물한계곡교회 목사의 눈에는 장난기가 서려 있었다. 

웃을 수밖에 없었다. 


‘고스톱 짝이 없을 때 전화하라’는 내용의 교회 전단으로 유명해진 김 목사를 최근 서울역에서 만났다. 


그때 그가 처음 건넨 말이다. 격의 없는 소탈함이 있었다.

교회가 있는 물한계곡에는 80여 가구가 산다. 


대부분 농사를 짓는 70대 이상의 노인들이다. 


“제가 살고 있는 곳에서는 입으로 ‘축복 받으라’고 100마디 말하는 것보다 농번기에 하루 투박한 일손이 돼 주는 게 더 큰 축복이 되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사람들을 소통하게 해주는 건 ‘노동’이에요.” 


실제 그는 파종기나 추수기에 동네 이곳저곳을 돌며 일을 거든다. 보수를 받진 않는다.

일을 하면서 깨닫는 것도 많다고 했다. 


“권사님 댁 꿀을 따주러 간 적이 있어요. 새참으로 꿀에 빵을 찍어 먹는데 태어나서 그렇게 맛있는 꿀은 처음이었어요. 


아카시아 꽃이 끝물인데다 다른 꽃이 많이 피던 땝니다. (벌들이) 온갖 꿀을 다 물어 와서 제일 맛있는 ‘잡꿀’이 됐다고 하더군요. 그 얘길 들으면서 저도 그 꿀처럼 모든 것을 다 담는 향기로운 목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퍼뜩 했어요.”


김 목사는 들녘의 농부 같은 모습이다. 


“사실 시골 목회는 성실하고 부지런하기만 하면 어렵지 않습니다. 도시에 비하면 돈 들 일도 별로 없고 시간 여유도 많습니다.” 


그는 목회를 하고 있는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그럼 그 전엔 무얼 했을까. 


“농협 금융창구에도 있어보고 학원 강사도 하고, 외환위기 땐 대출보증 서 준 것 때문에 수년 고생도 했지요. 허허.”


인생의 여러 과정을 거치며 하나님에게 점점 더 가까워진 듯했다. 


“모태 신앙인이었지만 한동안 방황했고 2006년에야 목원대 신학대학원에 입학했습니다. 목회는 ‘권위’로 하는 게 아니라 ‘섬김’의 자세로 하는 것 같습니다.” 


그는 아흔에 가까운 할머니 머리에 고깔모자를 씌워드리고 생일 케이크에 초를 꼽는다. 

연탄보일러가 고장 났다는 새벽녘 전화에 자기 집 연탄을 빼 나르기도 한다.


가정 형편 때문에 조부모의 가정에 맡겨진 어린이들을 돌보는 일에도 열심이다. 

“교회 아이들과 그냥 놀아줍니다. 며칠 전에도 언덕에서 아이들과 눈썰매를 실컷 탔죠. 엄청 재미있었어요. 


전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가 아니라 기독교적 가치를 역동하는 공동체가 교회라고 생각해요. 제가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그런 ‘작은 천국’을 만들 수 있으면 좋겠어요.”

김 목사는 2011년부터 물한계곡교회를 담임해왔다. 


성인 20여명, 어린이·청소년 20여명이 출석하고 있다. 


“하나님이 허락하실 때까지 이곳에 있겠지요. 장기적으로는 청년목회에 관심이 있어요.” 

김은숙(47) 사모와의 사이에 아들 좋은(22)씨와 누리(20)씨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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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최근 자신의 목회 철학과 인생 이야기를 담은 ‘목사사용설명서’(대장간)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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