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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가지 없는 말뽄새(말본새)는 창세기에 나오는 가인이 원조라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동생 아벨을 죽인 가인에게 물으셨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하나님의 질문에 가인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이니까?”


자기 손으로 동생을 쳐 죽인 1급살인자가 능청스럽게 내가 동생을 지키는 사람이냐고? 


이 말뽄새를 보면 그의 인생이 얼마나 화로 가득했을지 안봐도 비디오다.


구화지문(口禍之門)이란 말이 있다. 


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인생은 입을 조심하고 살아야 한다는 말조심 적색경보인 셈이다. 


그래도 말조심이 안된다. 그게 인간의 연약함이다. 


얼굴은 곱게 생겼는데 말은 밉상으로 하는 사람이 많다. 


정나미가 떨어진다. 


입에서 나오는 말이 구슬같이 명랑하고 말속에 배려가 가득한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들과 마주하면 저절로 행복 바이러스가 전파되는 것을 느낀다.


지난주 백악관 한 보좌관이 말기 뇌종양으로 투병 중인 존 매케인 공화당 상원의원을 놓고 “어차피 죽을 사람인데(he''s dying, anyway)”라고 말한 사실이 밖으로 퍼져나가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 

말뽄새가 문제였다.


금년 81세의 매케인 상원의원은 공화당 소속이긴 해도 같은 정당의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대쪽 같은 강경발언이나 반대 의견도 서슴치 않는 바람에 초당적으로 존경받는 정치거물이다. 


현재 평양을 두 번씩이나 왕래하느라 숨이 가빠진 폼페이오가 국무장관에 발탁 되면서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공석이 되자 그 자리에 지명된 지나 해스펠을 놓고 매케인이 또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부국장에서 국장으로 진급도 되고 여성 최초 CIA국장이란 영예를 거머쥐게 된 그가 부시 대통령 시절 테러용의자들에 대한 고문을 지휘 감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게 문제였다. 


매케인은 베트남 전쟁 때 포로로 붙잡힌 아픈 경험이 있어 고문이라면 결사 반대파다. 


그래서 또 백악관과 대립각을 세우게 된 것이다.


매케인이 주도하는 공화당의 지나 해스펠 인준 거부 움직임을 논의 하던 백악관 공보담당 보좌관 비공개회의에서 켈리 새들러란 특별보좌관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쨌든 그는 죽어가고 있다"고 말한 것이다. 


민주당과 매케인 가족들은 그의 사임을 주장하고 나섰지만 트럼프는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아무리 대통령과 편치 않은 관계라고 해서 암으로 투병중인 사람에게 이건 할 말이 아니다. 

그러나 사실 그 보좌관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다만 적절하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


목사님이 교인 중에 아들은 낳은 가정이 있어 병원으로 심방을 갔다. 


신생아실에서 아기를 안고 부모와 함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게 되었다. 


“어차피 죽을 인생인데 좌우지간 이 험난한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것을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했다고 하자. 


틀린 말은 아니지만 목사님이 신생아를 품에 안고 기도할 때 적절한 말은 아니다. 


그런 말뽄새라면 교회에서 쫓겨나는 것은 시간문제가 아니었을까?


실제로 있었던 얘기다. 


아들 며느리가 노모가 살고 있는 아파트를 방문했다. 


80이 훨씬 넘은 어머니가 거동이 어려워지자 양로원에 맡기는 문제를 놓고 대화를 주고받았다. 


“어차피 죽을 건데. . . 양로원에 맡깁시다”라는 며느리의 말을 침실에 누워 있던 어머니가 본의 아니게 엿듣게 되었다고 한다. 


그 이튿날 어머니는 조용히 숨진 채 발견되었다. 


자살이었다.


늙고 거동이 불편해지는 것도 서러운데 평생을 고생하며 눈물로 키워 온 아들 가족이 와서 한다는 말이 어차피 죽을 인생이니 빨리 해 치워 버리자는 식으로 말을 했으니 서럽고 원통한 마음을 달랠 길 없어 그런 선택을 했을 것이다. 


너무 연로하여 부모님을 양로원으로 모시고 가는 날 흐느끼지 않는 자녀들이 없다. 


말도 통하지 않는 양로원에 그냥 던져 놓고 간다고 생각하면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런 현실이 서러워 그냥 울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러 말을 하다보면 양로원에 수감(?)되는 부모님의 가슴에 더 큰 대못을 박는 꼴이 될 수도 있다. 


“늙으면 누구나 다 양로원에 와요. 잘 적응하세요” 라던지 의식이 오락가락하는 부모님을 옆에 놓고 “아유, 이젠 얼른 돌아가셨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는 것을 또렷하게 알아들었다면 그 부모님의 서러운 마음을 상상해 보았는가?


말로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하지만 말은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참으로 조심해야 할 게 바로 우리들의 입술이다.


가정의 달에 그래서 우리가 더욱 힘쓸 것은 고상한 말, 격려의 말, 감사의 말이다. 

5월엔 더욱 야고보서의 말씀에 집중하자. 


무절제한 혀에 대하여 수많은 경고장이 집중되어 있는 책이다. 


특히 1장 26절에서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다.


우리의 말뽄새를 튠업하는 5월, 말을 지르기 전에 한 박자만 더 침묵하는 연습을 실천해 보자. 


우리들의 언어가 세상을 바꾸는 행복 바이러스가 되게 하자.


 <크리스찬 위클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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