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가 돼 다시 만난 이성현·미란다 자매

“이렇게 더 귀한 쓰임 주시려고 우리를 갈라 놓으셨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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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서울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을 찾은 이성현 선교사(오른쪽)와 동생 미란다 선교사. 자매는 각자의 사역지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자로 더욱 굳건히 서겠다고 다짐했다.

 

36년 전 다섯 살 나이로 해외에 입양됐던 여동생, 어른들 손에 이끌려 떠나는 동생을 바라만 봐야 했던 언니.
두 사람이 선교사가 돼 재회했다. 그리고 이 땅에 복음의 씨앗을 뿌린 선대 선교사들이 묻힌 곳을 찾아 함께 기도했다(본보 5월 21일자 29면 참조).
15일 오전 10시 서울 합정동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새벽까지 흩뿌리던 비가 그치고 바람은 후텁지근했다.
이성현(45) 선교사와 여동생 미란다 쿠푸먼스(41·한국명 이성미) 선교사 가족이 선교사묘원에 들어섰다.
미얀마에서 사역하는 미란다 선교사는 미국인 남편 필 선교사, 세 자녀와 같이 14일 아침 한국에 왔다.
12년 만의 모국 방문이다.
이들은 이 선교사와 다른 가족들을 만나 경기도 용인자연휴양림에서 하루를 보내고 이날 다 같이 선교사묘원을 행선지로 택했다.
이 선교사는 “자매가 모두 선교사의 길을 걷기 시작한 이후 첫 만남인데 무엇보다 우리를 새롭게 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섭리 앞에 함께 서고 싶었다”고 말했다.
가족들은 자원봉사자의 안내를 받으며 언더우드, 아펜젤러 등 선교사들의 묘비를 차분히 둘러봤다.
이 선교사와 미란다 선교사는 손을 꼭 잡고 걸었다.
 예명교회 노유니스 사모가 곁에서 통역을 해줬다. 미란다 선교사는 입양되기 전의 한국 생활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어머니에 대한 기억도 그가 스무 살 성년이 돼 한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 봤던, 병세가 심해져 앞을 못 보던 어머니의 모습이 거의 전부다.
“어렸을 땐 버려졌다는 생각에 화가 많이 났고 이해도 전혀 안 됐어.
그런데 10년 전 첫 아이를 낳고 보니까 어머니의 마음이 어땠을지 정말 이해가 되더라고. 지금은 하나님이 나를 선한 목적에 사용하시려고 준비하셨다는 걸 알게 됐지만 말이야.”(미란다 선교사)
“너는 결코 버려진 존재도, 잊혀진 존재도 아니었어.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함께 자란 거니까.
언제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르지만 부르신 땅 끝에서 헤어져 하늘 복판에서 다시 만나길 바라.
어메이징 그레이스!”(이 선교사)
“아멘!”(미란다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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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란다 선교사는 “함께 자라지 않았지만 하나님이 키우시고 가르치셨기 때문에 우리 자매는 닮은 점이 아주 많다”고 말했다. 어느새 그는 울고 있었다. 울면서 “언니가 나를 위해 항상 기도하는 거 알아”라고 말했다. 이 선교사도 울면서 “우리 서로를 위해 항상 기도하자”며 동생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2시간 정도 묘원을 둘러본 뒤 일행은 빙 둘러서서 손을 맞잡고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는 근처 중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점심으로 자장면을 먹었다.
어린 시절 미란다 선교사가 자장면을 몹시 좋아했던 것으로 기억하는 이 선교사가 정한 메뉴였다.
가족들은 전날 머문 휴양림으로 향했다.
다른 일정 없이 오랫동안 속 깊은 얘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
16일에는 아이들을 위해 놀이공원에 갈 계획이다.
 미란다 가족은 17일 출국한다.
자매는 사역의 중요 전환기에 서 있다.
 이 선교사는 선교지인 카자흐스탄 정부가 선교사 비자 규정을 까다롭게 바꿔 새로운 사역 방식을 찾아야 하고, 미란다 선교사 가족은 소속된 선교단체 전략에 따라 미얀마에서 다른 국가로 이동할 예정이다.
3박4일간의 재회는 서로에게 큰 의지와 도전이 될 것이라고 이 선교사는 전했다.
“우리 자매가 가난 질병 이혼 폭행 등으로 상처 많은 사람들에게 치유의 증인이 되길 원합니다.
그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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