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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4년 인도네시아를 중심으로 인도양 지진해일, 즉 쓰나미가 일어났을 때 그 엄청난 재난현장을 서슴없이 찾아갔던 클린턴 전 대통령과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때 9.1규모의 해저지진이 일어나 그 지역이 쑥대밭이 되었다.


사망자만 무려 23만 명. 재난 발생 직후 구호품을 싣고 미국의 전직 두 대통령이 그곳을 찾아간 것이다.


난 그때 “미국이란 나라는 이래서 위대하구나!”라고 감탄한 적이 있다.


한창 경제대국으로 떠오르겠다는 중국은 찔끔 긴급 구호비 몇 푼을 건네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덩치 값도 못한다며 ‘짱꼴라’ 소리를 듣고 있는 게 아닌가? 일본이나 다른 서방국가들도 비슷했다.


그런데 미국은 전직 대통령, 그것도 하나는 민주당, 하나는 공화당 소속이지만 정당은 달라도 불행을 만난 이웃나라를 돕는다는 마음에는 금방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재난현장에 달려가서 팔을 걷어 부치고 둘이 함께 복구작업에 힘을 보탰다.


그 두 전직대통령이 보여준 미국의 가치는 인종, 국경, 종교를 초월하여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는 지구촌의 불행엔 마음과 행동으로 함께 하겠다는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런 고상한 미국의 가치는 어디다 팔아먹고‘아메리카 퍼스트’만 고집하다가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에 출몰했던 강도로 변한 아메리카를 보는듯하여 나는 지금 화가 나고 있다.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바로 미국의 무관용 이민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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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멕시코 국경지대에서 밀입국자들을 체포하는 것은 법이라고 하자.


그런데 그 밀입국자들과 함께 국경을 넘다 체포된 자녀들을 격리수용하는데서 문제가 터져 나왔다.


지난 4월부터 5월에 이르는 6주간 동안 미국의 국토안보부가 거의 2,000명의 밀입국 아동들을 임시보호소 등에 보낸 것으로 집계되었고 그 가운데 100명 이상이 4세 이하라고 알려졌다.


밀입국한 부모들이 법을 어긴 것은 분명하지만 부모 손을 잡고 국경을 넘은 이 철없는 아이들에게 무슨 죄가 있다고 부모와 생이별을 시켜 임시보호소에 격리시켜야 한단 말인가?


여북했으면 생존해 있는 퍼스트레이디 전원이 벌떼 같이 일어나서 이 무자비한 무관용 이민정책을 비판하고 나섰다.


최연장자인 지미 카터 대통령의 부인 로잘린 여사는 성명을 내고“가족을 분리하는 이 정책이 국가의 수치이자 망신”이라고 비판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의 부인인 로라 여사는 “무관용 정책은 잔인하다”고 했고, 오바마 대통령의 부인인 미셸 여사도 로라 여사의 글을 리트윗하면서 “때때로 진실은 정당을 초월한다”며 지지를 보냈다.


클린턴 대통령의 부인인 클린턴 전 장관도“백악관이 주장하는 것처럼 민주당이 제정한 법 때문이 아니다”며“가족 격리는 법에 정해져 있지 않다. 완전히 거짓”이라며 트럼프 행정부를 비판하고 나섰다. 놀라운 것은 멜라니아 여사까지 남편의 정책에 반기를 들고 나섰다는 점이다.


특히 로라 여사의 성명은 신실한 믿음의 여성답다.


“미국인은 미국이 윤리적 국가이고, 자연재해나 기근·전쟁 등에 의해 황폐화한 지역에 인도적 구호를 보내는 나라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진다. 또 사람은 피부색이 아닌 인격의 내용으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것을 믿는다는 데 자부심을 가진다”며 “우리가 진정 그러한 나라라면 이들 억류된 아동을 부모와 재결합시키는 게 의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러면서 “아동들을 사막의 텐트촌에 수용한다는 것은 미국 역사상 가장 부끄러운 일의 하나였던 2차 대전 당시 일본계 미국인의 포로수용소를 떠 올린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판국에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이 로마서 13장에 나오는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이 정하신 바라”는 성경구절을 인용하여 정부가 만든 법에 복종할 것을 강조하고 아동격리정책을 강변하다가 호되게 역풍을 맞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까 성결구절을 자기 호신용으로 여기저기 끌어다 잘못인용하다가는 큰 코 다친다는 사례를 또 남겨준 꼴이 되었다.


아무리 불법이민을 막는 게 국익에 도움이 된다 할지라도 이웃나라에 대한 예의도 챙겨야지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설치한다고 했을 때 멕시코나 중미국가들의 구겨진 체면과 국가 자존심은 전혀 고려대상이 아니란 말인가?


그런데 이번엔 밀입국자들의 부모와 아이들의 생이별 격리정책이라니...부모와 생이별 후 울부짖는 온두라스에서 온 두 살배기 어린아이의 음성파일이 SNS를 통해 전국에 전파되면서 미국의 부모들이 울분을 토하고 있는 중이다.


“도대체 미국이란 나라에서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의 조상들이 언제 인디언들로부터 합법적인 비자 받고 입국했던가?
조상들 역시 밀입국자인 주제에 오늘날 밀입국자 어린 자녀들의 가슴에 이렇게 큰 대못을 박다가는 나중에 무슨 일을 당할지도 모른다.


여리고로 가는 길에 몰래 숨어 있는 강도가 아니라 강도 만난 이를 여관으로 끌고 가는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 미국의 정체성이다.


<크리스찬 위클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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