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정미 사모 남편 곽수광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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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타 집회에서 통역을 하고 있는 곽수광 목사(왼쪽). 93년 결혼해 아름답게 동역해 오고 있는 곽목사와 송정미 사모

 

1986년 7월 미국 워싱턴 근교 서밋레이크에서는 조촐한 한인 유학생 수련회가 열렸다.
“복음으로 조국을 변혁시키자”는 홍정길 이동원 목사 등 강사들의 도전에 200여명의 참석자들은 뜨거운 헌신으로 응답했다.
유학생들의 헌신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이 수련회는 지금 미국은 물론 유럽연합과 러시아, 중국, 일본, 필리핀 등 16개 나라로 확대돼 열리고 있다.
참석 대상도 조기유학생은 물론 코스타를 거쳐간 국내 거주자들로까지 넓혀졌다.
지금까지 수련회를 거쳐간 유학생 숫자만도 20만명이 넘는다.
코스타(KOSTA·국제복음주의학생연합회) 얘기다.
“당시에는 코스타만한 운동력이 있는 단체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코스타는 세계 선교사에서 유례가 없는 아주 독특한 모델로 자리 잡았죠.” 코스타 국제본부 상임대표 곽수광(50) 목사는 코스타 25년의 역사를 이렇게 평가했다.
그는 “코스타는 이제 해외 유학생뿐만 아니라 교포 1.5세나 2세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한인 디아스포라 운동이 됐다”고 밝혔다.
1996년 곽 목사는 캐나다 토론토에서 한인 교회 청년부 담당목사로 사역하고 있었다.
코스타 수련회가 미국에서 열린다는 얘기를 듣고 그해 여름 교회 청년들을 데리고 참석했다.
청년들은 강사들의 강력한 메시지 앞에서 무릎을 꿇고 회개하고 결단했다.
변화될 것 같지 않던 청년들이 며칠 되지 않은 짧은 기간에 놀랍게 변화되는 모습은 곽 목사에게 엄청난 충격을 줬다.
곽 목사는 코스타 조직위원회에다가 “내년엔 토론토에서도 코스타 수련회를 열어 달라”고 요청했다.
그렇게 해서 97년에 열린 코스타 캐나다 수련회는 대성황을 이뤘다.
곽 목사는 코스타 집행부의 요청으로 코스타 국제 부총무를 거쳐 2000년 5월부터는 코스타 국제본부 총무로 코스타의 전면에 나선다.
해마다 전세계를 다니는 그지만 그의 마음은 어느 곳보다 북한을 향하고 있었다.
코스타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지금은 어렵지만 앞으로 북한과 교류의 문이 활짝 열릴 겁니다.
그때가 되면 코스타의 역할도 굉장할 겁니다.
코스타 수련회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누구나 남북통일과 북한에 대한 부담감을 갖고 있습니다.
 이들을 통해 평양코스타도 얼마든지 가능하리라 봅니다.” 그는
포항공대와 한동대 교수를 거쳐 코스타 수련회에서 도전을 받고 15년 전 옌벤과기대 교수로 떠났던 정진호 교수를 예로 들며 “코스타 출신들이 결국 일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찬양사역자로 ‘축복송’을 부른 송정미 사모의 남편으로서도 유명하다.
곽 목사는 전도사 시절에, 송 사모는 대학 3학년 때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진행과 찬양 인도로 동역하는 등 코스타 수련회에서 없어서는 안될 짝궁이기도 했다. 4년 전 서울 청담동에 개척한 21세기푸른나무교회 목회에서도 송 사모는 동역자이자 날카로운 설교 분석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아내의 별명은 ‘잔다르크’, 또는 ‘유관순’입니다.
내면에서 분출되는 강력함이 있지요. 그러나 그것은 성령의 역사로 인한 힘 때문이지 원래는 굉장히 섬세하고 예리한 면이 많은 사람입니다.
제게 있어 아내는 지금도 귀여운 소녀 같습니다.”
 송 사모에 대한 곽 목사의 평이다.
‘청년 실업’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 땅의 청년들을 향해 곽 목사는 이렇게 도전했다.
“한국은 이제 선진국처럼 젊은 세대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사회가 됐습니다.
우물안 개구리처럼 한국만 바라봐서는 안됩니다.
한일합방은 민족의 불행이었지만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지금의 힘든 현실 속에서 저는 청년들을 통해 아프리카나 중남미 등으로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를 봅니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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