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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신앙과 양심에 따라 살려는 사람 닮아가야
친구 위해 기도하고 선한 영향력 행사하길



Q: 함께 교회 다니는 고등학교 동창이 있는데, 말이나 행동이 거칩니다.
그리고 해선 안 될 일도 제멋대로 합니다.


그러지 말라고 타이르면 “나보다 더 나쁜 사람이 많다”거나 “교회도 별 것 아니다” “누가 아느냐”라며 화를 냅니다.



A: 사람의 행동은 타고난 성품이나 성장 배경 등에 의해 결정됩니다.


언행이 거친 사람은 그럴 만한 성장 과정과 배경이 있기 때문입니다.


정신의학자들은 말과 행동이 돌발적으로 격하게 표현되는 감정을 분노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분노나 충동을 조절하지 못하는 것을 분노조절장애라고 합니다.


정신적으로 신앙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자기조절과 통제가 가능해야 합니다.


‘멋대로 산다’ ‘다른 사람은 상관없다’ ‘나보다 더 나쁜 짓 하는 사람이 많다’ ‘간섭 마라’ 등 이런 말은 자아통제 기능을 포기한 사람들의 언어입니다.


언행이 거친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공동체의 분위기를 깨트립니다.


자신의 언행을 정당화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자기화하는 행위를 거듭합니다.


교회 안에도 더 나쁜 짓하는 사람이 많다며 자기행위를 정당화하기에 급급합니다.
중국 역사책 후한서에 양진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양진은 높은 벼슬자리에 있었습니다.


어느 날 부정청탁을 위해 찾아온 사람이 양진에게 금화를 건넸습니다.


“이게 무슨 짓인가.” “누가 압니까. 거둬두시지요.” “네 이놈!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네가 알고 내가 알거늘 아무도 모른다니. 여봐라! 이놈을 당장 내쫓도록 하라.”


이 일은 ‘양진의 사지(四知)’라는 말로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귀담아야 할 이야기입니다.


맞습니다.


하나님이 아시고 그가 알고 내가 압니다.


성문화된 법이 있고 양심의 법이 있습니다.


성문법은 속일 수 있겠지만 양심의 법은 속이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눈과 법은 속이지도 감추지도 못합니다.


크리스천의 삶은 어느 정황에 있든지 정도를 지켜야 합니다.
어느 쪽을 보느냐, 이것도 중요합니다.


누구를 보느냐 그리고 무엇을 보고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가치와 삶의 질이 결정됩니다. 긍정적인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바르게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바라보고 신앙과 양심을 따라 살기 위해 진력하는 사람들을 닮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남은 자 7000명처럼(왕상 19:18) 도처에 자리 잡고 있으니까요.
예수님 제자 가운데 베드로도 있었고 가룟 유다도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려면 베드로를, 배교자가 되려면 가룟 유다를 보면 됩니다.
그런 친구에게 세뇌당하지 마십시오.


부정적이고 반신앙적 사조나 행위들 때문에 상처받지 마십시오. 자신을 지키십시오.
그 친구를 위해 기도하고 선한 영향력을 전하십시오.


정당한 가치와 윤리, 신앙의 자리를 굳게 지키십시오.
아는 사람과 친구를 구별하십시오.


아는 사람은 다수이고 친구는 소수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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