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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길 CBS 사장



현장에서 뛰는 PD가 좋았지만 이제 제법 연차도 되었고, 언제까지 현직 PD로만 있을 수는 없었다.
2000년도에 FM부장이 된 나는 후배 PD들을 키우는 자리에 서게 되었다.


내가 벌써 그런 자리가 되었나, 하고 뒤돌아보니 PD로 제작에 혼신을 기울이며 보낸 시간이 거의 10년이었다.


그동안 <12시에 만납시다>를 시작으로 <꿈과 음악 사이에>, <뮤직 네트워크> 등 여러 방송 프로그램을 하며 정신없이 달려온 시간이었다.


이제 더 좋은 프로그램을 제작하여 CBS를 이끌어 갈 후배들에게 내가 가진 경험과 방송 노하우를 들려주어야 할 때였다.


후배들에게 강조한 것은 한 가지였다.


'좋은 음악을 발로 뛰면서 찾아라!'


나는 PD 시절에 시간만 나면 가수들의 공연장을 드나들었다.
인기 있는 가수들이 아니라 아직 대중성은 없지만 실력 있고 진정성 있는 음악을 하는 가수들을 찾아 나선 것이다.


그러다 보면 눈에 띄는 가수들이 보였다.


음악을 듣는 귀가 밝았던 나는 한눈에 괜찮은 가수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들의 공연을 몇 번이고 가다보면 음악의 진가를 발견할 수 있었고, 그들을 음악 프로그램에 초청하거나 방송에 그의 음악을 내보내기도 하였다.


그렇게 해서 박정현, 윤도현, 김장훈, 이현우 같은 스타들이 탄생되었고, 그들의 좋은 음악이 CBS를 시발점으로 해서 세상 가운데 빛을 발할 수 있었다.


이런 일은 방송국 안에만 있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었다.
가수들이 있는 현장에 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공연장이든 길거리든 음악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찾아 나서라고 후배들에게 주문한다.


그런데 그때는 현장을 굳이 다니지 않아도 한달에 음반이 100장 ~ 200장이 쏟아져 나올 때였고, 수많은 음반중에서 좋은 음악을 고르는 것도 필요한 일이었다.


나는 종종 후배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으곤 했다.


"자, 여기 있는 음반을 모두 들어보고 좋은 노래를 뽑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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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하루 종일 수백장의 음반을 들으면서 좋고 안 좋고를 평가하도록 했다.
좋고 안 좋고의 기준은 내가 가르치는 게 아니었다.


그들 스스로 수백 개의 노래를 들으면서 그 기준을 찾아내는 것이다.


좋은 글을 쓰려면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多想) 해야 한다고 했듯이 좋은 음악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음악을 끊임없이 듣는 훈련이 필요했다.


그렇게 해서 뽑은 곡들을 방송에 내보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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