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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유복자씨(오른쪽)가 지난해 6월 25일 서울 이태원 쪽 방에서 갈보리채플서울교회 이요나 목사를 만나 옛 일을 떠올리고 있다. 오른쪽 작은 사진은 김씨가 40대에 서울의 한 트랜스젠더 바에서 일할 때 모습.



동성애자로 한국 최초의 '여장 남자' 김유복(본명 김유복자)씨가 11일 오전 1시쯤 별세했다. 향년 76세.


고인의 오랜 친구인 홀리라이프 대표 이요나(갈보리채플서울교회) 목사는 이날 "고 김유복 형제는 17년간 투병생활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체험하며 동성애자의 삶의 죄업을 회개하고 천국백성이 됐다. 사망 원인은 패혈증"이라고 밝혔다. 


또 "고인은 이 땅의 모든 동성애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기를 소망하며 눈을 감았다"고 말했다.


고인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장 남자’ 중 한 사람이다.  그의 이름엔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 아버지가 병으로 사망해 주위에서 ‘유복자’라고 불렀는데, 어머니는 그 이름을 호적에 올렸다.


초등학교 때부터 이유 없이 남학생이 좋았던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술집과 트랜스젠더 바 등에서 일했다. 


독일 유명배우의 이름을 딴 ‘마리네 김’과 ‘김 언니’가 그의 애칭이었다. 남자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여성 호르몬 주사를 맞았고 눈썹에 문신을 한 뒤 가슴 확대 수술까지 받았다.


한때는 모 방송국의 전속 가수로 활동했다. 뮤지컬에 출연했고 일본시장에도 진출했다. 


국민가수 패티 김은 그의 노래를 듣고 “신이 내린 목소리”라고 칭찬했다고 한다. 


인생이 술술 잘 풀리는 듯했지만 그뿐이었다. 

그토록 바라던 행복은 찾아오지 않았다. 날이 갈수록 허무한 마음뿐이었다.


하나님은 그를 버리시지 않으셨다. 동성애자로 살다가 ‘탈(脫)동성애 인권운동가’로 변신한 갈보리채플서울교회 이요나 목사의 인도로 30대 후반부터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고인은 이 목사가 동성애자이던 시절에 운영하던 트랜스젠더 바에서 노래를 불러 이 목사와 친분이 있었다.


하지만 믿음은 쉽게 생기지 않았다. 간절히 눈물로 기도를 드렸다. 


다행히 교회에 자주 출석하고 성경공부를 하면서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었다. 자연스레 동성애가 죄악임을 깨닫고 동성애의 유혹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국민일보 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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