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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세군사관 부인인 임명애의 서대문형무소 수형자카드 기록 (출처= 국가기록원 '여성독립운동사 자료총서-3.1운동편')



전국적으로 일어난 평화적인 만세운동인 3.1운동에는 말 그대로 남녀노소가 함께 참여했다. 


국가기록원이 최근 펴낸 3.1운동 편 여성독립운동사 자료총서를 보면 10대의 어린 여학생부터 간호사, 기생, 환갑을 바라보는 전도부인 등 다양한 여성들의 한일투쟁에 참여했다. 


특히 기독 여성들의 참여가 많았음을 알 수 있다.


3.1운동에 참가한 54명의 여성 독립유공자들을 살펴보면, 전도부인 3명, 교회 유사 1명 등 개신교 신자로 확인할 수 있는 이들은 모두 11명이다. 


여기에 기전여학교, 이화학당 등 개신교에서 세운 학교의 교사와 학생들, 구세병원과 세브란스병원의 간호사 등 상당수가 개신교 신자였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구세군 사관의 부인인 임명애는 임신한 상태에서 파주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붙잡혀 옥중에서 아기를 기르기도 했다. 


세브란스병원 간호사였던 노순경, 김순호, 이신도, 박덕혜는 직접 태극기와 조선독립만세 깃발을 만들어 만세운동에 참여했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이같은 독립운동으로 붙잡힌 여성들은 일제의 무자비한 폭행과 모욕을 견뎌야 했다. 

매질과 구타, 폭력은 말할 것도 없었다.


"머리를 잡혀 종로서까지 끌려갔을 때 20여명의 순사가 달려들어 발길로 차고, 뺨을 때리고 칼로 찌르고 해서 나는 인사불성이 되고 말았다".... (미기독교연합회 3.1운동 조사보고서에서 )

여성에 대한 육체적 모욕도 서슴지 않았다. 


" 여학생과 젊은 부녀자들의 옷을 벗기고 때리고 완전히 알몸으로 만들어,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일본 남자들 앞에 노출시키는 것이 예사였다".... (영국 신문기자 멕킨지 '한국독립운동(1920년) 중에서) 


기독교인들에게는 신앙적 조롱도 뒤따랐다. 


" 신문할 때에는 십자가를 늘어놓고 말하기를 '너희들은 신자이므로 마땅히 십자가의 고난을 받아야 한다'고 하였다." ... (한국독립운동지혈사 중에서) 


국가기록원은 일제의 판결문과 서대문형무소의 수형자 기록카드 등 관련 자료를 분석해 이같은 여성 항일투쟁사 전반을 담아냈다.


하지만 이같은 여성들의 항일투쟁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1만 4천 264명의 독립운동 포상자 가운데 여성은 270명에 불과하다. 


잊혀진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이름과 그들의 숭고한 활동에 대한 연구가 보다 활발해질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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