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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길 CBS 사장




1997년 봄, 어느 날이었다.


"용길이니? 나 박기서 목사다."
"어, 목사님?"


전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박기서 목사님이었다.


너무나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었지만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목사님임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목사님을 처음 만난 것은 1970년 초등학교 2학년 때 광화문에 있는 종교교회에서였다.


목사님은 당시 권사로 주일학교 어린이부 부장을 맡으셨고, 어린이들을 깊은 사랑으로 양육해 주셔서 누구나 좋아하고 존경하는 분이었다.


그런 목사님과 헤어진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늦은 나이에 신학을 시작한 목사님이 부천 밀알감리교회를 담임하게 되면서 교회를 옮겼기 때문이었다.


그대가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이던 1979년이었다.


목사님은 새로 개척한 교회 일로 무척 분주했고, 나도 대학입시 준비 등으로 바빠서 통 만나 뵙지 못하다가, 느닷없이 18년 만에 목사님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내가 CBS에서 일한다는 것을 알고, 오랜 제자의 안부가 궁금해서 물어 물어서 연락을 하였다고 한다.


"용길아, 바쁘니? 다음에 밥 한 번 먹자."
"네, 선생님. 언제든지 오세요."


목사님이 식사하자는 얘기에 이게 얼마만인가 싶었다.


어릴 적 부터 '선생님'이라 불렀던 나는 목사님이라는 호칭이 어색해서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친구 따라 처음 가 본 교회는 내게 천국과도 같았다.


가족 중에 아무도 교회를 다니는 이가 없었지만 나 혼자 매주일 스스로 교회에 나갔고, 교회에 가면 선생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 중에서 박기서 선생님은 어린이들이 평소에 먹기 힘든 짜장면도 자주 사 주고, 우리들을 데리고 공중목욕탕에 데리고 가서 때도 벗겨주며 아버지처럼 큰형님처럼 우리를 사랑으로 보살펴 주어서 잊을 수가 없었다.


공부하는 것을 무척 좋아했던 나는 명랑하고 똑똑한 아이로 교회에 소문이 났고, 성경퀴즈에서 항상 1등을 차지하곤 했다.


매주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교회에 참석하다가 영양실조와 몸살로 교회에 몇 주 동안 가지 못한 적이 있었다.


교회를 몇 주 빠지니 선생님이 내 안부가 궁금해서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우리집을 방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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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만 박기서 선생님에게 우리 가정의 어려운 형편을 들키고 말았다.


한 칸짜리 좁은 방안에서 식구들과 어렵사리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웠던 나는 선생님을 보자 이내 도망가 버렸다.


나를 찾은 선생님도 놀란 얼굴이었지만 오히려 내 마음을 위로해주며 다음 주부터는 교회에 꼭 나오라고 하였다.


그리고 우리 집에 쌀 한 포대와 밀가루를 사주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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