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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북민은 통일이 됐을 때 북한에서 가장 실질적인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존재다. 그래서 탈북민을 ‘통일의 마중물’이라 부른다. 통일의 첫 단추는 우리 가까이에 있는 탈북민부터 품는 것에 있다. 사진은 탈북민 사역을 하고 있는 서울의 한 교회에서 목회자와 탈북 청년들이 통일을 위해 기도하는 장면.



탈북민들의 국내 정착을 돕는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 지원에 관한 법률(1997년 제정)’이 제정된 지 올해 20년째를 맞는다. 


그간 국내 거주 탈북민의 수는 2만8000명 이상으로 늘었고, 곳곳에서 ‘대한민국 국민’이 된 그들을 볼 수 있다. 


한국교회는 탈북민들을 ‘통일한국의 마중물’ ‘북한선교의 선봉장’이라 부르며 섬김사역을 펼쳐왔다. 


탈북민들은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이방인”이라며 차별과 불편한 시선에 따른 고충을 토로하고 있다. 


국민일보는 탈북민의 고충과 한국교회의 탈북민 사역 실태, 효율적 사역 방안 등을 5회에 걸쳐 살펴본다. 



만연한 차별, 탈북자는 

'2등국민'?


2013년 탈북한 한리숙(가명·45·여)씨는 하나원 교육 이후 광주의 한 공단 내 식당에 취직했다. 

그곳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하루 13시간 이상을 일했다.


“다른 종업원들은 한가할 때 낮잠을 자기도 하면서 쉬더군요. 하지만 저는 일을 해도 돈을 안주는 나라(북한)에서 왔기 때문에 돈을 준다고 하니까 고마워서 쉬지 않고 열심히 일했죠.”


문제는 다른 종업원의 월급을 알게 되면서 생겼다. 


“하루는 같이 일하는 남한 언니가 제게 월급을 얼마 받느냐고 묻더군요. 

80만원을 받았다고 하니까 너무 당황하는 거예요. 본인은 130만원 이상 받는대요. 한국에서 저처럼 먹고 자면서 하루에 13시간 일을 하면 그렇게 받는 게 맞다고 했어요.” 


한씨는 그길로 사장에게 따졌지만 사장은 배은망덕하다며 오히려 한씨를 내쫒았다.


이후에도 비슷한 경험을 2∼3번 더 겪었다. 그는 현재 다른 식당에서 일하고 있다. 


“돈은 최저임금보다 적게 받아요. 저 같은 탈북민들이 많죠. 당장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그냥 참고 일합니다. 남한에서 구름길을 걷는 것까지 기대한 건 아니지만 사는 게 쉽진 않네요.” 



문화·언어적 차이, 넘기 힘든 장벽 


김수란(가명·34·여)씨는 2012년 당시 2세였던 아들과 함께 북한을 빠져나왔다.

 6세가 된 아들은 현재 어린이집에 다닌다.


 올해로 2년째다.


“아이가 한국 선생님과 엄마 사이에서 혼란스러워 하더라고요. 억양과 사용하는 단어가 다르니까요.” 


김씨는 한 차례 학부모 동반 수업에 참여한 이후 어린이집에 찾아가지 않는다. 


“제 말투가 특이하다고 아이들이 놀리기 시작했어요. 

말투를 따라하면서요. 한 아이는 어디서 들었는지 ‘빨갱이’라고도 했어요. 아들이 그때 상처를 많이 받았는지 울면서 어린이집에 오지 말라더군요.” 


이모(30)씨는 2010년 누나와 함께 탈북해 남한에 정착했다. 


북한에서는 교육으로 인한 신분상승을 꿈꿀 수 없었지만 남한에서는 가능해보였다. 


탈북민 전형으로 서울의 4년제 대학 무역학과에 무난히 합격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열심히 공부했지만 이상하게도 친구들과의 학업 격차는 갈수록 벌어졌다. 


이를 통해 남한 친구들과 자신은 출발점부터 다르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이씨는 “북한에서 배운 주체사상 중심의 교육은 쓸모가 없었다”며 “다른 학생들이 취업준비로 휴학할 때 저는 학교수업을 따라가기도 벅차 1년 휴학을 했다”고 밝혔다. 


이씨에게 가장 무섭게 다가온 장벽은 영어였다. 


북한에서는 한 번도 사용해본 적이 없어 수업은커녕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쉬운 단어도 도무지 알아듣기 힘들었다. 


자존심이 상해 무슨 뜻인지도 매번 묻기 어려워 답답했다. 


그는 현재 탈북민 대학생을 도와주는 한 크리스천에게서 영어 과외수업을 받고 있다.



21%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남한정착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탈북민들의 실태는 수치로도 나타난다. 


북한인권정보센터가 지난해 탈북민 40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한 달에 100만원을 벌지 못하는 탈북민이 57.8%에 달했다. 


탈북민 중 기초생활보장 수급 대상자 비율은 37.7%로 일반국민의 수급 비율(2.6%)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이 조사에서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탈북민의 20.8%가 “그렇다”고 답했으며 이들 중 74.7%가 월 소득 150만원 미만으로 나타났다.


탈북민 정착 지원 공공기관인 남북하나재단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탈북자는 2만8759명으로 이들의 고용률은 53%에 불과했으며 직업을 얻어도 단순노무(30.7%)와 주방, 홀 서빙 업무(22.4%)가 대부분이었다.


손광주 남북하나재단 이사장은 “탈북민 실태 조사 결과 응답자의 54.7%가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41.9%가 ‘북한 출신이라는 각종 편견과 차별’ 때문에 남한 생활이 불만족스럽다고 답했다”며 “같은 민족이지만 겪어온 문화와 소통방식이 다르다는 이유로 탈북민들이 차별 당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CBS 노컷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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