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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태순 집사가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사형폐지운동연합회 사무실에서 맞은편에 있는 교회를 바라보고 있다. 23년 넘게 감옥에 갇혀 있는 아들이 자유의 몸으로 돌아오게 해달라고 애타게 기도하고 있다. 지난 3월 촬영한 사진이다. 



23년7개월. 8600일이 넘는 시간이다. 


장태순(69·서울 온누리교회) 집사의 큰아들 김진태(50)씨가 상습적으로 가족을 구타하는 아버지를 살해하고 교도소에서 복역한 기간이다. 


김씨는 사형을 선고받았다. 

복역 10년 후 무기로 감형됐다. 


목회자들의 사형폐지운동이 힘이 됐다. 

그를 아는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졌다. 


그런 김씨를 어머니 장 집사만 남모르게 마음 졸이며 석방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26일 서울 종로에서 장 집사를 만났다.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궁금했다. 

참담했던 사고를 떠올리기 싫은 듯했다. 


“목에 녹지 않은 큰 가시가 걸린 것 같아요.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할 말은 많습니다. 

하지만 여태까지 아무한테도 우리 가족 이야기를 하지 못했어요(잠시 침묵).”


끔찍한 사건은 1992년 10월 13일 일어났다. 


이날 김씨는 흉기로 엄마를 찌르고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아버지를 엽총으로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했다. 


경찰에 긴급 체포된 김씨는 죄를 사실대로 자백했지만 이듬해 존속살해 및 사체유기의 죄로 사형이 확정됐고, 사형 집행을 기다리는 신세가 됐다. 


하지만 어머니 장 집사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사형수인 아들에게 하나님을 굳게 의지하라고 했다.


“애들 아빠는 술만 먹으면 싸우고 가족을 때리는 소위 알코올중독자였어요. 


결혼하고 생활비 한푼 주지 않았지요. 


사건 당일에도 남편은 술을 잔뜩 먹고 흉기로 제 머리를 찍었습니다. 


저는 실신했고요. 


큰아들 진태가 그 광경을 보고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한 겁니다. 

물론 아버지를 죽인 것은 인간으로서 씻을 수 없는 범죄입니다. 


하지만 아들이 그랬어요. 


‘엽총에 실탄이 들어있는지 보려고 했는데 아빠 머리에 잘못 맞았다’라고요.”


장 집사는 사건 직후 폭력 피해자의 마음을 이같이 표현했다. 


“마음은 괴로워도 (폭력 남편이 없어서) 살맛났다.” 자신에게 구타를 일삼는 남편이 사라져 육신은 편했다는 의미였다. 


남편이 죽고 며칠 후 어떤 여자에게서 이상한(?) 전화가 왔다. 


“신랑이 죽은 것을 축하합니다.”


“이게 뭔 소리여? 우리 집 사정을 잘 아나보네. 참 나….” 죽은 남편이 생전에 사귄 여자인 듯 싶었다. 


“진태가 경찰에 붙잡혀가면서 그러더군요. 

‘엄마, 이제 남은 식구는 평안하게 살 거야’라고요.” 


장 집사는 신비한 꿈 이야기를 들려줬다. 


27년간 함께 산 애들 아빠가 꿈에 나타나 내 등을 두드리면서 “미안해, 진태 엄마. 내가 잘못했어. 진태를 살려내”라고 속삭였다는 것이다. 


아들 김씨는 현재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수용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다. 

전도한 수용자가 20여년간 1000여명에 달한다. 


김씨는 방을 옮길 때마다 복음의 씨앗을 뿌렸다.


당시 사형수는 2∼3개월마다 방을 옮기는 관행에 따라 전도활동을 할 수 있었다. 


방을 옮기면 새로운 식구와 기도하고 예배와 성경 공부 등으로 교제했다. 


자신의 영치금을 쪼개 속옷, 운동화 등 생활필수품을 지원하는 것도 그의 작은 베풂 사역 중 하나였다.


사형수인 김씨가 이렇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서울구치소 보안계장인 박효진 장로와의 상담이 계기가 됐다. 


박 장로의 설득과 권유 끝에 기독교에 귀의했다.


92년 12월 성탄예배 때 세례를 받았다. 


함께하던 수용자들이 사형 집행에 대한 극심한 공포감에서 비로소 벗어날 수 있었다. 

김씨는 교도소에서 예배를 드리다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주위 사람들에게 창피한 것도 개의치 않았다. 


“예수님, 용서해주세요. 저는 아버지를 살해한 죄인입니다. 

나같이 하찮은 죄인 때문에 아무 흠도 없는 예수님이 돌아가시다니….”


이후 김씨는 인생관이 완전히 변했다. 


자신의 욕심보다는 주님의 사랑을 먼저 생각하게 됐다. 

자신이 체험한 하나님을 주위 수용자에게 고백했다. 


많은 동료들이 변화됐다. 


김씨는 어머니께 보낸 편지에서 “교도소를 선교지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떤 선교사나 목사가 제가 생활하는 곳까지 찾아올 수 있겠습니까”라고 간증했다. 


김씨의 별명은 ‘담 안의 전도사’다. 


2002년 12월 김씨는 한국기독교사형폐지운동연합회 대표회장 문장식 목사, 국민의당 정대철 상임고문 등 사형폐지운동가들의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에 힘입어 무기수로 감형됐다. 


어머니 장 집사는 아들에게 자주 면회 가지 못하는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마음 같아선 교도소 앞에 방을 얻고 싶다고 했다. 

아들은 어머니가 면회 올 때마다 “엄마, 자주 오지 마세요. 엄마가 힘들어요”라는 말을 남긴다. 

장 집사는 2016년 가정의 달 마지막 주말을 보내면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하소연했다. 


“대통령님, 죄송합니다. 국정에 신경 쓸 게 많으시겠지만 사랑하는 우리아들 진태 좀 살려주십시오. 

이제 오래됐고 죗값을 치를 만큼 치렀으니 석방시켜주십시오.

돌아가신 아빠도 그러길 원하실 겁니다

 제 아들은 교도소 안에서 조적 기능사, 워드 1급, 엑셀, 건축목공 기능사, 보일러 기능사, 정보기기운용 기능사, 온수온돌 기능사, 자동차정비 기능사 등 8개 자격증을 취득했어요. 

출소 후 모범시민이 되기 위함입니다. 

아들 장가도 보내고 싶고요. 

제가 모두 책임지겠습니다. 선처 바랍니다.” 


장 집사는 10여년 전부터 아들이 1년간 모은 영치금 100만원을 구호단체에 기탁해 오고 있다. 

올 초 이 돈을 북한 결식 어린이를 돕는 국제사랑재단에 전달했다.


수년 전엔 경기도 안양 부흥사회복지관의 소년소녀가장에게 전달했다. 

또 미혼모 보호시설인 애란원으로 보내 따뜻한 사랑의 불씨가 됐다. 


건물청소 등을 하면서 살아온 장 집사는 요즘 집을 보러 다닌다. 


아들 진태 이름으로 조그만 집을 장만하기 위해서다. 


장 집사는 아들이 석방되면 장가를 들여 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날을 꿈꾼다. 


“그런데 진태가 자기 이름으로 집 사지 말라고 하네요. 

만에 하나 동생들이 싫어하거나 다툼이 일어날 것을 염려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진태 마음이 너무 착해요.”


무기수 아들이 집에 돌아오길 애타게 기다리는 어머니의 마음이 안쓰럽다. 

문득 기독교 세계관의 작품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니코프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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