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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에서 생겨나는 신종 비즈니스 가운데 하나가 ‘디지털 장의사’라고 한다.


뭐요? 디지털 장의사?


장의사는 알겠는데 디지털 장의사란 말은 처음 듣겠네. .


미국에서 코 박고 이민생활에 열중하고 사는 우리네에게 좀 생소한 말이라서 대부분은 그런 반응을 보일 듯하다.


그런데 느껴지는 게 있긴 하다.


인터넷상에서 떠돌아다니는 자신에 관련된 부정적인 기록들을 완전 삭제시키는 일을 대행해 준다는 의미의 디지털 장의사...


그럴 듯한 비즈니스란 생각이 든다.


서울에선 결혼하기 전 디지털 장의사부터 찾는다는 말도 있고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철없던 시절 옛 애인과 온라인으로 주고받은 흔적들이나 SNS를 통해 올려놓은 쌍욕들이 평생 그 사람을 붙어 다닌다고 생각해 보자.


잘못하다간 한방에 인생이 날라 가 버릴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주홍글씨’가 될 수 있다.


취업을 준비하던 한 젊은이가 3년 동안 정부를 비판하는 수백 건의 댓글을 포털사이트에 올렸다가 공무원 취직시험을 보러다닐 때 쯤 덜컥 겁이 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인터넷에 올린 모든 댓글을 지우기 위해 찾아 가는 곳이 바로 디지털 장의사.


디지털 장의사를 여는 사람들은 우리가 생활 쓰레기를 버리듯 인터넷상의 쓰레기도 쌓아두지 말고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아주 즐거운 상황에서 온라인에 기록을 남기더라도 상황이 변하면 언제든 불편한 게시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댓글 공작 어쩌구 해서 감방에도 끌려가고 지금도 무슨 댓글과 관련된 인터넷 범죄 때문에 특검이 조직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면 도대체 그런 댓글을 달고 살만한 한가한 시간이 어디 있어요?


당장 튀어나가는 질문이 그것이다.


한국에 백수가 넘쳐난다고 해도 그렇다.
할 일 없이 인터넷이나 끼고 사는 인구가 많다고 쳐도 그렇다.


정권을 무너트리는 도구로 사용되거나 깜도 안되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공작차원에서 벌이는 노동치는 댓글이 아니라면 누가 그 댓글에 정신을 팔고 살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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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현실은 댓글에 죽고 살고 SNS가 생활의 구세주인 사람들의 숫자가 상상을 초월하는 모양이다.


컴퓨터 모니터와 마주 앉은 시간이 은밀하고 비밀스럽다 할지라도 내 살아가는 모습과 생각을 시시콜콜 그곳에 흔적으로 남길 경우 키보드의 엔터 단추를 눌러버리는 순간 내 모습은 사이버 공간에 국경 없이 발사되고 그때부터 나는 우주에 떠도는 ‘벌거숭이 임금님’이 되는 것이다.


보는 눈이 없다고 너무 쉽고 추하게 타락하는 현대인의 음습한 범죄의 온상 인터넷 공간. .


인터넷을 등지고 살수도 없는 세상이 되었지만 인터넷을 주군으로 모시는 노예처럼 전락해서도 안 될 일이다.


그러다 어느 날 디지털 장의사를 찾아가야 하는 신세가 된다.


이달 한국 충청도에 봉쇄수도원을 개원한다는 강문호 목사님이 수도원 개원을 앞두고 ‘당당뉴스’에 쓴 글을 읽다보니 그 분이 이런 말을 했다.


“수도 영성 중에 중요한 영성은 침묵입니다.
침묵도 훈련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말을 배우는 데는 3년입니다.

그러나 침묵을 배우려면 50년이 걸립니다. 침묵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침묵 훈련을 할 수 있습니다. 아무 말이나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6시간 동안 십자가에 못 박혀 계시면서 겨우 짧은 6마디 말하시고 나머지 시간은 침묵이었습니다. 6마디 다 합하여도 1분 정도입니다. 5시간 59분은 침묵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이 말을 덧붙였다. “하나님의 노크 소리는 조용할 때 더 크게 들리는 법입니다.”


수십 개의 안테나를 세워놓고 이거저것 참견하며 시끄럽게 살지 말고 조용히 주님 앞에 엎드려 침묵의 영성을 가꿔나가면 어떨까?


말을 절제하는 침묵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디지털 침묵’도 훈련할 때가 되었다.


그러다보면 디지털 장의사 찾아 다니며 돈 쓸 일도 없어진다.


이 세상과 좌충우돌 욕설과 험담과 정죄를 일삼던 추한 모습이 꼬리표처럼 나를 따라붙어 인터넷상에 떠돌게 될 때 그때 불이 나게 디지털 장의사를 찾아다니는 부끄러운 속물이 바로 내 모습이 아닌지를 되돌아보며 인터넷 앞에서도 때로는 침묵모드를 셋업해 보자.


예수님이 마르다에게 “네가 너무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한다”고 말씀하시고 “몇 가지 혹은 한가지만이라도 족하다”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자.


우리는 너무 분주한 나머지 아주 중요한 한가지를 잊고 사는 마르다는 아닌가?


<크리스찬 위클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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