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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길 CBS 사장



이뿐만이 아니었다.


교회에 내 사정을 얘기하여 장학금을 받도록 길을 열어 주었다.


종교교회 안에 장학위원회가 만들어졌고, 나를 포함해 어려운 형편에 있는 학생들에게 지속적으로 장학금을 지급해 주어 나는 교회 장학금과 학교에서 주는 장학금으로 중고등학교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실로 박기서 선생님의 사랑이 없었으면 나는 참으로 황량한 유년기를 보냈을 것이다.


이후 선생님은 뒤늦게 교회를 개척하면서 종교교회를 떠났고, 18년이란 세월이 흐르도록 선생님과의 인연은 더 닿지 않을 듯 했다.


그렇게 헤어진 후 아주 오랜만에 선생님으로부터 불현듯 전화가 왔고, 목사님이 된 선생님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긴 시간이 흐른 만큼 이제 나는 어렸을 적 가난하고 어리기만 한 한용길이 아니었다.


어릴 적 가난하고 힘들게 살던 모습을 기억하는 목사님에게 나는 내가 그래도 비교적 성공했다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그래, 요즘 어떻게 지내니?"


"저야 최고의 날을 보내고 있죠. 방송하는게 재밌어요. 우리나라 대중음악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음악방송 PD구요. 한국방송 PD 대상도 수상했어요..."




나는 어렵다는 언론고시에 붙어 방송사에서 일하는 PD, 그것도 나름 실력을 인정받는 PD라고 목사님에게 말하며 은근히 내가 성공했음을 드러내었다.


더 이상 옛날 그 가난한 어린아이가 아니라고 항변하고 싶었던 것이다.



"신앙 생활은 잘 하고 있니?"


"요즘 많이 바빠서 교회에 잘 못 나가요. 저녁엔 일 때문에 가수와 매니저들이랑 술 먹는 일도 많구요."


"용길아."


"네, 선생님."


"숙제를 하나 줄 테니 풀어가지고 다음에 또 대화하자."


"그게 뭔데요?"


"성경에 보면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다'고 했는데 그 영생이란 뭔지 알아보거라. 네 생각도 정리하고. 신앙 생황을 다시 잘해야  될 것 같구나."



선생님의 말을 들은 나는 의아해 하면서도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바쁜 일상을 살면서 선생님의 숙제는 곧바로 잊혀졌다.


그후 목사님과는 다시 연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몇 년이 흘러가던 어느 날, 불현듯 선생님 생각이 난 나는 지친 얼굴을 하고 선생님이 담임하는 교회를 찾아갔다.


음악 PD 생활이 즐겁고 재미가 있었지만, 그래도 늘 마음 한구석은 무언가 공허하고 또 신앙인으로 성결하게 살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이 들 때였다.
때가 되어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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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자처럼 살던 내게 삶의 곤고함과 함께 말할 수 없는 회의감이 몰려들던 날이었다.


목사님은 몇 년 동안 아무런 연락이 없던 내가 미울 수도 있었겠지만, 돌아온 탕자를 맞이하는 것처럼 기뻐하며 강하고도 부드러운 어조로 내게 말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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