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하는 삶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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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하용조 목사는 강력한 추진력을 가진 꿈쟁이(비저너리)였다.
사도행전적 교회를 꿈꾼 그는 28장으로 끝난 사도행전을 이어 새롭게 29장을 써내려가야 한다며 온누리교회의 영성과 목회, 선교 콘텐츠를 세계화해 나갔다.
하 목사는 신앙의 자유를 찾아 평북 진남포에서 경기도 이천을 거쳐 전남 목포까지 피난을 온 실향민이다.
그는 “당시 피난길에 북한 인민군이 도로 옆에 납작 엎드려 있는 그의 가족을 보지 못하고 지나친 일, 가족이 탄 배가 물이 찾으나 가라앉지 않은 일 등 위기 속에서 살아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이었다”고 고백했었다.

 

◇떠남의 목회를 하다
그가 선교지향적 목회를 하게 된 것은 어려서부터 외국선교사들이 헌신적인 사역을 하는 걸 가까이서 지켜봤기 때문이다.
목포로 피란 온 그의 가족은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의 도움을 받게 되고 선교사 집에서 머물면서 그들의 신앙과 삶을 배울 수 있었다. 유소년 시절 목포에 지낸 그는 대광고를 거쳐 건국대에 진학한 뒤 한국대학생 선교회에 들어갔다.
이듬해 경기도 입석에서 열린 CCC 여름수련회에서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고 사역자로 부르심을 깨닫기 시작했다.
하 목사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 적이 있다. “예수님을 정신없이 좋아했어요. 목이 쉬도록 찬송하고 울면서 기도했어요. 밤 새워 성경을 읽었습니다.
지금 외우고 있는 성경구절은 거의 그때 외운 것입니다.
‘나의 팡세’라고 이름 붙인 큐티노트를 만들어 큐티를 규칙적으로 했습니다.
명동이나 남산이나 사직공원에 가서도 전도했어요.”
7년간 CCC간사로 활동한 그는 72년 장로회신학대에 입학한 뒤 마포교회 교육전도사로 사역하였다. 이어 76년 예장 통합 목사 안수를 받기 2년 전 코미디언 배우 가수 등과 함께 시작한 성경공부 모임을 기반으로 해 연예인교회를 개척했다.
당시 하루 4시간씩 자고 일곱 번 설교하고 철야기도 금식기도하면서 목회를 했다.
그는 떠남을 즐겼다. 연예인교회가 부흥되고 성전이 완공될 무렵 간경화로 교회를 사임했다.
간이 나빠져 두 시간만 차를 타도 몸이 녹초가 돼 쓰러질 정도로 피곤이 몰려왔다.
80년 치료와 휴식 차 영국으로 건너가기 전 두란노서원을 창립했다. 그리고 영국에서 치료와 쉼보다는 또 다른 일감을 찾아냈다.
81년 런던바이블칼리지에 입학, 1년간 공부한 뒤 92년 WEC국제선교회에서 1년반 동안 훈련을 받았다.
이어 83년부터 1년간 런던인스티튜트에서 목회와 선교에 대해 공부했다. 하 목사는 이때 평생의 멘토인 강해설교의 대가 데니스 레인 목사와 복음주의 지성인 존 스토트 목사를 만났다.
평생의 사역인 사도행전적 교회와 두란노서원 사역의 밑그림을 그리게 된 것이다.
교회의 성장과 성숙을 돕고 세상의 문화를 변혁시키고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고 비저너리 선교사를 준비하는 데 두란노서원의 비전이 됐다.
이에 따라 바이블칼리지, 아버지학교, 어머니학교, 천만큐티사역, 천만일대일사역, 출판사 사역이 가능케 됐다.
온누리교회는 두란노서원과 함께 ‘로컬처치(지역교회)’와 ‘파라처치(선교단체)’의 조화를 통해 성공적 목회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질병은 나의 동반자”
그에게 평생의 가시는 육체의 질병이었다.
대학교 3학년 여름수양회에서 폐결핵이 발견됐다. 밤 12시까지 전도하러 다닐 때였다. 휴학하고 전도활동을 쉬어야 할 때 그는 전도하지 못해 고통스러워했다.
어느 날 새벽 시편을 읽던 중 환상을 보게 됐다고 한다. 주님이 직접 나타나 그에게 목사가 될 것을 권고했던 것이다.
“두번째 주님을 만났을 때 전 주님으로부터 정중한 초대를 받았어요. ‘네가 목사가 되지 않겠느냐’ 하나님은 저를 병원에다 집어넣고 아무도 못만나게 하시고는 고독하게 만들었습니다. 절망 가운데 성경을 보게 하셨습니다.”
평생 아버지처럼 장로로 주님을 살고 싶었던 그는 목회자가 되는 걸 끝까지 피하고 싶었다.
기적적으로 병에서 치료받은 뒤 목사의 길을 뒤로 한 채 군에 입대했다. 그러나 뜻하지 못한 복병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폐결핵이 재발한 것이다. 이것이 장신대에 입학하게 된 계기다.
폐결핵은 그를 평생 육체적 어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했다. 치료차 먹은 약의 부작용으로 당뇨 간염을 앓았다.
당뇨는 고혈압으로 이어졌고 신부전증으로 발전, 1주일에 3번 투석해야 했다. 간염은 간경화를 거쳐 간암으로 퍼졌다. 암 수술도 7차례나 받았다.
그는 질병이 오늘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고백했다. “하나님은 병이라는 고난의 풀무 불에 집어넣어 연단하셨어요. 내가 교만할 것을 아시고 바울의 가시처럼 질병을 꽂아 놓으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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