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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나안성도를 위한 대안교회인 ‘여명의동산교회 창립예배’가 지난달 26일 서울 종로 YMCA빌딩에서 열리고 있다. 여명의동산교회 제공



#크리스천 김모(33·회사원)씨는 요즘 교회에 다니지 않는다. 

교회를 비판하는 뉴스가 자주 등장해 창피했기 때문이다. 대신 주일 오전이 되면 분위기 있는 카페에 들린다. 혼자 성경을 읽고 귀에 이어폰을 꽂고 찬양을 듣는다. 노트북을 켜고 유명목사의 동영상 설교를 들으며 ‘교회란 무엇인가’ 하는 고민에 빠진다.

 


#대학강사 박모(38)씨는 자칭 ‘가나안신자’다. 해외유학에서 돌아와 아직 정착할 교회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는 3개월째 ‘가나안교회’에 다닌다. 비교적 자유롭게 진행되는 예배형식에 만족하고 있다. 가나안교회는 헌금을 강요하지 않았다. 일요일이란 시간이 이토록 풍성하다는 것에 놀라고 있다. 그 시간에 기성교회에 가지 않아도 신앙이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교계에서 ‘가나안교회’ 사역이 주목받고 있다. 가나안이란 ‘안 나가’를 거꾸로 해서 만든 신조어이다. 


크리스천이지만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이들을 지칭한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에굽땅을 벗어나 가나안 땅을 찾아 나섰듯 ‘새로운' 교회를 찾아다니는 사람을 말한다. 


한국사회에 가나안신자는 얼마나 될까. 


한국교회탐구센터가 지난 6월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크리스천 10명 중 약 2명(19.2%)은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다. 이를 그대로 적용하면 가나안신자 수는 약 190만명으로 추산된다. 


2013년 1월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가 조사했을 때(10.5%. 약 100만명)보다 8.7%(약 90만명) 포인트나 증가한 수치다. 


이처럼 가나안신자가 크게 증가하면서 이들을 돌보는 대안교회인 ‘가나안교회’ 설립도 잇따르고 있다. 


경기도에 안산 나루교회와 양평 열두광주리가나안교회, 부천가나안교회가 대표적이다. 


서울에는 종로 YMCA에 있는 여명의동산교회와 마곡나루역 인근 서문교회, 마포구 갤러리가나안교회, 경복궁역 인근 마지가나안교회 등 10여 곳에 달한다. 


와인가나안교회와 놀이가나안교회, 상담가나안교회 등 직능별 가나안교회 설립도 준비 중이다. 

가나안교회에 나오는 이들은 대부분 이 교회 저 교회를 전전하는 성도들이다. 


모이는 시간도 주일 오후가 많다. 가고 싶은 교회를 갔다 오라고 하기 때문이다. 


지난 1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선유도역 인근 그라찌에가나안교회에선 기성교회를 떠난 이유에 대한 토론이 한창이었다. 


교인에게 상처를 받았다는 50대 김모씨가 말문을 열었다. 김씨는 주일예배가 끝난 직후“제가 있던 교회는 잘난 사람만 새신자로 등록하면 시기와 질투가 난무했다. 나도 그 피해자”라고 토로했다. 

과다한 헌신 요구로 교회를 나올 수밖에 없었다는 40대 서모씨 이야기도 10여분 넘게 절절했다. 

교회를 다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는 20대 청년도 있었다. 교회를 떠난 가나안신자지만 어떻게든 예배를 드려야하지 않을까 하는 간절함이 있는 사람도 있었다. 


목회자 비리나 교회분쟁, 교회의 배타적 분위기 때문에 교회를 떠났다는 50~60대 남성들의 이야기는 안타까움을 더했다. 


잠시 후, 토론은 하나님의 나라, 내세(來世) 논란으로 이어졌다. 


“대부분 교인들은 천국을 죽어서 가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천국은 가는 것이 아니라 오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걸 잘 안 알려 줘요. 예수님이 오심으로 이 땅이 천국이 된 것이지요”(55세 박모씨).


“예수님이 오셨는데 왜 이 세상은 이렇게 고통과 불합리한 것들이 많을까요. 악인이 형통하는 경우도 많고요. 악인은 반드시 성경 말씀대로 사후 심판을 받아야만 합니다”(62세 임모씨).


그라찌에가나안교회는 전 서울기독대 교수인 손원영(예술목회연구원장) 목사가 지난 6월 설립했다. 이 교회 헌금제도는 ‘자기신용 지출제’다. 신자들이 낸 헌금(감사헌금, 십일조 등)을 선교비로 100% 돌려주는 제도다. 


신자들은 돌려받은 헌금으로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위해, 또 선한 선교사업에 직접 지출하면 된다. 


‘영수증 봉헌제’도 병행하고 있다. 이웃을 위해 혹은 선교를 위해 일정금액을 지출할 경우, 그 영수증을 사후에 봉헌하는 제도이다. 


손 목사는 목회사례비를 받지 않는다. 자원봉사활동인 셈이다. 


한 달에 한번 열리는 예배공간도 한 독지가로부터 무료로 제공받고 있다. 


그는 가나안교회에 대해 “아직 가나안신자를 위한 구체적인 선교모델 혹은 교회모델이 없다”면서도 “일종의 21세기 실험적 작은교회 운동이다. 


가나안교회는 요즘 한국교회가 보여주는 문제인 건물도 없고 목회세습도 없고 직분도 없다”고 소개했다. 


손 목사는 “예수님은 아흔아홉 마리의 양보다 한 마리 길 잃은 양을 더 소중히 여기셨다”며 “한국교회는 예수님 말씀처럼 한 영혼의 말을 경청해야한다. 현재 가나안교회의 8할 정도, 70~80% 정도는 자기가 신뢰할만한 공동체를 만나면 충분히 다시 기성 교회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손 목사의 사역을 돕는 연세대 김학철 교수는 “누구든 환영한다”며 “물론 가나안신자가 아니어도 좋다. 제2의 종교개혁을 함께 실천하는 마음으로 함께 해 주신다면 큰 기쁨이겠다”고 했다.


선교 전문가들은 “앞으로 포스트모더니즘과 개인주의화, 교회의 세속화 등의 영향으로 가나안신자, 가나안교회가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진단했다. 가나안신자에 대한 목회적 돌봄의 필요성이 제기된다는 견해가 많았다. 


한국교회건강연구원장 이효상 목사는 “가나안교회 속출 현상은 기성교회의 반성과 갱신에 도움을 주는 한편 새로운 선교공동체가 출연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주중 교회나 신우회 등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난 새로운 신앙공동체가 가나안신자의 신앙성장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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