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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서 가장 사랑받는 디즈니 만화영화는 ''라이언 킹''으로 조사되었다.
이 영화가 히트를 친 때가 언제인가? 1994년에 개봉되었으니 벌써 20여 년 전에 나온 영화다.
그래도 여전히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영화라니 혹시 만화영화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던지 또는 만화영화의 고전이라 불려도 될 것 같다.
지난주 ''케이블티비닷컴''이 ''구글 트렌드''를 이용해 미국 50개 주별 디즈니 클래식 애니메이션 선호도를 분석해 보니 ''라이언 킹''은 일리노이·인디애나·미시간·위스콘신·아이오와·콜로라도·캔자스·오하이오 등 무려 16개 주에서 최고의 디즈니 만화영화로 손꼽혔다.
그런데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알라딘'', 웨스트 버지니아 주는 ''백설공주'', 아이오와 주는 ''잠자는 숲 속의 공주'', 아칸소 주는 ''포카혼타스'', 와이오밍 주는 ''헤라클레스''를 최고로 뽑았다.
우리 입장에선 뭐 만화영화가지고 그러거나 말거나 지나칠 일이지만 그래도 라이언 킹이란 영화가 아직도 많은 미국인들에게 그 정도의 사랑을 받고 있다니 좀 특이한 일이긴 하다.
나도 라이언 킹을 본지가 엄청 오래되었지만 가끔 리모콘을 가지고 여기 저기 TV채널을 돌릴 때 그 영화가 눈에 띄면 채널을 고정하여 영화줄거리에 빨려들곤 한다.
권선징악을 주제로 한 뻔한 영화지만 어른들에게 주는 큰 가르침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사자 왕 무파사가 다스리는 사자들의 왕국 이름은 프라이드랜드.
이 나라엔 ‘프라이드 락’이란 높은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에서 무파사의 아들인 후계자 심바왕자의 탄생을 알리는 거창한 모습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무파사가 다스릴 때 프라이드랜드는 평화와 번영이었다.
그런데 무파사의 왕권을 탐내는 동생 ‘스카’가 문제였다.
무파사의 후계자 어린 심바를 몰아내고 형을 죽이는데 성공하고 그는 마침내 왕권을 차지한다.
구테타였다.
세종의 둘째아들 수양대군이 형 문종의 아들 단종을 물리치고 왕위에 오른 것과 같다.
그 수양대군이 후에 세조가 된 것이다.
그러니까 스카는 조카 심바를 물리치고 왕위를 꿰찬 라이언 킹 왕국의 수양대군인 셈이다.
세조는 그래도 많은 치적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소설가 김동인은 ‘대수양’에서 그를 엄청난 성인군자로 묘사하고 있지만 같은 소설가 이광수는 ‘단종애사’에서 세조를 아주 악한 사람으로 그려냈다.
그런데 프라이드랜드의 세조대왕 스카는 치적은커녕 흥하던 왕국을 망조에 빠트렸다.
스카는 간사한 하이에나들을 끌어 들여 왕국을 다스려 봤지만 왕으로서는 함량부족이었다.
풀과 나뭇잎이 사라지면서 아름답던 초원은 시들어버렸고 땅은 갈라지고 굶어죽은 동물들의 뼈가 왕국에 널브러지기 시작했다.
나라는 금방 황폐화되었다.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목격한 어린 왕세자 심바는 삼촌의 눈을 피해 행방을 감췄다.
그 심바를 발견하고 친구가 되어준 고마운 은인이 바로 고양이 티몬과 흑돼지 품바였다.
낙천적인 이들 티몬과 품바는 불안하고 실의에 빠진 심바를 구원해 주었다.
그러면서 심바에게 불러준 노래가 바로 ‘하쿠나 마타타(Hakuna Matata)’.
“걱정하지 마, 모든 게 잘 될 꺼야”라는 노래였다.
그냥 건성으로 영화감독이 지어낸 말이 아니고 실제로 이 말은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에 널리 퍼져 있는 스와힐리어라고 한다.
“하쿠나~ 마타타~” 이 노래를 부르는 티몬과 품바 때문에 충격과 배반의 상처를 잊고 건장한 청년으로 성장한 심바는 마침내 프라이드랜드로 귀환하여 배신 때린 삼촌을 물리치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라이언 킹으로 즉위 한다는 해피엔딩 스토리.
이 하쿠나 마타타는 사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속에서도 간절하게 필요한 희망과 위로의 노래다.
우리 주변에 넘어져서 울고 있는 심바는 없을까?
사는 일이 하도 어려워 절망하고 신음중에 있는 심바가 수도 없이 많을 테지만 일상 속에 매몰되어 그냥 나만 바라보고 달려가는 길에 심바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
얼마 전 레익타호에서 며칠을 머물다 내려왔다.
그쪽 아침 뉴스의 머리기사는 북가주 8개 카운티를 덮고 있는 대형산불이다.
TV를 통해 매일아침 잿더미가 된 집 앞에서 망연자실 말을 잊은 채 그냥 흐느끼는 이웃들의 절망을 무엇으로 위로할까?
트럼프 행정부의 무관용 이민정책으로 부모와 생이별하는 어린아이들의 울음소리, 붙잡혀 추방될까 두려워 숨죽이고 살아가는 서류미비자들의 낙심소리가 넘쳐나고 있다.
얼마나 더 죽어야 관가에서 총기규제하자고 나설지 모르지만 우리들의 기대는 점점 절망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 사이 어이없는 총질로 무수한 사람들이 그냥 비명횡사하고 있다.
희망보다는 자꾸 절망의 한숨이 깊어지는 이 나라는 마치 스카가 다스리는 황폐한 프라이드랜드를 연상시킨다.
그래서 위로와 희망의 노래는 더 갈급하게 느껴진다.
따지고 보면 불안과 절망이 어디 거기 뿐이랴! 매일 희망과 절망의 교차로를 오가며 뭔가 될 것 같다는 생각에 희망의 무지개를 잡았다 싶었지만 금방 절망의 먹구름이 덮쳐와 포기하고 넘어지는 심약한 나에게도 사실은 그 노래가 필요하다. 하쿠나 마타타. . .
내 주변의 심바는 누구인가?
심바에게 위로의 노래를 불러주자.
그러기 위하여 나부터 일어나자. 프라이드 락에 올라서 희망의 노래를 부르자!
“하쿠나 마타타~~ 걱정 하지 마, 모든 게 잘 될 거야”
<크리스찬 위클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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