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JPG





유럽을 여행하면서 흔히 듣는 말이 ‘고딕양식’이란 말이다. 과장되게 말하면 유럽여행은 사실 예배당 순례라고 할 수 있다.


그것 빼면 별로 볼 것도 없다. 그 예배당 가운데 사과를 반쪽으로 짤라 지붕에 올린 것처럼 돔으로 만들어진 예배당과 마치 체스판을 연상시킬 정도로 뾰족한 첨탑 수십 개를 지붕에 올린 예배당으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지붕에 돔을 올려놓은 르네상스 양식의 대표적 성당은 로마의 베드로 성당이다. 그 둥근 예배당 뚜껑은 미켈란젤로 작품이다.


런던에 있는 세계 3대 성당 가운데 하나인 세인트 폴 성당은 돔이 있긴 해도 그건 바로크 양식이라고 한다. 피렌체에 있는 두오모 성당도 엄청 큰 빨간색 돔이 있으니 르네상스 양식인줄 알았는데 그건 또 고딕양식이라고 한다. 이쯤 되면 골치가 아파진다.


건축양식 따질 때가 아니다.


난 지금 화재가 난 노트르담 성당 얘기를 하려는 참이다.


뾰족한 첨탑들이 지붕에서 숲을 이룬 것 같은 대표적인 유럽의 고딕성당들을 떠올려 보자. 독일의 퀼른 성당, 프라하의 비투스 성당,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사원, 이탈리아 밀라노 대성당 등이 있다. 이들 고딕양식 예배당의 할아버지 뻘이 바로 노트르담 성당이다.


그 고딕양식 예배당은 뾰족한 첨탑 말고도 또 하나의 공통된 특징 하나를 갖고 있다. 어둠 컴컴한 성당 안을 햇빛을 받아 고요하고 거룩하게 비춰주는 원형의 창, 그걸 ‘장미의 창(Rose Window)’이라 부른다.


전기가 없던 시대 이 창은 특수조명장치인 셈이었다. 장미꽃처럼 보이는 스테인드글래스이지만 성모 마리아와 예수님을 중심으로 대개 구약의 선지자들이나 신약시대 사도들의 모습이 활짝 펼쳐진 꽃잎 모양 속에 정교하게 디자인이 되어 있다.  


보통 AD 400~1400여년까지를 일컫는 비잔틴 시대의 대표적 예배당은 이스탄불에 있는 소피아 대성당이다.
이 성당안의 모든 벽화들은 프레스코화로 그려져 있다.


소피아 성당을 점령한 무슬림들이 벽화위에 하얀 회칠을 해 놓는 바람에 위대한 성화들은 지금 모두 벽속에 숨어 있다. 예배당에서 비잔틴 시대의 프레스코화가 사라지고 고딕양식의 예배당이 도입되면서 벽에 등장한 것이 바로 장미의 창이다.


예배당에 들어가서 이 장미의 창이 보이면 일단 고딕양식이라고 보면 된다.
네모가 아니라 창문을 왜 둥글게 만들었을까?


이 창을 일명 ‘카타리나의 창’이라고 부르는데서 유래를 찾을 수 있다. 기독교 성녀가운데는 카타리나(영어로는 캐서린)란 이름을 가진 성녀가 여럿 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성인이 알렉산드리아의 카타리나다. 카타리나는 순교를 당한 후 시내산에 묻혔다고 전해진다.


그녀의 무덤위에 세워진 수도원이 그 유명한 시내산의 성 카타리나 수도원이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신약사본인 ‘시내사본’이 이곳에 보존되어 있다.


15세기 영불 전쟁에서 조국을 위기에서 구해된 프랑스 구국영웅 잔 다르크가 13살이 되었을 때 환상가운데 나타나서 “프랑스를 구하라”고 말해준 이가 바로 성 카타리나였다.


카타리나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상류 가정 출신의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다.


기독교를 박해하는 막센티우스 황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요즘 말로 그는 ‘전도왕’이었다. 그에게 걸렸다하면 귀족, 노예를 가리지 않고 예수를 믿게 되었다.


소문을 들은 황제는 왕비를 시켜주겠다고 얼르기도 하고 50여명의 철학자와 웅변가들을 그에게 보내 개종하라고 타이르기도 했지만 막무가내였다. 그녀를 설득하러간 당대의 철학자들이 조목조목 반박하는 카타리나에게 넘어가 예수 믿겠다고 나오니까 열 받은 막센티우스가 마침내 그녀를 감옥에 가뒀다. 그러자 예수님이 발현해 비둘기들을 시켜 그에게 음식을 날라다 주었다고 한다.


마침내 황제는 대못이 박힌 둥근 바퀴에 그를 매달아 처절하게 죽이는 형벌을 명령했지만 둥근 바퀴를 붙잡고 카타리나가 기도하는 순간 못 박힌 바퀴가 갑자기 부서지면서 파편들이 날아와 군사들 수십 명이 즉사했다. 어쩔 수 없이 그녀의 목을 자르는 수밖에 없었다. 참수형이었다. 그 순교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200여명의 구경꾼들이 예수교로 개종했다고 한다. 그리고 참수를 당한 카타리나의 머리에서는 피가 흐르지 않고 우유가 흘러내렸다고 한다.


‘전설 따라 삼천리’가 아니라 기적이었다.


기독교 역사상 가장 영웅적인 순교사건 중 하나로 전래되고 있는 성 카타리나의 둥근 형틀. 그것이 바로 장미의 창의 원형이 되었다고 한다. 카타리나를 소재로 한 성화에는 한결같이 둥근 바퀴가 등장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카타리나의 순교에서 유래되었다는 장미의 창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바로 노트르담에 있는 장미의 창이다.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카타리나 성녀의 정절의 불꽃이 느껴지는 장미의 창은 이 성당의 아이콘이자 방문객들이 줄을 서서 사진을 찍는 포토존이 되었다.
그런데 이번 화재에서 불행 중 다행으로 그 창은 소실되지 않고 원형을 보존하게 되었다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그러나 화재 복구기간이 적어도 10년에서 40년은 걸린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으니 내 생애에 노트르담 장미의 창을 다시 볼 수는 있을까?


좌우지간 이번 일로 세계의 유명한 예배당들이 불조심 긴급조치에 들어갔다고 한다.
한인교회들도 예외는 아니다. 꺼진 불도 다시 보며 불조심하자.


<크리스찬 위클리 발행인>

기획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