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만 해도 가칭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 출범은 불투명했다. 


한국교회연합(한교연) 측이 부정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교연의 핵심 회원 교단인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마저 신중한 입장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성희 예장통합 총회장이 결단을 하고 한교연 측에 대한 설득에 나서면서 급물살을 탔다. 


급박했던 막전막후


한국교회의 연합을 추진해왔던 전현직 교단장들은 올 성탄절 선물로 하나 됨을 이룬다는 목표를 갖고 뛰어왔다. 


명분은 확고했다. 한국교회의 하나 됨은 하나님의 지상명령이었고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둔 올해가 통합의 골든타임이었다. 


처음에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의 이단 문제가 통합에 반대하는 가장 큰 명분이었다. 

한기총에서 탈퇴한 예장합동도 오랜 기간 이를 문제 삼아 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주요 교단장들은 지난 7월 주요 7대 교단 중심의 통합이라는 안을 내놓고 연합추진위를 구성했다. 교육부 인가 신학교를 보유한 교단들을 우선 가입시킴으로써 이단들을 배제하겠다는 안이었다. 


나아가 한기총 이단대책위원회는 지난 15일 이단으로 지목된 ‘류광수 다락방’에 대해 행정보류를 결정했다. 


그러나 한교연 측은 절차 문제를 들어 부정적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한교연은 2회 연속 연합추진위를 보이콧했다. 


추진위원으로서 현직과 관계설정이 애매했던 전용재 전 기감 감독회장이 전명구 현 감독회장이 교단장으로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한 발 물러섰다.


 채영남 전 예장통합 총회장도 자연스레 2선으로 물러나면 이성희 총회장이 전면에 나설 수 있게 했다. 


이 총회장이 한교연의 법인을 존속시키되 교단이 아닌 단체들을 가입시킨다는 안에 힘을 실으며 한교연 설득에 나섬으로써 한교총 출범 합의가 가능해졌다. 교회정치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공교단 중심으로 연합기관을 구성하고 운영해야 한다는 공감대도 추동력으로 작용했다. 


한기총과 한교연, 분열에서 통합으로 


한기총의 분열은 2011년 불거진 한기총 대표회장 금권선거 논란이 발단이었다. 


그해 1월 정기총회에서 길자연 목사가 대표회장에 당선되자 이광선 전 대표회장은 길 목사가 금권 선거를 했다고 폭로했다. 


대표회장 직무정지 가처분 소송이 제기돼 길 목사는 대표회장 직무가 정지됐다. 


사태 해결을 위해 한기총 회원교단들은 같은 해 7월7일 특별총회를 열어 길 목사의 대표회장 재인준 등을 담은 ‘7·7 개혁정관’을 통과시켰다. 대표회장에 복귀한 길 목사는 10월 28일 실행위원회를 열어 개혁정관을 폐기했다.


예장통합 등 20여 교단은 개혁정관을 복원하라며 12월 ‘한기총 정상화를 위한 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분열의 시작이었다. 이들은 이듬해 2월 길 목사의 선거대책본부장을 지낸 홍재철 목사가 한기총 대표회장에 선출되자 한기총을 탈퇴했고 3월 한교연을 설립했다.

한국교회 분열의 부작용은 컸다. 


사회적 영향력이 저하됐고 타 종교에 비해 홀대받는 일도 잦았다.  여러 차례 통합이 추진됐지만 일부 지도자들의 기득권 고수와 한기총 내 이단 문제 등으로 무산됐다. 


그러나 한국교회 주요 7개 교단 대표자가 지난 7월 26일 한기총과 한교연의 통합을 추진키로 결의하며 다시 시동이 걸렸고 5개월만에 결실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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