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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관악구에 있는 난곡동은 서울 달동네의 대명사였다.


1970년대 난곡하면 빈민촌이란 걸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서울역, 용산, 대방동지역이 재개발되면서 삶의 터전을 잃은 일일노동자들이 이곳에 몰렸다. 처음엔 천막촌이었다가 점점 판자촌으로 변했다.


집이라곤 하지만 지금으로 따지면 노숙자 쉘터 수준이었다.


자기네 단독 화장실이 없어서 대개 공중화장실을 이용하는 처지였다.


이 난곡에 사는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위로하기 위해 교회 하나가 세워졌다.


유신교회였다.


유신정권이란 말에서 나오는 유신이란 말하고는 근본이 다른 말이다. 전도사가 어린 학생 15명과 함께 개척한 교회였다.


지금은 큰믿음유신교회로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나의 어린 시절 주일학교 선생님이 그 교회에 나가고 있었다.


신학생이 된 나는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 여러번 이 교회를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 교회 탄생스토리를 잘 아는 편이다.


벌써 50여 년 전의 일이다.


그런데 지난주 ‘당당뉴스’의 보도를 보니 그 교회가 창립 50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창립감사 행사를 가졌다고 한다.


교회당의 사진을 보니 입이 쩍 벌어졌다.


가마니를 깔고 앉아 예배를 드리던 그 교회당이 지금은 4-5층 짜리 대형 건물로 변해 있었다.
교회에 오케스트라까지 있는 것을 보니 큰 교회로 성장한 게 분명했다.


특별히 내 눈길을 끄는 게 있었다.


전도사 시절에 그 교회를 개척한 창립목사의 아들을 50주년 감사예배 설교자로 초청했다는 것이다.


창립목사는 그 교회를 개척한 후 얼마 있다 미국에 이민 와서 이민교회 목회자가 되었고 그때 아버지를 따라 4살 때 미국에 들어온 아들이 나중에 목사가 되어 지금은 미국에서 목회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유신교회는 그 창립교회 목사의 젊은 아들 목사님을 잊지 않고 50주년 행사에 초대한 것이다.


가난하고 소외된 난곡의 판자촌 사람들을 품어가며 50년 동안 아름다운 교회로 성장한 이 교회의 양심과 품격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담임 목사로 있다가 교회를 떠나면 금방 남남으로 돌아서는 오늘날의 이민교회 풍토와는 얼마나 크게 비교가 되는가?


또 다른 예도 있다.


서울 불광동에서 교회를 개척하여 크게 성장시킨 후 지금은 LA 노인아파트에 살고 계시는 원로 목사님이 있다.


그 교회는 은퇴하고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원로목사님에게 매달 정해진 사례비를 보내오고 있다고 한다.


“이젠 됐으니 그만 해도 된다”고 원로목사님이 말해도 못들은 척 하고 돈을 보내온다는 것이다.
지금은 사모님이 돌아가셔서 독거노인이 된 원로목사님을 위로하기 위해 가끔은 교회 장로님들이 위문사절단을 짜서 미국 노인아파트까지 찾아오곤 한다고 들었다.


이게 원로목사님의 노욕으로 보이는가?


아니면 사랑공동체가 보여주는 미덕으로 보이는가?


대형교회 세습논란이나 성폭행 혐의 등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목사님들이 얼굴에 철판깔고 용감하게 목회하고 있다고 비판을 받고 있지만 이 세상 목사님들이 다 그런가?


특히 미주지역 한인교회들은 원로목사나 은퇴목사 보기를 개가 닭 보듯 하기가 일쑤다.


원로 목사님이 독거노인이 되었다고 장로들이 위문단을 끌고 찾아온다고? 미주교계에선 상상할 수 도 없는 일이다.


원로목사님도 그렇지만 담임목사에게도 마찬가지다.


담임목사에게 광적으로 가까워지려는 성도들이 더러 있기는 하지만 대개 교회에서 무슨 이문을 챙겨보려는 장사 속으로 그러는 경우 말고는 역시 개가 닭 보기는 마찬가지다.


내가 헌금해서 월급 주는 고용인으로 착각하고 상전노릇하려는 교인들도 있다.


그러니까 담임목사는 을이고 나는 갑이라고 생각하는 ‘갑질 평신도’들이 우글대는 한인교회는 평화와 사랑 공동체가 아니고 권리만 찾으려는 ‘권리 공동체’, 툭하면 싸움을 걸어 교회의 풍비박산을 즐기는 ‘시비공동체’가 되어 가고 있다.


리차드 백스터의 말대로 ‘목회자의 행동 하나가 그리스도의 명예를 좌우한다’는 말은 맞은 말이다.


그래서 목회자는 늘 자기 성찰을 하고 목회를 위하여 특별한 은혜를 하나님께 구한다.


목회가 좀 된다고 해서 목에 힘주다가 쫄딱 망하는 목사들이 더러 있지만 소수에 불과하다.


미국이란 특수한 환경에서 이민교회 목사님들은 참으로 힘겹게 목회하고 있다. 목회가 안 되면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목사님들의 박탈감, 교회 월급으로 생활이 안될 때 속이 타는 목사님들의 절망감, 늘 섬기고 희생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한없이 추락하는 목사님들의 자존감을 헤아려 본 적이 있는가?


교회마다 자신은 ‘개판 오분전’으로 살아가면서 유독 목사에게만 정의와 사랑과 헌신의 잣대를 들이대며 꼬장꼬장 목사들을 돌아버리게 만드는 ‘목사킬러’들이 존재한다.


예수님의 심장을 갖고 사는 성도들이라면 그런 이들의 막무가내 목사 헐뜯기를 막아서야 한다.


미국에선 10월 둘째주일을 매년 ‘목회자 감사의 날’로 지킨다. 금년부터 세계한인기독언론협회가 이에 동의하고 캠페인을 벌이기로 했다.


겉으로는 멀쩡해도 속이 검정 숯처럼 타고 있을지도 모를 우리 목사님에게 가슴 깊이 속마음을 퍼내어 말을 건네 드리자.


“목사님, 고맙습니다.  그리고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부작용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나마 우리 이민사회가 목사님들 때문에 이만큼 돌아가고 있다는 걸 알아차려야 한다. 


<크리스찬 위클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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