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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은 3대 종교의 성지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 잘못 건드렸다간 벌집을 건드리는 셈이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최대 쟁점중 하나가 예루살렘이다.


1967년 중동전쟁에서 승리한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수도로 선포했다. 

그런데 국제사회는 ‘아니올시다’라며 반대하고 나섰다.


UN은 예루살렘을 포함하여 그때 이스라엘이 점령한 가자지구, 요르단 서안지구, 골란고원을 그냥 점령지역이라고 해 놓고 통치권은 인정하지 않았다. 


지금 이스라엘 지도를 인터넷으로 찾아보면 굶은 점선으로 그려놓은 이스라엘 영토가 있다. 

그게 점령지역이다.


전쟁에서 빼앗기는 했으나 통치할 수는 없다고 UN이 못 박아 놓은 지역이다. 


그러나 야곰 야곰 유대인들의 집단농장 기부츠가 계속 그 점령지역에 파고 들어가면서 늘 긴장감이 맴돈다. 


아주 묘한 곳이다. 


그게 오늘의 현실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UN이 결의안을 통과시켜 뜯어말리고 있는데도 보란 듯이 이스라엘 건국 70주년을 기념하여 미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하겠다고 우겨왔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예루살렘이 장차 자기들의 수도라고 주장하고 있는 터라 미국이 대사관 이전을 강행할 경우 그 지역에서 또 한 차례 갈등과 반목의 피 흘리는 드라마가 재연될 것이다.


자, 그럼 그 기나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은 도대체 어디가 출발점일까?


우선은 밸푸어 선언이다. 


제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7년 11월 영국의 외무장관 아서 밸푸어(Arthur Balfour)가 유태계 금융재벌 로스차일드 백작에게 ‘팔레스타인에 유대 민족국가 건설을 지지한다’는 서한을 보냈다. 


단 3문장, 125 단어로 구성된 이 짧은 편지 한장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운명, 즉 중동의 미래를 결정짓는 폭탄선언이 된 것이다, 이를 ‘밸푸어 선언’이라고 말한다.


시온의 땅에 이스라엘을 회복하자는 운동인 ‘시오니즘’을 통해 자신들의 고향에서 쫓겨난 팔레스타인인의 숫자가 대략 70만 명. 


밸푸어 선언은 유대인들에게는 해방선언, 희망의 선언이었지만 아랍인들에게는 저주의 선언, 핍박의 선언이었다.


밸푸어는 정녕 이스라엘을 사랑하여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된 바사 왕 고레스였을까? 


그건 아니었다. 



첫째는 1차 세계대전에서 미국거주 유대인들의 지원을 얻어내기 위해서였다. 


둘째는 영국의 전쟁공채를 유대자본에게 팔아먹어야 독일과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계산 때문이었다. 


셋째는 포탄제조에 들어가는 아세톤의 대량살상 기술을 알고 있는 유대인 차임 바이츠만의 도움을 얻기 위해서였다. 



그 바이츠만은 후에 이스라엘의 초대 대통령이 된 사람이다. 


그러니까 밸푸어 선언은 전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영국의 정치적 계산의 산물이었다.

그런데 기막힌 또 하나의 선언이 있었다. 


영국은 밸푸어 선언으로 유대인들을 자기편을 만들었지만 아랍인들에게는 1915년 ‘맥마흔 선언’이란 것을 통해 10여 차례에 걸쳐 ‘아랍 독립’을 약속해 놓은 상태였다. 


1차 대전이 끝나면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보장해 준다는 약속이었다. 


그래서 아랍인들은 1차 대전 중에 독일과 동맹관계였던 당시의 오스만 투르크, 즉 오늘날의 터키에 대항하여 영국을 위해 죽자 살자 싸워준 것이다.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가 그 배경을 잘 말해준다. 


1900여 년 동안 팔레스타인에서 주인행세를 하며 살아오던 아랍민족은 맥마흔 선언의 실행은 고사하고 밸푸어 선언을 통해 이스라엘이 밀고 들어오자 배신 때린 영국의 양다리 작전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그 배신의 상처는 아직도 아랍인들의 가슴에 남아있다.


5월 14일에 이스라엘 건국 70주년을 맞았다. 


축하해야 한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다윗의 하나님, 그리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우리가 믿는 야훼 하나님과 동일하신 분이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구원은 우리에게만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지 않는 한 유대인도 기독교의 이방인이다.


지금은 예수 믿는 유대인, ‘메시야닉 쥬’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좋은 현상이다. 


이스라엘이 영육간을 통해 회복되는 날이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이라고 믿는 종말론자들에겐 더욱 좋은 소식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회복인지 회개인지는 몰라도 그것을 마치 우리시대 교회의 으뜸가는 사명으로 알고 이스라엘하면 무조건 면죄부를 주어야 하고 무조건 편들어 주어야 당연한 것으로 아는 과분한 ‘선민 프리미엄’을 예수님은 어떻게 보고 계실까?


그들은 또 예수님이 감람산에서 승천하신 것처럼 감람산으로 재림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유대인들도 감람산은 마찬가지다. 


예수님이 아니라 자신들을 구원할 메시야는 바로 그 감람산을 통해 오실 것이라고 믿고 지금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니 감람산은 참 복도 많다. 


나는 LA에 살고 있으니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LA에선 예루살렘 직항노선도 없고 도대체 무슨 비행기를 타고 감람산으로 뛰어 갈까?


문자적 성경해석도 문제지만 기독교인들의 이스라엘 짝사랑 신학도 문제가 아닌가? 


건국 70주년에 예수님이시라면 높은 분리장벽을 세워 이스라엘이 핍박하고 살아 온 팔레스타인사람들에게 찾아가서 아마도 그들의 눈물과 아픔을 어루만져 주셨을 지도 모른다. 


지름길을 마다하시고 이방인들이 살던 사마리아를 찾아가셨던 것처럼.


 <크리스찬 위클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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