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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은 한인골퍼들이 활짝 웃었다.


남자골프 PGA 투어 그린브라이어 클래식 최종라운드에서 케빈 나 선수가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생애 두 번째 우승이라고 한다.


위스컨신에서 열린 손베리 클릭 LPGA 클래식에서는 김세영 선수가 무려 31언더파로 여자골프 대기록을 세우며 챔피언에 올랐다.


한인 여성 골퍼들은 지금 세계의 골프장을 주름잡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금년 월드컵에서 한국축구가 16강행은 좌절되었지만 디펜딩 챔피언 독일을 완파한 것이 월드컵 최대 이변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한국인의 운동실력이 지구촌 여러 곳에서 빛을 내고 있다.
나라 크기에 비해 정말 대단한 대한민국이다. 


그런데 승승장구하던 리디아 고 선수는 금년엔 고전하고 있는 것 같다.
미주 한인골퍼들이 얌전하고 공손하다며 박수갈채를 보내는 전인지 선수도 그렇다.
슬럼프인 것 같다.


더 한 슬럼프도 있다.


대만에 청야니 선수가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LPGA는 ‘청야니 천하’였다.
나가는 대회 마다 챔피언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한국 선수들은 왜 청야니만 보면 작아지는가?’란 비아냥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청야니의 이름조차 찾을 수 없다.
리더보드에는 물론이고 TV에도 모습이 없다.


대회에 나오긴 나오지만 계속 컷 탈락으로 중간에서 보따리를 싸기 때문이다.
슬럼프 때문이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를 보자.


얼마나 잘했으면 ‘황제’가 되었을까?


그런데 그가 여러 가지 사정으로 슬럼프에 빠지더니 지금은 우승후보군에 접근하고는 있으나 아직 챔피언 트로피는 들어 올리지 못하고 있다.


골프 팬들은 그의 영광스러운 귀환을 기다리고 갤러리들이 구름떼처럼 그를 따라 다니지만 아직은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완전히 슬럼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야구에서도 그렇다.


LA 다저스는 에이스 좌완 투수 클레이튼 커쇼를 믿고 살아왔다.


그는 천하가 다 인정하는 지구에서 가장 볼을 잘 던지는 전설적인 투수였다.
그런데 금년에는 그 커쇼의 존재감이 사라졌다.


잘못하다간 다른 선수들에게 제1선발 자리를 내 줘야 할 판이 되었다.
슬럼프인 것 같다.


슬럼프(Slump)란 평소 자신이 하는 일에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저조한 상태가 계속되는 증상을 말한다.


특히 운동선수들에게 자주 찾아드는 병이다.


운동선수들에게만 슬럼프가 있을까?


아닌 것 같다.


보통사람들도 슬럼프에 빠진다. 나 같은 사람도 모든 걸 때려 치고 싶은 때가 있고 막연한 낙심으로 주저앉고 싶을 때가 있다.


해도 안 될 때 그 답답한 마음에 찾아드는 무기력증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그 슬럼프를 극복하고 제2의 전성기를 맞는 사람도 있다

. 프로야구 다저스의 맷 켐프라는 외야수다.


그는 다저스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하여 한때 MVP를 넘보는 유명타자였으나 점점 실력이 부진하여 ‘애물단지’ ‘필요없는 선수’로 전락했다.


샌디에고 파드레스에 팔려가고 애틀란타 브레이브스로 방출되었다가 이번 시즌 다저스로 유턴해 돌아왔다.


그런데 그의 방망이에 불이 붙었다.


단숨에 애물단지가 아니라 가장 귀하신 몸이 되었다.


유일하게 시즌 60타점을 앞두고 있는 타격기계로 변신했다.


이번주 13일부터 워싱턴 DC에서 열리는 올스타전에 내셔날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로 낙점됐다.
슬럼프를 극복하고 화려하게 부활한 것이다.


어떻게 슬럼프를 극복했냐고 물었더니 “죽어라 연습에 몰두했다”고 한다.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영적인 슬럼프가 있다.


예배를 드려도 시큰둥, 성경을 읽어도, 찬양을 불러도 감동이 없다.
“정말 하나님이 살아계시기나 한 거야?”


그런 지경에 까지 이를 때도 있다.


꼭 의심마귀가 찾아든 것도 아닌데 모든 게 헛되고 헛되며 모든 게 구라 투성이로 느껴진다.


이런 영적 슬럼프를 극복하고  필요 없는 애물단지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MVP로 맷 켐프처럼 부활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죽어라 연습에 몰두한다?


구약에서 영적 슬럼프 하면 떠올리는 사람이 엘리야다.


예루살렘에서 나사렛으로 올라가는 오늘날의 갈멜산에 오르면 거기 바알 선지자들을 박살낸 엘리야 선지자의 동상이 서있다.


손에는 칼, 그리고 그의 발밑에는 죽어가는 바알 선지자들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그는 이방신 바알과 아세라 예언자 850여명을 박살낸 용기 있는 선지자요, 장사였다.


그런데 그 장렬한 빅토리와 함께 찾아온 아합의 왕비 이세벨의 살인협박에 그는 비굴한 도망자가 되어 저 멀리 브엘세바까지 도망치고 만다.


로뎀나무 밑에 얼굴을 쳐 박고 죽기를 원했던 엘리야는 전혀 바알신과 맞섰던 갈멜산의 엘리야가 아니었다.


나약하고 용기 없는 ‘필요없는 선수’였다.
슬럼프였다.


그런데 천사를 시켜 로뎀나무 아래 엘리야의 머리맡에 준비해 주신 하나님의 선물은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의 물. 그리고 ‘일어나 먹으라’고 말씀하셨다.


갈멜산의 영웅 엘리야가 로뎀나무 아래의 ‘쪼다’ 엘리야로 하루아침에 곤두박질하는 영적 슬럼프, 그 고독하고 무기력한 터널을 벗어나는데도 결국은 하나님의 불에 구운 떡과 물 한병의 은혜,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한 게 아닌가?


<크리스찬 위클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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