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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우리나라에서 파송한 선교사 중 북아프리카의 튀니지와 모로코, 모리타니 등 이른바 마그레브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선교사 비율이다.
미국 다음으로 많은 선교사를 파송했다고 자부해온 한국교회 선교사 파송의 편중 현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국제 선교단체 소속 선교사만이 활동하고 있는 이곳은 한국교회의 기도를 필요로 한다. 그나마 ‘재스민 혁명’으로 알려진 튀니지의 민주화 운동과 이집트 리비아 등으로 이어진 일련의 격변이 없었다면 북아프리카는 지금도 잊혀진 땅으로 남아 있을지 모른다.
지난달 25일 북아프리카 마그레브 선교대회에 참여했던 현장 선교사들은 이곳이 선교적으로 중요한 지역이라는 것을 증언했다.
아프리카 이슬람화의 시작이 북아프리카였다면 복음화의 시작 역시 북아프리카가 될 수 있다는 소망에서였다. 북아프리카는 과연 어떤 곳인가. 그리고 어떻게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

◇초기 기독교 교부들의 산실, 카르타고=7세기 이슬람화되기 이전까지 북아프리카 지역은 기독교의 땅이었다. 북아프리카 기독교는 튀니지 카르타고에서 시작돼 알제리와 모로코까지 퍼졌다. 이곳은 초기 기독교 교부와 변증가들의 산실이었다.
‘삼위일체(Trinity)’를 비롯한 982개 라틴어 신학 용어를 창안한 테르툴리아누스(터툴리안)와 청빈한 삶을 실천하면서 카르타고 교구의 주교로 순교한 키프리아누스(키프리안)는 대표적 교부였다. 그중에서도 아우구스티누스(어거스틴)는 북아프리카의 대표적 영적 지도자이자 서방 교회를 대표한 인물이었다.
알제리 수크아라스 출신인 아우구스티누스는 튀니지 카르타고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고 이후 회심을 경험하며 알제리의 히포레기우스의 주교가 된다.
튀니지에는 그의 어머니 모니카 여사가 아들을 위해 밤낮 기도했다는 곳을 기념해 성 아우구스티누스 기념교회도 세워져 있다.
397년과 419년 열렸던 카르타고 공의회는 393년의 히포 공의회와 함께 신약성경 27권을 정경으로 확증한 회의였다.

◇이슬람 속, 기독교는 극소수=이슬람화의 영향 속에서도 974년 카르타고 주교가 임명됐지만 983년을 마지막으로 기독교 흔적은 사라졌다.
7세기 이후 주민 대부분은 중과되는 세금과 기독교인에 대한 차별을 이기지 못했다. 이후 유대인과 기독교 공동체는 명맥만 유지해왔다.
‘세계기도정보’(2010)에 따르면 모로코 인구의 99.88%, 모리타니 99.75%, 튀니지 99.37%가 무슬림이다. 3국 모두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지만 자국민에게 이슬람 이외의 종교를 전파하는 것은 금한다.
특히 모로코의 경우 2010년 2월부터 기독교 사역자들에 대한 대대적 추방이 있었다. 공식적으로 80여명, 비공식적으로 240여명의 외국인 선교사들이 강제 추방됐다.

◇기독교 선교의 가능성=선교사들은 최근 북아프리카와 중동권을 흔들고 있는 변화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정치와 사회 변화에 따른 선교적 기회가 한층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단 가고 보자’는 식의 섣부른 접근은 곤란하다는 게 지배적이다. 철저한 준비와 훈련이 관건이다.
아랍어와 프랑스어는 기본인 데다 국가별 언어에도 능통해야 한다. 역사적 문화적 배경 지식 습득과 타 문화에 대한 긍정적 인식도 필수다.
A선교사는 “일부 준비 안 된 선교사들이 타 문화 적응 속에서 겪었던 고충을 후배 선교사들에게 그대로 전하면서 현지인과 현지 문화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 같다”며 “북아프리카 문화 자체를 좋아하고 즐길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이스라엘 중심의 성지순례에서 벗어나 전 세계를 아우르는 성지순례가 필요하다는 제언도 나왔다.
미전도종족선교연대 정보애 선교사는 “타 문화와의 장벽을 제거하고 문화적 수용성을 기르기 위한 성지순례가 필요하다”며 “이스라엘 위주의 성지순례 여행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는 성지순례를 떠나도 좋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또 이슬람에 대한 인식도 바뀌어야 이슬람권 선교가 가능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선교의 눈’으로 이슬람교와 무슬림을 보자는 것이다. 정 선교사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무슬림을 모두 테러리스트나 원리주의자로 본다면 두려움만 더 생기며 복음을 전하는 길이 막힐 수 있습니다.
하나님 편에서는 무슬림 역시 구원의 대상이자 사랑해야 할 이웃입니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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