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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사순절이 되면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곳이 예루살렘 구시가지에 있는 고난의 길, 십자가의 길이 될 것이다. 라틴어로는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라고 부른다.

 

‘비아’는 길, ‘돌로로사’는 고난 혹은 슬픔이란 뜻이다. 전 세계 순례객들이 이스라엘 순례길에 올라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코스가 바로 이곳이다. 


예수님께서 사형선고를 받으시고 골고다로 오르신 고난의 길, 죽음의 길이었지만 이 길이 있었기에 비로소 인류에게 생명의 길, 부활의 길이 열린 길이다.


AD 70년 로마황제 타이터스에 의해 예루살렘이 완벽하게 초토화된 후 이슬람 군대에 짓밟혀 수백 년을 지나오면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신 길이 제대로 보존될 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1294년 리칼두스란 신부에 의해 대략 위치가 정해진 후 1540년경에 이르러 프란체스코 수도사들에 의해 지금의 코스가 확정되었다고 한다.


그 후 19세기에 들어서서 고고학적으로 예수님이 걸으셨던 길로 확인이 되었다. 


여기를 찾는 수도사들은 직접 십자가를 지고 약 800미터에 이르는 이 길을 수행의 길로 삼아오고 있다. 


수도사들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순레자들도 돈 주고 십자가를 사서 어깨에 메고 오르기도 한다. 주님의 고난이 어떠했을 지를 실감해 보기 위해서. . .


이 길은 모두 14개 지점으로 이루어졌는데 예수님이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으신 제1지점으로 시작하여 죽으신 후 부활하신 지점까지 모두 14지점이 표시되어 있다. 


그런데 제10지점 예수님께서 옷 벗김을 당한 곳에서부터 묻히셨다가 부활하신 제14지점은 한 교회당에 안에 있다. 


그 교회당을 우리는 성묘교회, 영어로는 홀리 세펄커 교회당(The Church of Holy Sepulcher)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놀라지 마시라. 이 성당은 6개 기독교 종파, 그러니까 캐톨릭, 희랍정교회, 아르메니안 사도교회, 시리아 정교회, 콥틱 정교회 등 6개 종파가 1층은 어느 종파, 2층은 어느 종파, 지하는 어느 종파로 나눠 관리하고 있는 중이다. 


주님 묻히셨다가 부활하신 기념교회가 마치 도떼기시장을 연상케 한다. 그나마 개신교는 그 6개 종파에 명함도 못 내미는 곳이다. 우리 크리스천 위클리가 주관하여 출발한 성지순례단도 지난 2월 20일 그 비아돌로로사를 순례했다. 


제1지점에서 시작하여 제14지점까지. . . 그러나 로마병정의 채찍소리도 없고 아리마대 요셉도 없고 예수님을 뒤따라오며 흐느껴 울던 여인들도 없었다. 다만 그 고난의 길 양쪽에는 기념품을 팔려는 상점들만 넘쳐나고 있었다. 마치 복잡한 남대문 시장을 연상시킨다.


그런데 그 길에서 우리에게 대형사고 하나가 터졌다. 일행 중 김 모 권사님이 기념품 하나를사고 지갑을 그냥 선물가게에 놓고 온 것이었다. 순례를 마치고 호텔에 도착해서야 알게 되었다. 


부랴부랴 현지 가이드와 택시를 타고 그 가게를 찾아갔지만 이미 영업시간이 지나 문을 닫은 상태. 


마침 주인이 가게를 지키고 있어 사정을 말했더니 점원이 내일 출근하면 알아보고 연락을 주겠다는 약속을 주고받고 호텔로 되돌아 왔다. 권사님은 그날 저녁 LA로 연락해서 우선 크레딧 카드 분실신고를 했지만 문제는 운전면허증이었다. 


다시 발급받아야 하는 불편함.


또 하나가 있었다. 


여행 중 쓰려던 현금 800여 달러가 그 지갑에 있었다. 가이드도 김 권사님도 적지 않은 800여 달러의 현찰이 든 그 지갑을 되찾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체념하는 눈치였다. 


이튿날 예루살렘을 떠나 사해바다에서 몸이 둥둥 뜨는 염해체험을 하고 쿰란공동체를 돌아본 후 여리고로 이동하여 예수님이 시험을 받으신 시험산을 순례했다. 그리고 여리고 시내의 한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가이드에게로 전화가 왔다. 

어제 그 가게 주인이었다. 


김 권사님의 지갑을 찾았다는 전화였다. 점원이 보관하고 있었다고 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는 순간 버스 안에선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그 가게 주인은 지갑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꼬치꼬치 물었다. 


현찰은 얼마냐고 묻기에 약 800여 달러라고 권사님은 말해주었다. 그래도 주인인지 확인을 위해 전화기로 얼굴을 보여달라고 요구했다. 권사님은 자신의 얼굴을 카메라에 비춰주었다. 그 가게 주인은 운전면허증의 사진과 대조해 본 후 본인이 확실한 것 같다며 예루살렘 현지 여행사를 통해 다음날 아침 여리고 호텔로 지갑을 보내주겠다고 말했다. 


상황은 그렇게 해피엔딩으로 종료되었다. 그리고 그 지갑은 그 이튿날 아무 탈 없이 김 권사님에게 전달되었다. 지갑 속에 있는 현찰 800달러와 함께.


그날 밤 난 여리고 호텔에서 비아돌로로사에서 지갑을 돌려준 그 무슬림 때문에 쉽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 길에서 장사하는 모든 아랍인들은 무슬림인줄로만 알았다. 생김새가 그렇게 보인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 지갑을 찾아준 가게 주인은 아랍인이긴 하지만 무슬림이 아니라 아랍계 크리스천이었다. 


가이드가 말해주었다. 예수님이 걸어가신 고난의 길에서 감람나무 십자가나 팔아 이문이나 챙기는 무슬림들이라고 눈길 한번 좋게 주지 않았던 그들을 통해 그날 저녁 내게 들려주시는 주님의 음성은 그것이었다. 


“사람을 외모로만 판단하지 말라.”


우리는 너무 유대인들 편만 들다보니 아랍인은 모두 ‘적군’이요 이방인이라고 멸시하곤 한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비아돌로로사의 상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정말 주님의 십자가를 팔면서 동시에 복음을 파는 사람들이 무수하다는 걸 그들의 외모 때문에 난 잊고 있었다. 내년엔 나의 무지함과 교만함을 회개하며 그 비아돌로로사를 다시 순례할 것이다.


김 권사님의 지갑이 무사히 돌아온 그 사건을 두고 우리 순례단은 ‘비아돌로로사의 기적’이라고 불렀다. 


<크리스찬 위클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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