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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밖 청년들이 '열정페이'에 한숨쉰다면 교회 안 젊은이들은 '헌신페이'에 눈물짓고 있다. 
열정페이란 열정과 페이(Pay·급여)를 합한 신조어다. 

한마디로 열정 있는 청년이니 적게 받고 일하라는 것이다. 

패션 미용 요식업계 등의 도제식 고용 형태 고발로 열정페이가 근래 회자됐다. 

교계에서는 헌신페이란 말이 나오고 있다. 

청년 사역자의 저임금 관행을 당연시하는 풍조에 대한 지적이다. 

황선관(38) A선교회 간사는 최근 청어람매거진에 기고한 글에서 "열정페이를 활용해 헌신페이를 정의한다면 '개신교 영역에서 헌신을 빌미로 이뤄지는 초저임금 노동'"이라고 말했다. 

10여년 동안 활동한 황 간사는 3년차까지 거의 매월 30만원을 밑도는 후원금을 받았다. 

그는 "하나님 일에 헌신은 필요하지만 당연한 것으로 강요해선 안 된다. 
헌신페이에 대한 문제의식과 반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헌신이 아니라 ‘버려진 신’ 아닌가 

2003년부터 캠퍼스 선교를 위해 활동했던 지방 출신의 황 간사. 

그는 27일 “통장 잔액 1만원을 만들기 위해 9500원 남은 통장에 1000원을 입금한 적이 있다. 

그랬다 수수료 700원 때문에 결국 돈을 뽑지 못하고 은행 자동인출기 앞에서 돌아선 기억이 생생하다”고 했다. 

황 간사는 그래도 사정이 나은 편이었다. 

B선교회는 10만원, C선교회는 0원이 공식 월 후원금이다. 

선교단체나 기독교 시민단체, 연합기관 간사들은 적게는 30만원, 대개 100만원 안팎을 후원금이나 사례비 등의 명목으로 받고 있다. 

P연합기관 국제파트 간사로 일하는 홍콩 출신 파니(Fanny·28·여)씨의 월 급여는 100여만원. 

“매일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닌다. 자취방 월세 45만원을 낸 뒤 교통비나 식료품을 사고 나면 남는 돈이 없다. 서울의 높은 물가를 고려하면 여행은 꿈도 못 꾼다.” 

파니는 크리스천 청년의 연합 활동에 기여한다는 보람을 느끼지만 장기적으론 자신이 없다. 

“간소하게 사니깐 버티지만 저축을 할 수 없다. 이 돈으로는 결혼을 하거나 자녀를 키울 수 없다.” 
그는 교단 차원의 재정 지원 부족을 문제로 꼽았다. 

“목사님들이 청년이 소중한 걸 모르는 것 같다. 청년 부문 예산은 적게 배정되고 그나마 자꾸 줄고 있다.” 

이런 분위기 탓에 기독교 연합기관 등에서 젊은 간사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몇 년간은 헌신하는 마음으로 버틴다. 

Q선교단체 간사 강모씨도 그런 경우다.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이 길에 들어섰다. 하지만 낮은 급여로는 사명을 지속할 수 없다. 20, 30대 간사들은 4∼5년 일하다 그만둔다. 단체 입장에서 리더 양성이 안 되고, 사역의 연속성과 전문성도 떨어진다.” 

강씨는 세 아이의 아버지다. 

사무실에서 대중교통으로 2시간 걸리는 수도권 소도시에서 출퇴근한다. 
단체에서 받는 월 급여는 180만원. 

“지금은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지만 가게 된다면 생활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후원이 해외 선교에 집중된 상황에서 간사가 개교회의 후원을 받기는 쉽지 않다. 단체가 멤버 케어(Member Care)에도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청년들이 헌신과 사명감으로 열악한 처우를 감내하더라도 개인의 성장이 이뤄지지 않으면 지칠 수밖에 없다. 

R기독교 단체에서 1년 반 정도 일하다 그만둔 박모(31)씨는 “내가 영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성장하는 것 같지 않았다. 소진되는 느낌”이라고 토로했다. R단체의 대표는 50대 목회자였다. 

“의사소통이 늘 일방통행이었다. 대표는 회의에서 ‘다시 해와’를 반복했다.” 

박씨는 세대차이 관점에서 이 문제를 봤다. 

“현재 50대 이상과 20, 30대의 간극이 크다. 그 세대는 권위적인 질서 안에서 민주화와 경제화를 이뤄내서 그런지 우리에게도 같은 방식을 원하는 것 같다. 

이견을 내면 헌신이 부족하다고 동문서답하더라. 시키는 대로 하라는 거다. 어쩌면 처음부터 낮은 급여는 각오한 거다. 그러나 비전 공유는커녕 말도 안 통하는 상황에서 헌신하기 어려웠다.”

그는 기독교 단체에서 청년들이 성장하기 어렵다고 자조했다. 

“현재 50, 60대 리더들이 예순, 일흔까지 자리를 지키지 않겠나.” 
R단체는 청년들의 이탈로 40대 간사가 없다. 

박씨는 현재 또래 등과 새로운 기독교 단체와 사회 단체를 구성해 활동 중이다.

한 청년 간사는 이런 상황을 두고 “기독교 단체가 청년들의 헌신을 그야말로 ‘버려진 신’으로 만들고 있다”고 꼬집었다. 


소모임 등을 통해 공동체 의사소통 강화 

소모임을 통해 단체를 활성화시키고 있는 감리교 사회선교기관 ‘고난받는이들과함께하는모임(고난함께)’은 의사소통 차원에서 주목받는 모델이다. 

이관택 고난함께 사무국장은 “조직 안에서나 고난일꾼(외부 자원봉사자)들과 협력할 때 개인의 의사나 활동이 존중된다는 느낌을 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고난함께의 급여는 다른 기독교 단체와 비슷하지만 상근자의 자긍심이 유달리 강한 이유다. 
고난함께 상근자 5명은 매주 화요일 오후 6시에 두 시간씩 ‘책모임’을 갖는다. 

신학이나 사회 문제와 관련된 책을 읽고 토의하는 시간이다. 

이 사무국장은 “모임에서 신앙이나 사회 이슈에 대해 의견을 공유하고 우리 활동 방향에 대해 자연스럽게 토의한다”고 설명했다. 

상근자들은 개별적으로 2∼3개씩 각각 다른 교계 소모임 등에 참여해 여론을 청취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고 있다. 

청년 사역 전문가들은 기독교 단체의 구성원 역량 강화와 안정적 재원 확보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헌신페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다. 

공익경영컨설턴트 황병구 한빛누리 본부장은 “개인의 성장을 통해 조직의 역량이 강화되면 조직의 소명 성취도 그만큼 앞당겨진다”며 “기독교 단체들이 간사들을 소중히 여기고 이들을 훈련시키고 리더로 세우는 데 힘써야 한다”고 역설했다. 

교회가 직접 간사를 후원함으로써 낮은 급여를 보조할 수도 있다. 

경기도 수원 수원성교회는 2009년부터 기독교시민운동가를 ‘사회선교사’라는 이름으로 후원하고 있다. 성경적 토지 정의를 위해 활동하는 ‘희년함께’, 다문화가정 사역 단체 ‘아우름’, 계간 통일코리아를 발행하는 유코리아뉴스 소속 활동가 등 5명에게 매월 45만∼60만원을 지원한다. 

한국교회에서 사회선교사는 아직 생소하다. 

안광수 수원성교회 목사는 “교회가 사회 문제를 직접 이슈화하거나 소외된 사람을 돕는 데는 역부족이다. 그런 귀한 일을 하는 분들이 잘할 수 있도록 협력하는 게 교회의 여러 사명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아직 개교회가 사회선교사를 파송하는 사례는 별로 없는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청년들에게 헌신의 의무만 주고 결정의 권한을 주지 않는 전반적 분위기도 헌신페이에 일조한다는 의견이다. 

오수경 청어람매거진 에디터는 “청년들을 교회 여러 봉사에 동원하고, 정작 주요한 의사결정이나 보직에서는 배제하고 있다. 

교회 청년이 성가대원, 주일학교 교사, 주보 편집자 역할까지 여러 개 맡는 걸 교회에서 당연히 여기는 분위기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국민일보 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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