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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이 ‘사형절대 반대’를 들고 나왔다.


교황청은 지난 2일 성명을 내고 캐톨릭교회 핵심 가르침을 담은 '교리문답서(Catechism)'에 어떤 경우의 사형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내용을 명시했다고 밝혔다.


로마 캐톨릭 교회 수장인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명에서 "사형제는 인간의 신성과 존엄에 대한 공격이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캐톨릭교회는 전 세계 국가들이 사형제를 폐지하도록 노력해 왔다고 덧붙였다.


언론들은 미국 등 많은 나라에서 상당수 캐톨릭 신자들이 사형제를 지지하고 있다면서, 교황청의 이번 결정이 이들의 반대에 직면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캐톨릭교회가 아니라 당장 미국의 침례교에서 교황의 이같은 발언에 “저요!”라고 손들며 반대의견을 들고 나왔다.


남침례교 총회 윤리 및 종교자유위원회 러셀 무어 회장이 인간생명의 가치를 존중하는 교황의 의도는 이해할 수 있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사형은 용납될 수 없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나온 것이다.


교황이 사형반대를 들고 나오니 미국 복음주의는 “아니, 그건 아닌데. . ”라고 가로막고 나선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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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이란 영어로는 캐피탈 퍼니시먼트(Capital punishment)인데 캐피탈은 보통 수도를 나타내는 말로 ‘머리의’란 뜻이 있다.


직역하면 참수형이란 말이지만 오늘날엔 목숨을 끊는 모든 종류의 형벌을 그렇게 부른다.
예수님은 캐피탈 퍼니시먼트로 지상의 삶을 마감하셨다.


방법은 로마시대 사형방법인 십자가형.


로마제국이 악랄했던 것은 이 십자가 형을 봐도 알 수 있다.


AD 70년 타이터스 장군에 의해 유대독립운동이 진압될 때 매일 500여명의 유대인들이 십자가에서 처형되었다고 한다.


십자가를 세울 자리가 없고 십자가로 쓸 나무가 부족할 정도였다고 한다.


예수님은 그 끔찍한 십자가에 매달려 사형을 당하셨다.


이조시대 장희빈은 사약을 받고 사형에 처해졌고 프랑스의 루이 16세와 마리 앙트와네트는 목이 잘리는 참수형, 교황청과 결별하며까지 사랑을 바쳤던 영국 헨리 8세의 왕비 앤 불린도 변심한 남편에 의해 런던타워에서 목이 잘려 사형에 처해졌다.


제인 그레이, 찰스 1세도 사형으로, 최근엔 사담 후세인도 사형으로 세상을 떠났다.


현재까지 법정 최고형으로 사형을 인정하는 국가는 74개국이고 사형제를 폐지하고 있는 나라는 이보다 훨씬 많은 130여 개 국에 이른다.


그런데 사형제도가 폐지된 나라가 인구가 더 많을 것 같은데 사실은 그 반대다.


인구가 많은 나라일수록 사형제도가 시퍼렇게 살아있다.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 10개국인 미국, 중국, 러시아, 인도, 인도네시아, 브라질, 파키스탄, 나이지리아, 방글라데시, 일본 가운데는 러시아와 브라질을 빼고 모두 사형제가 존재하고 있는 나라들이다.


미국에서도 사형제를 비판하거나 문제시하는 ‘데드맨 워킹’이나 ‘그린 마일’같은 영화가 제작되어 관심을 끌기는 했으나 사형제 폐지로 까지는 끌고 가지 못했다.


이처럼 나라마다 사형제는 찬반으로 나뉘어 논란의 대상이지만 신학계와 교계에서도 그같은 찬반대립은 마찬가지다.


한국에선 좀 열려 있는 신학을 했다하는 사람들은 입에 거품을 물고 사형제를 반대한다.


‘오직 성경’을 외치며 성경과 전통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사형제 찬성 쪽이 대부분이다.


정치에 줄을 대거나 그쪽에 기웃대는 진보신학자라는 사람들은 한국 인권이 사형제 때문에 무참하게 학살당했다며 덮어놓고 사형제 반대다.


보수 쪽에선 ‘징벌이 없는 곳에 은혜도 없다’는 논리다.


그러니까 사형제를 폐기하는 것은 ‘반드시 죽어야할 죄’에 대해 ‘반드시 죽으리라’고 선언하신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거역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루터와 쯔빙글리, 칼빈과 같은 종교개혁자들은 사형제도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을까?


교회사가들에 의하면 이들 개혁자들은 공권력의 권위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고  보았고 사형제도에 대해서도 문제의식을 갖지 않았거나 제도의 존폐에 관심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답답한 것은 성경엔 직접적으로 “하나님은 사형제도를 좋아하신다” 혹은 “하나님은 사형을 반대하신다”는 구절은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다만 일관성 있게 공정한 재판, 죄에 대한 상응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을 요구하고 계신다.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지음 받은 존엄하고 존귀한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은 동전의 양면이다.


공의의 하나님이고 뭐고 무대뽀 사랑으로 뭉개기만 할 경우 사랑의 가면 뒤에 숨어 악질천하가 될 이 세상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사형은 어떤 경우에도 폐지되어야 마땅하다는 교황의 획일적인 주장에 “정말 그게 맞는 말씀?”이라고 이의를 제기하고 나선 러셀 무어에게 나는 찬성표를 던진다.
그럼 난 사형찬성론자인가?


<크리스찬 위클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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