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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와 김정은이 만나는 걸 무슨 ‘세기의 담판’이라느니 떠들어 대던 싱가포르 회담이 마침내 막을 내렸다.


트럼프가 캐나다에서 열린 G7정상회담은 헌신짝처럼 내던지고 싱가포르로 달려가게 한 것도 그렇고 무려 8백여 명의 외신 기자들이 싱가포르에 바글댔다고 하니 확실히 핵이 세긴 센 모양이다.


CNN의 간판앵커 앤더슨 쿠퍼가 아주 싱가포르에 둥지를 틀고 보도를 하는 등 BBC, NHK 등 세계의 뉴스전문채널들도 호떡집에 불이 난 것처럼 허둥대는 모습이 TV를 통해 세계로 전파되었다.


사실 몇 달 전만 해도 김정은을 ‘로켓맨’으로 불러대며 야유를 하고 북한이 고분고분 말을 안들으면 ‘화염과 분노’에 직면할 것이라고 겁을 주던 트럼프가 덩치 값도 못하고 김정은이에게 아부라도 하듯이 바짝 몸을 낮추고 싱가포르 회담에 기어들어가는 모양새를 보인 것을 보면 확실히 핵이 세다는 것을 그대로 입증해 준다.


천하의 트럼트가 핵이 없는 김정은에게 그리할 이유는 전혀 없기 때문이다.


회담이 끝나자 북한 전문가들은 김정은의 일방적인 판정승이라고 보는 이도 있고 한걸음 더 나아가 트럼프의 완패라고 분석하는 이들도 많아지고 있다.


북한이 비핵화 언급도 없고 더구나 미국이 집요하게 요구할 듯 하던 CVID는 꿀먹은 벙어리가 된 마당에 한미연합훈련은 중단하겠다고 후한 선물만 안겨주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미주 한인들 중에서도 트럼프가 대한민국을 팔아먹었다고 흥분하는 이들도 보았다.


트럼프가 러시아 커넥션에다 여성스캔들 등등 국내정치에서 코너로 밀려 날수록 민주당이란 적진을 향해 정치적 성공펀치를 한방 날리고 싶은 심정 때문에 김정은에게 저자세로 다가갔다고 진단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실 트럼프 대통령이라고 별 묘안이 있었을까?


핵 단추를 자꾸 만지작거리는 어린 독재자를 어르고 달래야지 그럼 정말 항공모함 들이대고 미사일을 퍼부어 전쟁을 치를 수는 없는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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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모습을 놓고 보면 트럼프는 하염없이 올라간 키다리 아저씨다.


김정은은 배불뚝이 뚱보다. 한번 위에서 쥐어박고 싶은 심정이 왜 없었을까?


그런데 그 뚱보에겐 핵이 있지 않은가? 연배로 따져보자. 트럼프는 금년 71세, 김정은은 35세다.
아들 뻘이다.


어디 어른에게 대드냐고 한참 혼내주고 싶은 마음이 왜 없었을까?


자존심을 내려놓고 ‘체어맨 김’이라고 정중하게 예의를 차리며 그를 정상적인 국가원수로 체면을 세워줘야 하는 트럼프의 마음은 어땠을까?


상대가 대포로 친척을 죽이는 잔인한 독재자, 독극물로 형제를 죽이는 무자비한 킬러인 것을 그가 모를 리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숙이고 들어갔다.
왜 그랬을까?


그래도 전쟁보다는 그게 더 선량한 선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70년간의 반목을 접고 우선 미국과 북한의 지도자가 악수를 하면서 만남을 가졌다는 것 자체를 역사의 놀라운 진전으로 바라보아야 하지 않을까? 김정은이 핵을 버릴테니 자신들의 체제를 보장해달라고 주문했지만 그가 지금 체제를 보존하던지 벗어나던지 간에 이번을 계기로 어느 땐가는 악의 축, 테러지원국, 독재자의 탈을 벗고 정정당당한 정치지도자로 변신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보고 싶다.


그건 그렇고 이번 북미회담 공동 합의문 전문을 읽어가는 중에 나는 느닷없이 합의문 제4항이 마음에 꽂혀오는 걸 느꼈다.


제4번은 “미국과 북한은 신원이 확인된 유해의 즉각적인 송환을 비롯한 전쟁포로와 실종자(POW/MIA) 유해 발굴 및 수습에 나설 것을 약속했다”는 내용이었다.


북한의 핵을 없애겠다는 일념으로 깨질 뻔하던 회담도 다시 성사시켜 어렵사리 싱가포르까지 가서 공동 합의문을 도출해 냈으니 설사 비핵화 합의가 말짱 뻥이 되고 결국은 트럼프와 김정은 공동주연의 리얼리티 쇼로 끝난 것인지는 조금 두고 봐야 하겠지만 그 총성 없는 혈투처럼 벌이진 북미 회담도중에 갑자기 전쟁포로와 실종자 유해를 돌려달라고 주장한 이 나라 미국의 자기 식구 챙기기는 얼마나 감동적이란 말인가?


국을 위해 전쟁터에서 죽어간 전사자나 전쟁포로를 절대로 그냥 버려두지 않겠다는 아메리카를 조국으로 삼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훈장같은 자긍심을 심어줄 만한 일이다.


자국민이 적국에 억류되었을 경우 미국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마침내 구출해 오는 경우를 우리는 여러번 목격했다.


국무장관까지 동원되곤 했다.


죽은 웜비어 때도 그랬고 지난달 김학송 목사 등 한국계 미국인 3명을 북한에서 빼 올 때도 그랬다.
국민 한사람의 가치와 생명을 이렇게 소중하게 여기며 세기의 담판이란 북미회담에서도 이 문제를 과감하게 들고 나온 미국의 인도주의는 과분하게 칭찬받아도 좋을 듯하다.


그런데 자국민만 챙기지 말고 북한의 인권문제까지 합의문에 들고 나왔더라면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었다는 냉혹한 비판은 면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크리스찬 위클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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