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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길 CBS 사장




"저는 음악 프로그램이 하고 싶습니다."


사장님과 면담 후, 국장님이 무슨 프로그램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나는 큰소리로 대답했다.


하고 싶은 프로그램을 못해서 회사를 그만 두겠다는 말에 국장님과 담당 부장님은 내가 해보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그렇게 해서 매일 정오에 진행되는 음악 프로그램인 <12시에 만납시다>를 맡게 되었다.


<12시에 만납시다>는 그때만 해도 CBS 라디오의 몇 안되는 메인 음악 프로그램 중의 하나였다.


꿈에 그리던 기회를 얻고야 만 것이다.


좋은 음악을 선곡하며 감동적인 이야기들로 꾸미는 음악 프로그램 제작은 정말 즐거운 일이었다.

매일매일 청취자들의 사연과 함께 신청곡을 들려주고, 원고를 통해 세상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전하면서 세상에 둘도 없는 행복을 느꼈다.


당시에는 LP시대였는데 묵직한 레코드판을 들고 집과 방송국을 오가면서도 고단한 줄을 몰랐다.

나는 PD로서 프로그램 전체의 방향과 흐름을 정확하게 제시해야 했고, 정오 시간에 듣는 방송이니 만큼 청취자들이 지친 오전의 일상을 잘 마무리하고 오후를 활기차게 보낼 수 있는 방송을 연출해야 했다.


라디오 PD로 입사한지 2년만에 입봉한 나의 첫 프로그램인 <12시에 만납시다>의 DJ는 역극배우 윤석화 씨였다.


당시 '신의 아그네스'라는 연극으로 연극계 최고의 스타였던 윤석화 씨는 에너지가 넘치고 감성이 풍부한 명 진행자였다.


베테랑급 DJ와 함께 일을 한다는 것이 다소 부담이 되기도 했지만, 내가 연출자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했다.


라디오 부스의 온에어 불빛이 켜지고 녹음이 시작되면 라디오 부스안은 살짝 긴장감이 맴돌았다.

생방송이다 보니 긴장이 되는 건 진행자나 PD나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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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내게 첫 프로그램이다 보니 긴장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다행이 진행자의 매끄러운 솜씨로 인해 나의 긴장감은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

윤석화씨가 마이크를 잡고 진행하노라면 배우는 배우인가 보다 싶을 정도로 유연했다.


특히 사연을 읽을 때는 하나하나 자신의 이야기인 듯 감정을 실어서 읽어 나가면 내 얘기처럼 가슴이 뭉클해지곤 했다.


하지만 방송을 진행하다가 의견 충돌이 일어나는 날도 적지 않았다.


"한 PD가 지시한 방향대로 가면 너무 딱딱하다니까."


윤석화 씨나 나나 방송에 대한 열정이 뜨거울 때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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