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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연(맨 왼쪽)씨가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청운동주민센터 앞에서 종교실명제 도입을 위한 시위에 참석하고 있다. 김혜연씨 제공



김혜연(가명·51·여)씨는 3년 전 일을 떠올리면 아직도 몸서리가 쳐진다.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신천지)에 딸을 빼앗겼다 가까스로 되찾았기 때문이다. 


지난 23일 서울 관악구의 한 사무실에서 만난 김씨는 “잠시 떨어져 지낸 1년 사이 신천지가 딸에게 접근했다”며 말문을 열었다.


김씨 가족은 남편의 해외 주재원 근무로 수년간 외국에 있다가 2014년 1월 귀국했다. 

딸 이수영(가명·24)씨는 대학 진학 때문에 1년 앞선 2013년 초 홀로 한국에 들어왔다.


신입생이었던 이씨는 학교에서 잡지사 직원이라는 A씨로부터 설문조사 요청을 받았다. 

그런데 한 번이 아니었다. 


A씨는 몇 차례 더 찾아와 설문조사를 요청했고 어느 정도 안면을 트자 성경공부를 함께 해보자고 했다.


모태신앙인 이씨는 처음엔 망설였으나 호기심이 생겼다. 

그해 가을 A씨를 따라 갔다. 


처음에는 카페에서 성경공부를 했고 그 다음엔 간판이 없는 건물 사무실로 장소를 옮겼다. 

이씨는 점점 빠져들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설문조사는 신천지 포교를 위한 사전 정보수집 활동이었다.

이듬해 귀국한 어머니 김씨와 가족들은 딸이 신천지에 다니는지 몰랐다. 


김씨는 “딸이 스마트폰 사진을 보여준 적이 있는데 언뜻 신천지라는 글자가 눈에 띄었다”고 했다. 

처음엔 잘못 본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사진 속 배경에는 분명 신천지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있었고 딸 이씨는 그 앞에서 마이크를 들고 서 있었다. 


순간 머리칼이 쭈뼛 섰다.


김씨는 며칠 동안 고민한 끝에 귀가하는 이씨에게 “너 신천지 다니고 있니” 하며 물었다. 

그러자 이씨는 “엄마가 그걸 어떻게 알았냐”며 경계했지만 이내 “엄마도 신천지가 어떤 내용인지 한번 들어보라”고 권했다.


이후 가족들은 이씨가 신천지에서 나오기까지 힘겨운 나날을 보내야 했다. 

김씨는 “매일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 같았다”고 했다. 


전에 없던 딸과의 말다툼이 하루하루 늘었다. 


신천지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서로 화를 냈고 그때마다 방문이 ‘쾅’하며 닫히는 일이 이어졌다. 

설상가상 김씨의 어머니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쓰러져 사망했다. 

김씨는 “어머니 장례를 치르랴 딸 걱정하랴 하루하루 버티는 것조차 힘겨웠다”고 했다.

김씨는 자신의 언니와 함께 설득에 나서 딸에게 이단 상담을 받도록 간곡히 부탁했다. 

“딸은 처음엔 완강히 거부했어요. 


그래서 ‘네가 이단 상담을 한 번만 받으면 엄마와 이모도 신천지 교리 교육을 받겠다’며 설득했어요.” 


이씨는 그렇게 상담을 받게 됐고 이틀 만에 마음을 돌렸다. 

김씨는 “딸이 회심했다”고 표현했다. 


그는 “딸이 상담 이튿날 신천지 교리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하더라”며 “신천지가 세뇌하다시피 교육하는 탓에 혼자서는 잘못된 점을 찾지 못한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씨는 신천지에서 나온 후 한동안 후유증을 앓았다. 


TV를 보거나 식사하는 일상 속에서 넋이 나간 사람처럼 무표정할 때가 많았다. 

신천지의 시한부 종말론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며 포교만 하느라 미래에 대해선 아무런 생각도 준비도 하지 못한 탓이었다. 


신천지 사람들만 만난 탓에 인간관계도 협소해져 있었다. 


부모님과 함께 다시 다니기 시작한 교회에서도 한동안 적응하지 못했다. 

신천지에 있다 나온 걸 주위에서 알까봐 늘 조심해야 했다.


이씨는 1년 간 휴학을 하면서 운동을 배우고 평소 좋아했던 연극도 보면서 회복기를 가졌다. 

가족들과의 관계도 조금씩 회복됐다. 


이씨는 지금 교회 초등부 교사로 활동 중이다. 

장래 계획도 조금씩 세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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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종교 실명제·특별법' 제정 촉구 서명 운동 확산을 통해 신천지 피해로부터 적극 대응하고 있다.


김씨는 “젊은이들에게 1년은 중요한 시기다. 잠깐 겪은 일이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청년들이 신천지에 빠지는 첫 번째 이유는 신천지가 스스로 정체를 밝히지 않고 접근하기 때문”이라며 “선의의 피해자를 줄이려면 이것부터 막아야 한다”고 했다.


김씨는 요즘 종교실명제 도입을 위한 시위 현장에 나간다. 


자신의 딸은 제자리로 돌아왔지만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수많은 딸들을 위해서다.


김씨는 “나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 순 없다”며 선글라스와 챙 달린 모자를 챙겨 거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국민일보 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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