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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길 CBS 사장




다시 말해 방송에 나간 곡들은 CBS PD들로부터 좋은 평점을 받은 것 들이었다.


방송에 나간 곡들은 다시 모니터를 해서 재평가했고, 그런 식으로 음악을 선곡하고 방송을 진행하며 후배들의 실력을 키워 나갔다.


후배들은 훈련에 잘 응해주었고, 그러면서 조금씩 성장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방송에 재미를 붙이며 더 좋은 음악을 찾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 가려는 모습에서 더 큰 기대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런데 아타깝게도 그해 가을 CBS 역사상 가장 길었던 파업이 시작되었다.


회사에 생긴 문제들을 푸는 과정에서 노동조합이 파업을 단행하였고, 다수의 구성원들이 파업에 참여하였다.


후배들은 방송을 내려놓고 파업에 동참했다.
그들을 어떻게 막을 수는 없었다.


자신의 유익이 아닌 회사의 정도(正道)를 위해 참여한다고 생각하는 그들을 어떻게 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 역시 다른 간부들과 함께 회사의 정상화를 위한 입장을 표명했다.
하지만 방송을 놓을 수는 없었다.


누군가는 방송을 이끌어 가야 했고, 후배들을 대신해 내가 방송을 직접 진행해 나갔다.


그런데 파업은 예상 외로  길어졌다.


그해 10월에 시작된 파업은 해를 넘겼고, 좀처럼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후배들은 한 번 나선 자리를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무임금 파업이다 보니 길어질수록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불 보듯 뻔히 보였다.


내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그런 어려움에 작은 도움이 되는 것이었다.


좋은 방송을 위해 함께 음악을 선곡하며 머리를 맞대었던 후배들을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나 역시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지만 우리 부서원들에게 내 봉급을 쪼개서 나누어 주었고, 그들을 위해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9개월 간의 긴 파업을 겪고 나서 방송국은 더 단단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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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에 복귀한 후배들은 예전처럼 다시 힘을 모아 좋은 분위기 속에서 방송을 제작하였다.
더 좋은 음악을 찾아내었고, 그런 음악들을 청취자들과 함께하려고 했다.


후배들이 성장해 가는 모습은 내게 큰 기쁨을 준다, 사장이 된 지금도 후배들의 방송을 들으며 모니터링을 한다.


'오프닝 멘트가 조금 무거운 느낌이야, 조금 가볍게 가자.'
'좀 더 밝은 곡들을 선곡하면 분위기가 살 것 같아.'


PD들에게 일일이 카톡을 보내면서 그들이 잘 했고 못 했는지를 평가하는 것이 아닌 더 좋은 방송을 위해 마음을 보태는 것이다.


그러면 후배들도 그런 마음이 느껴지는지 감사의 답을 보내곤 한다.
그들과 함께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만들어 갈 CBS의 미래가 더욱 기대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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