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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 월드컵은 프랑스가 차지했다.


새벽잠을 설치게 하더니 결국은 프랑스가 이겼다.


호날두나 메시, 수아레스나 네이마르같은 수퍼스타들이 일찌감치 보따리를 싸서 볼거리도 약화되고 남미축구마저 굴복하는 바람에 유럽축구끼리 잘 먹고 잘 살아보라고 무관심 쪽으로 흘렀지만 이번 월드컵의 최후승자는 프랑스였다.


2015년 동시연쇄테러사건으로 130여명이나 사망한 ‘파리테러’의 악몽에서 벗어나라며 세계인들이 건네주는 위로의 트로피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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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광화문’이라 할 수 있는 개선문에서 콩코드 광장에 이르는 상젤리제 거리에서는 선수들이 귀국한 날 대대적인 퍼레이드가 벌어졌고 더불어 물결처럼 파리를 뒤덮은 것이 바로 삼색기였다.


삼색기?


프랑스 국기를 두고 하는 말이다.


프랑스어로는 라 트리콜로르(La Tricolore).


프랑스 국기의 삼색은 파랑, 하양, 빨간색인데 파랑은 자유, 하양은 평등, 빨강은 박애를 상징한다고 한다.


사실은 부르봉 왕조의 상징인 백합의 흰색, 프랑스 혁명당시 시민군의 상징인 파란색과 붉은색이 합쳐진 것이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가면 가이드가 꼭 끌고 가는 그림 세편 중에 ‘루브르의 안방마님’ 모나리자와 유럽에서 제일 큰 그림이라는 나폴레옹의 ‘황제 대관식’과 함께 들라크루아가 그린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Liberty Leading the People)’이란 그림이 있다.


웃통을 벗어 앞가슴이 들어난 여신이 삼색기를 들고 혁명군을 이끌고 가는 모습이다.


그림의 배경은 프랑스 혁명. 혁명하면 영국을 떠올리지만 프랑스도 만만치 않다.


스페인과 프랑스 일대를 두루 통치하던 부르봉 왕조에 맞서 민초들이 들고 일어나는 수많은 혁명가운데 가장 대표급 혁명이 바로 1789년에 일어난 프랑스 대혁명이었다.


위에 들라크루아의 그림이 프랑스 대혁명을 상징하는 그림으로 일반적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사실은 그보다 몇 년 후에 일어난 7월 혁명을 배경으로 한 그림이다.


프랑스 대혁명은 1789년 7월 14일 그 유명한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한 사건으로 시작되어 무려 10여년에 걸쳐 진행되었다.


그래서 7월 14일은 바스틸 데이(Bastille Day)라고 부르는 프랑스의 혁명기념일이다. 미국 독립기념일과 10일 차이다. 그러나 프랑스 대혁명하면 보통 1789년에 일어난 혁명을 두고 말한다.   


이 프랑스 대혁명으로 인하여 절대왕정으로 상징되던 루이 16세와 부인 마리 앙뜨와네트가 콩코드 광장에서 목이 잘려 참수형을 당했다.


드디어 절대군주가 호령하던 지긋지긋한 왕정이 깨지고 국가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사실을 혁명이란 총천연색 학습자료를 통해 인류를 깨우쳐 준 사건이 바로 프랑스 대혁명이었다.


세계의 여러 나라가 이 사건에 충격을 받고 민주주의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래서 프랑스 혁명으로 상징되는 그 삼색기를 너도 나도 수입(?)해 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냥 파랑, 하양, 빨강색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그 삼색이 뜻하고 있는 가치, 즉 자유, 평등, 박애 때문이었다.


근대적인 국민주권 국가를 열면서 프랑스 혁명의 그 3대 정신이 간절히 필요했고 그 옷을 입고 있는 삼색기도 함께 모방한 것이다.


월드컵에서 두 나라 선수들이 경기장에 나올 때 그 나라의 국기가 먼저 등장하는 걸 보았다.
그런데 다 비슷비슷해서 헷갈리기 십상이다.


그 헷갈리게 하는 주범은 바로 프랑스의 삼색기, 그리고 삼색기의 배경엔 프랑스대혁명이란 위대한 역사의 숨결이 숨어 있다.


아일랜드와 이탈리아가 우선 대표적이다.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나선 아일랜드는 저항의 상징으로 녹색, 흰색, 오렌지색을 이용한 세로 삼색기를 국기로 채택했다.


이탈리아는 초록·하양·빨강으로 된 삼색기가 국기가 되었다.



심지어 이번 월드컵 주최국인 러시아 국기도 가로형 삼색기다.


색깔도 프랑스와 똑같이 하양, 파랑, 빨강이다.


이웃나라 독일도 마찬가지다. 까망, 빨강, 노랑의 가로형 삼색기를 갖고 있다.


프랑스의 식민지로 있다가 독립한 아프리카 대부분의 나라들도 프랑스의 삼색기를 본 따 색깔만 바꿨다.


기니, 말리, 세네갈, 코트디부아르, 카메룬, 차드와 같은 나라들이 모두 세로형 삼색기다.


그러니까 유럽과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에게 널려 있는 삼색기의 종주국은 프랑스요, 그것은 바로 프랑스 대혁명의 슬로건이었던 자유, 평등, 박애의 종주국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혁명으로 인하여 프랑스란 나라는 인류역사에서 큰 어른 대접을 받아도 된다.  


삼색기를 통해 그렇게 전파된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자유, 평등, 박애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아메리카에서 편하게 대접받고 있는가?


이민자의 나라에서 이민자들의 자유가 자꾸 제약을 받고, 부자와 가난한 자들의 경제적 불평등은 이 나라의 만성 골칫거리가 되고 있고 박애?


밀입국자들의 철부지 아이들과 부모를 강제로 격리시겨 가둬두는 나라가 박애를 말할 자격이 있는 나라인가?


월드컵 승리로 파리를 뒤덮은 삼색기를 바라보며 문득 내가 살고 있는 아메리카의 자유, 평등, 박애가 자꾸 구박을 받고 있는 것 같아 심사가 편치 않다. 


<크리스찬 위클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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