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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길 CBS 사장




"여러분, 방송을 잘 들으셨죠? 

오늘도 초희를 위해서 기도하는 거 잊지 마세요."


DJ 김창환 씨의 멘트가 끝나고 엔딩 곡이 나가자 스튜디오 안이 숙연해졌다.


초희의 엽서가 <꿈과 음악 사이에> 에 배달되기 시작한 지 벌써 2년이 다 되어 갔다.


앞서 김삼일 PD가 방송을 맡았을 때부터 날아오던 엽서는 내가 담당한 후에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골수암으로 투병중인 갓 18세 여학생 초희가 보낸 예쁜 손글씨 엽서는 보는 이들의 마음을 짠하게 만들었다.


병세가 악화되고 있는 초희는 언제 세상과 마지막 인사를 할지 모르는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었다.


초희가 엽서를 보내면 우리는 그 엽서를 청취자들에게 들려주었고, 초희를 위해 마음을 모으며 함께 기도하곤 했다.


그녀는 힘든 투병 기간을 밝고 힘차게 견디어 나가고 있었다.


정성껏 보내온 엽서에 묻어나는 여느 여학생과 다를바 없는 장난끼와 순진함에 우리는 웃기도 하며 울기도 하였다.


어느 날부터 더 이상 초희의 엽서가 방송국으로 도착하지 않았고, 초희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안 날에 우리는 한참 동안 울었다.


그렇게 한 청취자를 마음에 묻었다.


이후 그 이야기는 영화 <스무 살까지만 살고 싶어요> 로 제작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가슴 아픈일이었지만 청취자들과 함께 기도하고 슬픔을 같이 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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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음악 사이에>는 <12시에 만납시다> 다음에 맡은 프로그램이었다.


PD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내가 그 당시 메인 프로그램을 맡게 된 건 꿈만 같은 일이었다.


방송분량도 한 시간 짜리인데 두 시간으로 늘어났고, 시간대도 황금 시간대인 밤 11시부터 새벽 1시까지였다.


다소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정해진 시간 동안 좋은 메시지와 음악을 풀어내는 '포멧 작업'은 생각만으로도 즐거웠다.


나 스스로 잘해 나갈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꿈과 음악 사이에>는 심야 프로그램이다 보니 청소년 청취자들이 주류였고, 그들의 비중을 무시할 수 없었다.


방송을 통해 청소년들에게 어떤 유익을 줄 수 있을까를 고민했고 그들에게 재미있으면서도 유익한, 그리고 우리 방송에서만 들을 수 있는 특별한 뭔가를 만들고 싶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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